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8월 김일성은 노동신문을 통해서 ‘자주성을 옹호하자’라는 사설을 발표합니다. 오늘날 북한에서도 잘 기억되지 않는 사변(사건)이지만, 이 사설이 주체사상의 탄생을 알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북한은 공식적으로 1930년대 김일성의 유격대 활동 시기부터 주체사상이 존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1955년 이전에 나온 김일성 노작과 북한 신문의 어떤 글에서도 ‘주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김일성은 1955년 12월 처음으로 ‘주체’라는 말을 썼습니다. 당시에 그의 목적은 친소련 정치 노선을 주장했던 고려인 출신 간부들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소련 대사관의 공개된 기밀 자료 중 1950년대 자료에서 ‘주체’라는 말에 대한 흥미로운 부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소련 외교관들은 북한 정치의 내막을 잘 알았고 따라서 그들의 평가는 정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련 외교관들은 주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 당시에 노동당 사상 담당자였던 김창만이라고 지목합니다. 1966년 숙청 당해 유배지나 감옥에서 사망한 김창만을 기억하는 사람은 지금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까지도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이야기하진 않았습니다. 1960년대 중반까지 북한의 공식 사상은 소련과 중국에서 수입된 마르크스레닌주의 였습니다. 김창만은 1955년 김일성의 연설을 작성하면서 ‘주체를 세우자’고 썼습니다. 그러나 당시 주체의 의미는 ‘우리식으로 살자’ 입니다.
관영 언론에 ‘주체사상’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시기는 1960년대 입니다.
주체사상이 60년대 등장하기 시작한 이유는, 국제관계 때문입니다. 당시 사회주의 진영의 핵심 국가인 소련과 중국은 심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국경에서 전투까지 벌어졌습니다. 소련도, 중국도 각기 자신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주장했고 반대편은 수정주의와 패권주의, 반동사상의 늪에 빠졌다고 시끄럽게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이 다툼에 연루되길 원치 않았습니다. 당시 북한의 대외정책은 나름 합리적인 ‘등거리 외교’였습니다. 중국 편에도, 소련 편에도 서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진영 국가라면 무조건 이론을 사상으로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수많은 경우 쓸모없는 거짓말에 불과한 이론 또는 사상이었지만 반드시 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은 소련식 마르크스레닌주의도 아니며 중국식 마르크스레닌주의도 아닌, 북한에만 있는 사상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선언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나온 것이 바로 주체사상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수입품인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한다면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1960년대 중반부터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설명에 불과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주체사상에 따라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배경을 따져보면 1966년 무렵 북한의 주체사상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주체사상은 구체성이 약하고 내용이 빈약한 철학이지만, 철학보다 정치 선언으로 봐야 합니다. 주체사상의 등장은 사회주의 진영 내에서 북한의 독립 선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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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