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호 - 남한 언론인
오늘은 지난 8월말 세미나 참석 차 다녀온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와 한민족의 문화적 뿌리에 대한 얘기를 생각해보려 한다.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간을 운행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중간지점에 위치한 이르쿠츠크에서 차로 한시간 가량 거리에 있는 바이칼호수는 타타르어로 '풍부한 물'이라는 뜻이다.
말이 호수이지 배를 타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바다나 다름없다. 333개의 강으로부터 강물이 흘러 들어가 만들어진 바이칼호는 남한 면적의 약 3분의 1 (넓이 3만1500㎢)로 세계 담수자원의 20% (미국 5대호와 같은 수량)를 담고 있어 인류의 마지막 식수자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깊이 또한 최대 수심 1620m, 평균 수심 730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호수물 속 40m까지 수정처럼 투명한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았다는 이 호수는 한 여름에도 섭씨 4도로 차서 발을 담그고 2, 3분 이상을 견디기 어렵다.
시베리아 사람들이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부르는 바이칼호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환경보호를 위해 러시아정부는 호수일대에 호텔 등 건축물을 함부로 짓지 못하게 하고 있다. 바이칼 토착 원주민인 브리야트 몽골족은 호수가 다칠까보아 돌 하나도 던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까지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에 대한 확실한 정설은 없지만 일부 학자들은 북방 몽골로이드 황인종들의 여러 갈래 중 하나가 바이칼 지역을 떠나 목초지를 따라 동으로 동으로 이동해, 마침내 한반도에 이르러 농경민족으로 정착하게 되었다는 학설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국학자인 육당 최남선 선생도 이 바이칼호를 가리켜 한민족문화의 발상지로 보았다. 안톤 체홉은 “시베리아의 시는 바이칼에서 시작된다”고 찬미했다. 바이칼호에 매혹되어 시베리아를 유랑했던 춘원 이광수는 그의 작품 ‘유정’에서 일본으로부터 달려온 여주인공 남정임이 시베리아 통나무집에서 최석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다고 그리고 있다.
“선생님, 저는 최선생께서 계시던 바이칼호반의 그집에 와서 홀로 누웠습니다. 병든 저는 혼자 누워서 얼음에 싸인 바이칼호의 눈보라치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한민족의 발상지가 바이칼호 일대라는 가설을 떠나서라도 바이칼호 일대의 문화적 토양이 한민족의 토착문화와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한다. 특히 시베리아 샤마니즘의 성지라고 하는 바이칼 알혼 섬은 역사적으로 코리(Khori)족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고 이 코리족이란 바이칼 원주민은 고구려의 조상인 북부여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학설이 있다.
브리야트 몽골인들의 외모는 한민족과 많이 닮아 이들이 한국인 의상만 입으면 영낙없는 한국인이었다. 브리야트 몽골인의 샤머니즘과 한국의 무속신앙, 그리고 전통풍속에서도 유사성이 발견된다. 가령 이들은 한국의 솟대와 비슷한 무속 신앙을 갖고 있고 조상숭배가 깊어 보통 6대의 조상은 다 기억하고 있으며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될수록 이면 동물이나 나무도 안 죽이고 자연으로부터 꼭 필요한 양만 얻고 있다. 사냥에 나설 때도 미안하다는 뜻에서 사냥전 신에게 반드시 제사를 드리고 있다.
바이칼호 일대는 관광 및 생태계의 보고다. 바이칼호는 스스로 정화작용을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속이 다 보이는 투명한 물고기 골로미양카와 이 호수를 정화시킨다는 작은 새우 애피슈라 등 2천6백 여종의 다양하고 고유한 생물들이 살아있는 바이칼호 뿐 아니라, 일대의 생태계는 생태 관광지로 얼마든지 개발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소중한 인류의 자원이며 한민족 문화의 근원이라는 바이칼호 일대가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로 자연생태계가 훼손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더 절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