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미국의 국방태세검토보고서와 북한

이달 초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국방태세검토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국방태세검토보고서, 즉 QDR은 미 의회의 요청에 따라서 국방부가 4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국방전략의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년 전인 2002년에도 QDR이 발표된 바 있었습니다. QDR은 미국의 당면한 안보위협을 평가하고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군사전략을 설명하면서 군사전략의 원활한 수행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전력증강계획까지 상세하고 담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 맺고 있는 군사동맹에 대한 논의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QDR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북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논평에서는, QDR에 서술된 북한 부분을 중심으로 현재 한반도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볼까 합니다.

QDR은 미국이 소련을 주적으로 했던 냉전시절보다 현재 더 나쁜 안보환경에 놓여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냉전시대에는 소련이란 한 나라의 대량살상무기를 억지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지만, 현재는 다수의 적대적 국가들과 테러집단이 대량살상무기를 획득하고 사용하려 함으로써 미국이 더 큰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대량살상무기란 전통적인 재래식 무기가 아니라 인명을 대량으로 살상할 수 있는 핵, 화학, 세균무기를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QDR은 다수의 잠재적국들이 특히 핵무기를 보유해서 정권을 유지하고 지역패권을 장악하면서 다른 나라들을 위협하려 한다고 우려했습니다. 또한 이들 나라들이 핵무기를 테러집단에 넘김으로써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QDR은 북한을 이란과 함께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잠재 적대국의 일부로 지목했습니다. 핵을 포함해서 다양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이 미국이 우려하는 안보위협의 중심에 등장한 것입니다.

QDR은 북한이나 이란 같은 나라에는 전통적인 억지수단과 개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수 만개의 핵무기를 배치한 채 대립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소련이 적대국이긴 했지만 책임 있는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즉 소련 지도부가 미국과의 전면전을 벌일 경우 나라 자체가 송두리째 사라질 수 있다는 이성적인 판단과 냉정한 현실인식을 했기 때문에 서로의 무력을 억지하면서 소위 총을 쏘지 않은 냉전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이나 이에 버금가는 비이성적인 이념으로 무장한 테러집단은 자살폭탄 테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더 이상 잃은 것이 없다는 생각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2001년도에 발생한 9/11 테러도 바로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이러한 우려가 테러집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이란도 그럴 수 있다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에게 전통적인 억지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말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QDR은 이란과 북한이 분쟁의 와중에 대량살상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저지를 중요한 외교안보 목표로 삼고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확산방지안보구상, 즉 PSI를 비롯해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돈줄을 차단하는 등의 조치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최근 북한의 위조지폐와 돈세탁 문제도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 달러를 위조하거나 다른 불법행위를 해서 번 돈을 핵개발에 사용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북한을 둘러싸고 직간접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핵심은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바로 북한이 신속하고 성실하게 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포기가 현재 북한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일거해 해소해줄 수는 없을지라도, 북한이 짊어지고 있는 부담을 크게 덜어주고 활로를 열어 줄 것임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