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수필] 제네바 협정 위반 국가들

남한 언론에 따르면 국방부 국군포로대책위원회는 "베트남전에 나갔다가 1966년 9월 9일 사이공(현 호찌민)에서 실종되었던 당시 23세이던 안학수 하사를 지난 4월 통일부에서 납북자로 인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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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베트남전 국군 포로 1호'인 안학수 하사는 남북전쟁이후 첫 국군포로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안하사는 베트남전때 포로로 잡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을 거쳐 강제 납북되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북한방송으로 사실과 달리 안하사를 월북자로 소개하고, 베트남에서 잡힌 그를 공산주의 선전을 위해 이용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 남한에서 잡힌 남파 간첩의 진술에 따르면 1975년 안학수 하사가 북한을 탈출하려다 총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같은 진술에 따르면 안하사는 온몸에 상처가 있었고 그런 상처는 안하사가 당한 고문의 결과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쟁중 군복을 입은 상태에서 포로로 잡힌 군인들은 국제인도법, 즉1949년에 체결된 제네바 협정에 따라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1949년 제네바 협정에 따르면 포로를 억류한 국가나 단체는 그를 인도적으로 대우할 의무가 있으며 당연히 고문을 해서는 안되고 포로를 선전 목적으로 이용하여 타락시켜서는 안됩니다.

안하사를 베트남에서 포로로 잡아 중국을 거쳐 강제 납북, 고문을 시키고 선전 목적으로 이용하며 결국 암살했다는 것은 심한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 위반이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이 인권을 심하게 유린한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소식이 아닙니다. 2007년 미국 국방부는 '한국전쟁 포로들의 소련 이동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국군 포로들이 소련으로 끌려간 장소와 당시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남북전쟁 때 붙잡힌 미군 포로들이 아직까지 러시아에 생존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가 협력하여 작성한 것이었습니다.

1992년 이 보고서 작성을 도운 전 북한 내무성 간부겸 군총정치국장이던 탈북자에 따르면 수천명의 국군 포로들이 소련의 침엽수림 지역에 있는 수백여 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소련이 전쟁 포로들이 사망할 때까지 몇 십년 동안 침엽수림 지역 한가운데 있는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시켰다는 이야기도 그저 새로운 소식이 아닙니다. 국제인도법에 따르면 전쟁이 끝난 후 적군 포로들을 송환해야 하지만, 소련은 항상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이전 제2차 대전 때 야만스럽고 잔인한 대학살을 겪은 유럽의 유태인 다음으로 고통을 가장 많이 겪었던 사람들은 바로 러시아 국민들이었습니다. 소련 군인과 민간인 모두 합쳐 2천300만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또 많은 소련 사람들은 스탈린 공산주의 독재 시대때 수용소로 이송되어 침엽수림에서 사망했습니다.

러시아군에게 잡힌 다른 나라 포로들의 운명도 비참했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루마니아 언론은 소련군이 중앙아시아로 이송한 루마니아 포로들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그 루마니아 군인들은 복잡하고 비극적인 루마니아 근대 역사의 피해자들이었습니다 .

제2차 대전 때 루마니아는 나치 독일과 소련으로부터 최후 통첩을 받고 땅을 많이 잃었습니다. 또 루마니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나치 국가가 되었고, 독일과 동맹을 맺어 소련을 침략하는 데 동참했습니다. 결국 루마니아의 젊은 왕이 쿠데타를 일으켜 나치 정권을 무너뜨려 독일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루마니아가 소련의 동맹국이 되었지만, 붉은 제국이던 소련은 역시 공산주의 개척국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은 그전에 소련군에게 붙잡힌 루마니아 군인들을 송환시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루마니아와 소련의 휴전 상태를 무시하며 루마니아 군인들을 계속 포로로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소련은 그들을 주로 중앙아시아에 있는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결국 소련군은 루마니아 왕을 추방시키고 결국 루마니아는 공산주의 독재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천 명 루마니아 군인들이 몇 십년 동안 소련 수용소에서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 공산주의 정부는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몇년전 루마니아 언론은 카자흐스탄에 있던 수용소에서 사망한 루마니아 포로들에 대해 많은 보도를 했습니다. 카자흐스탄 수도로부터 40km 떨어진 카라간다 수용소에서 루마니아 군인 1천200명이 강제 노동을 하다 굶주림과 추위, 과로와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카라간다 수용소에서 사망한 독일, 일본, 이탈리아, 헝가리, 핀란드와 헝가리 포로들을 위한 기념비들이 각나라마다 있습니다.

루마니아 포로들을 위한 기념비는 단순한 검은 십자가입니다. 공산주의 독재 때는 소련 침엽수립에서 고생하다 사망한 루마니아 포로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었고 그들을 기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루마니아가 개방되어 그들을 기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전 때 국군 포로들의 운명 또한 제2차대전 때 루마니아 포로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추운 소련 침엽수림에서 사망한 국군포로들을 위한 기념비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참여하려면 국군포로들의 이송과 관련된 정보를 빠른 시간내에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