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김씨 일가에 희생된 프랑스 맑스주의자 자크 세디요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24.02.20
[스칼라튜] 김씨 일가에 희생된 프랑스 맑스주의자 자크 세디요 북한인권정보센터가 고발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내 가혹행위.
/연합뉴스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보고서는 10년전 2014년 2월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발표되었습니다. 그 보고서는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광범위한 인권 침해, 특히 북한 당국에 의해 정치범관리소와 다른 구금시설에서 자행되고 있는 비밀과 공개처형, 고문, 구타, 강간과 강제노동이 비인간적 반 인륜 범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지난 76년동안 김씨 일가 정권에 의해 그러한 통제, 탄압과 공포 속에서 살았습니다. 특히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많은 북한 주민들은 김씨일가 독재정권을 탈출하여 한국에 34만 여명이 정착했으며 수천 명이 미국, 영국, 까나다 (캐나다)를 포함한 제 3국에 정착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를 포함한 유엔 기관, 시민단체, 인권보호 단체들과 유엔 가입국은 북한의 인권 실상에 대해 탈북자 증언을 통해 깨닫았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북한의 사악한 불법구금시설에 대해 온 세계 앞에서 현실을 처음으로 폭로한 사람은 북한 주민이 아니라 외국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김일성 글을 번역하러 북한에 정착한 맑스주의자 시인 겸 번역가 베네수엘라인 알리 라메다 (Ali Lameda)였습니다. 라메다는 북한 당국의 의심을 받아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가 인권보호 단체인 앰네스티, 베네수엘라 정부와 김일성과 가까운 우정을 맺었던 로므니아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노력을 통해 결국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라메다와 함께 수감되던 프랑스 출신 자크 세디요 (Jacques Sedillot)는 석방되었으나, 수감되어 있는 동안 겪은 굶주림과 고문 때문에 평양에서 사망했습니다.


북한 당국의 잔인한 고문, 구타, 굶주림과 강제노동에 의해 희생된 프랑스인 자크 세디요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북한 김일성 국가 주석의 글과 다른 북한 정권 선전물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파랑스어권에서 배포하기 위해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정치국은 프랑스 언어학자 자크 세디요를 북아프리카 국가인 알제리의 수도인 알좌자이르 (알제)에서 1960년대 중반에 만났습니다. 나중에 북한 수용소에 같이 수감되어 있던 아리 라메다에 의하면 자크 세디요는 ‘훌륭한 사람, 진정한 국제주의자, 정직하고 용감했습니다.’ 열렬한 맑스주의자이던 세디요는 1930년대 에스빠냐 (스페인) 공민 전쟁에 참전하여 결국 우파 반란군 국민파에 패배한 군주제를 폐지시키려던 공화파군 대령이 되었습니다. 국민파 승리에 의해 에스빠냐 군주제는 복원된 후 세디요가 당시 프랑스 식민지이던 북아프리카 나라 알제리에 정착했습니다. 나중에 알제리가 독립된 후 60 세가 넘은 세디요는 북한 당국의 초청을 수락하여 북한 선전 부서의 프랑스어 번역과 출판물 책임자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세디요는 프랑스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고 사악한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라메다에 의하면 북한 당국에 의해 수감된 세디요는 간첩도 아니고 프랑스 정부 요원도 아니었습니다. 노동당의 긴급한 지시에 따라 특히 프랑스 식민지로부터 독립된 북아프리카 알제리, 마로끄 (모로코), 뜌니지 (튀니지)나 서부 아프리카 나라에서 프랑스어권 출판물 필요성을 강조하여 세디요는 프랑스로 가서 더 많은 프랑스 사람들을 모집해 프랑스어 번역과 선전 팀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그 팀을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세디요를 프랑스 간첩으로 거짓으로 비난하여 구속시켰습니다.


사실 세디요는 프랑스 공산당과 협조하여 프랑스 좌파에 북한 선전을 전파하기 위한 출판물과 음반을 포함한 효과적인 교육과정을 직접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프랑스 공산주의자들과 좌파 동조자들은 북한 주민들처럼 김일성을 찬양하는 선전을 맹목적으로 믿을 수 없었습니다. 중국의 문화혁명에 빗대 김일성을 신격화 시키려는 북한 당국의 선전이 터무니없고 괴기스러웠습니다. 세디요는 프랑스 300명 좌파 대상 여론조사를 했던 결과 그들이 북한의 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식 선전에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 사람들은 김일성이 어린 나이인14살에 공산당의 지도자였으며 혁명을 일으켜 항일 독립 투쟁 빨치산 반란군들을 지휘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은 김일성 신격화를 이런 식으로 비웃었습니다: ‘우리는 1920년대 니까라과 (니카라과) 젊은 공산주의자 겸 빨치산 반란군 산디노 (Augusto Nicolás Calderón Sandino)에 대해서만 들어봤지 1920년대 김일성이라는 훌륭한 북한 청소년에 대해 한마디라도 들었다면 그를 지원했을 것이다…’ 모든 프랑스 사람들이 세디요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북한 선전 출판물을 읽을 때 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세디요는 김일성이나 북한에 대해 나쁜 말을 한 적이 없었지만, 프랑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이러한 여론 조사 결과를 북한 당국에 그대로 보고했기 때문에 결국 숙청을 당했습니다. 세디요는 ‘프랑스 제국주의 대리인’ 겸 프랑스 간첩이라는 거짓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라메다에 따르면 세디요는 재판 내내 융통성 없는 태도를 취하며 모든 협의를 거부했습니다. 세디요는 1975년까지 구속되었습니다. 세디요의 마지막 소원은 아픈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고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사망했고 그후 세디요는 석방된 후 구속되어 있는 동안 겪은 고문, 아사와 강제노동에 의해 매우 아파 1976년 1월6일 평양에서 사망했습니다.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이던 자크 세디요는 김씨 일가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사상이지만 원래 세습과 정반대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종류의 세습, 특히 정치 권력의 세습을 반대합니다. 북한은 마르크스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닙니다.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고, 인민의 나라가 아니며, 공화국도 아닙니다. 북한은 김씨 일가의 봉건 왕국입니다. 북한 주민들을 착취하고 탄압하는 김씨 일가 정권은 한반도의 신 식민주의자입니다. 김씨 일가 정권은 북한 주민들을 억압하고 암흑기에 머물게 하고 있습니다. 자유, 민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대한민국, 즉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자 진정한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되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미래는 자유롭고 번영하는 민주적인 통일 뿐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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