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로므니아 ‘작은 통일’의 교훈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23.01.24
[스칼라튜] 로므니아 ‘작은 통일’의 교훈 루마니아 국민들이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트란실바니아와의 1918년 통일을 기념하는 행사를 즐기고 있다.
/AP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1월24일은 냉전 시대에 북한과 비슷하던 로므니아 사람들에게 의미가 깊은 날입니다. 로므니아 사람들은 ‘소통일,’ ‘작은 통일 기념일’로 알려진1859년1월24일을 기념합니다. 그 날의 역사와 교훈이 어떤 것이고, 또 남북한 사람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냉전 시대 때 북한과 가장 비슷한 동구라파 나라는 로므니아(루마니아)였습니다. 이유는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김일성 국가 주석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을 처음으로 방문해 북한식 독재자 신격화, 주체 사상과 독재주의에 첫눈에 반한 나머지 로므니아를 북한과 비슷한 독재국가로 바꿔 놓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로므니아 주민도 북한 인민들처럼 사악한 정치탄압, 인권유린과 식량난을 겪었습니다. 남북한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로므니아 통일 역사, 또는1945년부터 1989년까지 44년 동안 공산주의 독재국가였다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변한 로므니아를 교훈 삼아 배울 것이 많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의 비극적 경험 뿐만 아니라, 다른 로므니아 역사 또한 교훈으로 삼을 것이 있습니다. 로므니아도 남북한처럼 삼국시대가 있었고, 주변에 둘러쌓인 강대국들의 침략을 계속 당했습니다.


로므니아 삼국은 몰도바 (Moldova), 발라키아 (Valahia/Tara Romaneasca)와 트란실바니아라 (Transilvania)가 있었습니다. 그 삼국에서 살던 라틴계통인 로므니아 사람들은 수 백년 동안 같은 언어, 같은 문화, 같은 고전 역사와 같은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같은 민족이라 해서 항상 협력하지는 않았습니다. 전쟁할 때 동맹을 맺기도 하고 주변 강대국의 편을 들어 서로 싸우기도 했습니다. 결국 19세기 젊은 로므니아 지식인들은 프랑스와 독일, 서구라파에서 유학하면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봉건 제도를 극복해 나라를 개발해야 한다는 근대적 이념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지식인들은 주로 귀족 출신이었지만 봉건 제도를 극복하여 로므니아 삼국을 근대화 시켜 통일까지 이루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몰도바 (Moldova)와 발라키아 (Valahia/Tara Romaneasca), 이 두 지방은 무역을 발전시키기 위한 관세 동맹을 맺었고 1859양쪽 의사당 투표를 통해 같은 왕을 선출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몰도바와 발라키아는 통일되어 19세기 후반에 산업 근대화, 금융과 토지 개혁, 외국 투자를 받아 철도망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교회와 소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을 통해 같은 민족 형제들과의 통일의 장점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젊은 고위계층이 주도한 몰도바와 발라키아 관세 동맹과 통일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로므니아는 근대 국가로 탄생하면서도 나머지 영토였던 트란실바니아 (Transilvania) 지방은 오스트리아 – 마쟈르 (헝가리) 제국에 속했기 때문에 20 세기 들어서도 통일되지 못했습니다. 로므니아는 제 1차 대전에 참전해 동맹국인 프랑스, 영국, 미국과 로씨야 (러시아)에 합세해 전쟁에 이겼습니다. 전쟁이 로므니아 땅에서 치러지는 바람에 많은 민간인들은 피난을 떠나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잃고, 집도 파괴됐습니다. 당시 약 천만 명의 인구 중 민간인 26만5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오스트리아-마쟈르 제국이 무너진 뒤에야 트란실바니아는 마침내 로므니아로 통일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1918년 12월1일 제대로 된 신발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이 지역 주민들은 알바 이울리아 (Alba Iulia)라는 도시에 모여 로므니아와의 통일을 선언했습니다. 그날을 로므니아 국가 기념일, 또한 대통일,’ ‘큰 통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므니아와 남북한의 경우를 비교하면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습니다. 로므니아는 천년 동안 분단되어 있다가 제1차 대전 때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마침내 통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은 약 천년동안 통일 정치체제였지만, 일제시대와 제2차대전이 끝난 뒤 분단되었습니다.


로므니아 사람들은 제2차대전의 고통과 소련의 침략, 그 이후 공산주의 독재에 의한 인권 침해와 식량 위기에 이어 1980년대 후반 공산정권 붕괴 후 민주주의 국가로 향한 전진 등 수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1989년 12월, 로므니아에서 반공산주의 독재 혁명으로 공산 독재정권이 무너졌습니다. 로므니아 역사를 보면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3개 영토로 분열돼 있던 로므니아가 통일된 1859년1월24일, 1918년12월1일이  가장 의미가 깊습니다.
로므니아 통일 과정 역사를 교훈삼아 남북한 사람들이 배울만한 것은 무엇일까요? 남북한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북한은 주민들의 인권과 보건, 식량 안전을 희생시키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 추진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인권 유린을 포함한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번영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남북한이 통일되는 것뿐입니다. 남북한의 통일이 한민족에게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2023727일 남북한 정전 협정 70주년 기념을 앞두고 남북한 통일이 로므니아의 1859124작은 통일처럼 피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평화로운 과정으로, 남북한의 합의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의 독재, 탄압과 인권 유린을 극복하고 그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북한의 고위층과 일반 주민들입니다. 번영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통일되기 위해 북한은 김씨 일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봉건 제도와 같은 정치, 경제, 사회 체제를 개혁하고 현대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칼럼 내용은 자유아시아방송(RFA)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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