북한의 선군정치와 핵무기 개발의 연관성에 대한 전성훈 남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논평입니다. 논평은 논평가 개인의 견해입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이 가져온 국제적인 파문이 쉽사리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워낙 중대한 사안인 만큼 이미 예상되었던 일이긴 합니다만,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북한의 핵무기가 김정일 정권의 지도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선군정치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의 연초 논평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선군정치는 북한의 금년도 신년사에서도 매우 강조되었던 개념입니다. 선군이란 말 그대로 군대를 중시한다는 의미로서 군사 부분을 모든 일의 최우선에 두겠다는 것과 함께 모든 현안을 군대를 앞세워 풀어나간다는 북한 정권 차원의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신년사는 선군사상이 김일성이 창시한 사상으로서 김일성은 선군의 기치아래 조국광복을 달성하고 사회주의강국을 건설했으며, 선군사상은 선군정치의 기초이기도 하다고 밝혔습니다. 반면에 선군정치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선군사상을 계승해서 창안한 것으로서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토대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선군정치라는 지도이념이 북한정권에 의해 대외적으로 표방된 시점입니다. 선군정치는 1998년 5월 26일자 노동신문의 정론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고, 강성대국이란 구호는 같은 해 8월에 역시 노동신문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선군정치가 처음으로 등장한 1998년 5월 26일이란 시점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북한이 제네바 기본합의를 위반하면서 파키스탄과의 협력 하에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즈음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선군정치가 나온 이틀 후에 파키스탄은 핵실험에 성공해서 핵보유국이 되었습니다. 파키스탄이 5월 28일과 5월 30일에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북한 김정일 정권의 지도이념인 선군정치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을 수 있다는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북한이 핵무기를 국가전략의 중추적인 요소로 간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체제수호의 관건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6자회담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이번 외무성 성명을 통해서 핵보유 선언을 하면서 중국 측에 대해서도 매우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외무성 성명은 남한의 외교통상부 장관이 6자회담 협의차 미국을 방문 중이었고, 중국의 고위관리들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던 시점에 발표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절 연휴기간에 북한의 성명이 나옴으로써, 적어도 외무성 성명의 시점을 놓고 볼 때, 북한 지도부는 중국을 겨냥한 의도적인 날짜 선택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역으로 중국이 북한의 이런 태도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라는 점도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중국정부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고위관리의 방북을 포함해서 여러 경로를 통해서 북한당국의 자세변화를 촉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북한 핵문제로 인해서 중국이 원치 않는 커다란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는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을 것입니다. 남한과 미국 역시 현 단계에서는 중국의 외교력에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북한 핵문제는 중국에게도 도전이자 기회인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