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색된 남북 관계의 원인을 점검하며 2005년에는 북한의 역동적인 변화를 기대한다는 김순길 남한 건국대 교수의 논평입니다. 논평은 논평가 개인의 견해입니다.
최근 북한은 올해 하반기 이후 남북대화 및 교류협력이 중단된 것은 전적으로 남한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때문이라고 우격다짐을 벌리고 나섰습니다.
북한의 한 선전선동기관지는 “올해 하반기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과 8.15통일행사, 민족작가대회 등이 예정대로 열리지 못한 것은 북남 사이의 화해와 통일을 바라지 않는 안팎의 반통일 분열세력의 책동 때문이었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남한 당국을 겨냥하여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편승해 외세와의 공조를 떠들며, 동족과의 대결을 노린 군비증강과 무력중강에 열을 올렸고, 제13차 장관급회담에서는 공동보도문의 ‘우리 민족끼리’의 표현까지 삭제하도록 했으며, 민간 추모대표단의 평양방문을 악랄하게 가로막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끝으로 북한은 “내외 반통일 세력의 이 같은 책동으로 조선반도에서는 전쟁위험이 갈수록 짙어가고 있으며 북남관계 발전에 차단봉이 내려지게 됐다”고 논평했습니다.
차단봉이 내려졌다는 북한의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과연 누가, 언제 그 차단봉을 내렸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건 데 차단봉을 내린 쪽은 남쪽이 아니라 북쪽입니다. 북한은 지난 8월 초순에 열리기로 했던 제15차 장관급회담을 일방적으로 결렬시키면서 북과 남으로 오가던 교류의 다리위에 차단봉을 내려버렸습니다.
북한 당국의 교류협력 차단에는 나름대로 계산이 깔려있었지만 그것은 북한이나 남한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남한은 북한에 대한 식량 및 비료지원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대화의 차단봉은 내려졌을지언정 지원의 차단봉은 내려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남한은 경제적·인도적 지원을 계속하는 한편 끊임없는 대화촉구의 메시지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더구나 북측의 요구를 수용하여 남한은 주적개념 삭제가지 실행에 옮긴다고 합니다.
특히 여기서는 최고 지도자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유럽 및 남미순방 때와 특히 몇 일전 일본방문 시 한반도문제를 남북 당사자끼리 푸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말을 수 차 강조함으로써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였습니다. 남한 대통령의 말속에는 그야말로 민족끼리 잘 해보자는 메시지가 듬뿍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왜 북한 당국자들은 이 진심을 몰라주는 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알고 있는 대로, 남한 정권은 선거로 교체되는 순환의 속성상 임기 내에 뭔가 업적을 이루려는 욕망을 지니기 마련입니다. 북한이 이 점을 잘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민족문제를 평화적이고 순리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북한은 체제를 단지 현 수준에서 고수하느냐, 아니면 변혁의 길로 들어서 새로운 체제를 창출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기로의 이정표가 남한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남한식의 제도를 모방하면 그것이 북한의 성공이요, 통일의 지름길이 아니겠습니까. 2004년은 이렇게 아쉽게 흘러가지만 새해 2005년에는 뭔가 북한의 역동적인 변화를 기대해마지 않습니다.
북한은 다른 곳에서 탈출구를 찾지 말고 남한으로부터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