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통일을 하지 말자?
2024.09.26
오랫동안 북한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남한 사회에서 지난주부터 북한 문제가 다시 토론과 정치 논쟁의 주제가 됐습니다. 지난 9월 19일, 문재인 전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은 ‘남북한 통일을 하지 말자’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충격적인 발언이었는데요. 왜냐하면 임종석은 젊은 시절부터 통일을 주장하고 북한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취해 온 대표적인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임수경 방북 사건을 아직 기억하고 계실 텐데요. 임수경은 자신의 외모와 행동 때문에 북한에서 ‘통일의 꽃’으로 불리며 대단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임수경을 북한에 보낸 사람이 바로 20대 초반의 학생 운동 지도자 중 하나였던 임종석이었습니다.
1989년 임수경의 방북을 기획한 임종석은 2018년, 문재인의 평양 방북을 계획한 사람 중 한 명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대북정책의 핵심 담당자 중 한 명이었고 통일 운동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경력 때문에 ‘통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정치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습니다. 그는 현 단계에서 남북한의 목적은 통일보다 ‘평화공존’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는 얼마 전에 김정은이 이야기했던 적대적 두 국가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장기적으로 한반도에서 좋은 관계를 맺은 두 개 국가의 등장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날 문재인 전임 대통령은 남북 통일에 대한 담론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감안하면 임종석의 ‘양국론’은 임종석 개인의 생각이 아닌 한국 야당 즉 진보파의 새로운 정치노선의 신호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윤석열 한국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파 정치인들은 임종석의 발언을 강하게 비판하고 통일을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통일은 평화 통일이며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양측의 논리를 살펴봅시다.
진보파는 대북 정책을 펼칠 때 북한 정권의 태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오래 전부터 있습니다. 바꿔 말해서 그들은 북한 측이 듣기 싫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평양을 의식해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김정은이 ‘두 국가론’을 주장하기 시작하자 진보파는 통일을 하지 말자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대로 보수파는 진보파가 통일 구호를 포기했기 때문에 얻는 이득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애국심이 깊고 민족주의 성향이 아직 강합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통일을 달성하는 것을 민족의 최고 목표로 여기는 세계관입니다. 때문에 많은 한국 사람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통일이 없어도 된다’고 하는 진보파는 애국심과 민족 의식이 약한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반면에 여전히 통일을 추구하는 보수파는 민족 의식을 지키는 사람들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정치적 계산에도 불구하고 이번 임종석의 발언은 흥미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김정은이나 김정일과 같은 북한 지도자들의 선언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요. 그러나 이번 그의 발언으로 북한 최고지도자의 주장이 한국 국내에서 큰 논쟁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