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호 칼럼: 두만강 녹둔도에 제방 쌓는 러시아


2006.12.04

북한과 러시아가 접한 두만강 하구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인 녹둔도는 함경북도 경흥 조산보에서 불과 4km 떨어져 있는 섬으로 크기는 서울 여의도 넓이의 4배 가량 되는 우리 영토다.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에 의하면 이 지역에 북방 여진족들의 침입이 잦아 조선조 세종 때엔 육진을 설치해 여진족들의 침입을 방비했고 선조 때엔 이순신 장군이 일시 조산보의 만호로 부임해 북방족들의 침입을 물리친 기록들이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녹둔도를 조선 영토로 명기하고 있고 고종 때의 '아국여지도'는 당시 녹둔도의 조선 농민 민가가 113호, 인구 8백 22명으로 농경지를 개간하고 민족 풍속을 지키며 살고 있다고 전한다. 녹둔도는 당시의 '경흥읍지'에도 함경도 육지와 붙은 상태로 그려져 있었다고 하는데 19세기 중반쯤 두만강 상류의 모래가 밀려 내려와 쌓이면서 이 섬이 러시아 쪽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필자도 몇 해 전 남한의 지리 역사학자들과 함께 연해주의 포시엣트, 핫산을 거쳐 녹둔도를 답사한 적이 있다. 끝없는 갈대밭이 펼쳐져 있고 나지막한 구릉들이 군데군데 보이는 그곳은 마침 우기라서 계속 내린 비로 늪지대 같았다. 거주민은 한 사람도 없다. 멀리 두만강 가까이 러시아 국경 수비대 초소만이 보이고 두만강 대안의 북한 땅엔 연 이은 산들 앞에 높이 10여 미터의 조산보도 보였다. 들판엔 한창 해당화, 엉겅퀴, 도라지, 참나리, 뱀꽃, 질경이들이 피어 있었다.

남한의 지리학자들은 앞서 녹둔도에서 옛 한인들의 주거지와 7개의 연자방아와 놋쇠 밥솥 등을 찾아냈다. 토성을 성축한 곳으로 보이는 곳 안쪽엔 경작지로 보이는 밭이랑들도 남아 있었다. 이처럼 수백 년간 한인의 생활 터전이던 녹둔도는 1860년 청나라와 러시아간에 맺은 베이징조약에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 일대가 러시아에 귀속되는 과정에서 함께 소련령으로 귀속되고 말았다. 그 후 대한제국은 러시아에 녹둔도 반환을 요청 했으나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북한은 지난 1990년 구소련과 국경조약을 맺으면서 녹둔도의 러시아 영유권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주 러시아 연해주정부 자료를 입수한 남한 신문 보도에 의하면 러시아가 국경지대 강화를 이유로 녹둔도에 제방을 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2004년 11월 “러시아-북한 국경 강화를 위한 두만강 하상 안정 프로젝트”에 착수해 제방공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군사적 요충지인 이 지역의 영유권을 확고히 해놓으려는 의도인 것 같다. 현재 러시아가 군사기지를 설치해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녹둔도에 제방까지 축조하면 이후 남북한 통일이 된 후에도 남북한은 영유권을 되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녹둔도는 1860년 베이징조약 당시 조선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러시아에 빼앗긴 땅이다. 역사적, 지리적으로 오랜 기간 조선의 영토였던 녹둔도의 러시아 귀속은 불법, 부당한 처사다. 남·북한은 이 같은 경우, 부당한 조약 내용의 무효화 등 국제법상 어떤 조치를 장차 취할 수 있는 것인지 종합적 연구와 대비를 갖추어 놓아야 한다. 특히 북한은 러시아와 영토가 맞닿아 있는 직접 당사국이다.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북한이 구소련과의 국경조약에서 베이징조약에 따른 국경선을 그대로 인정한 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남한의 학자들은 두만강이 역사상 국경선으로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을 북한당국이 알고 있는 것인지 부터 의문을 제기한다. 한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의 절반도 중국에 넘어가 버렸다. 압록강과 두만강 지역엔 이렇게 빼앗기고 또 지금도 영유권 분쟁이 있는 땅들이 있다. 남북한은 수천 년간 지켜 온 민족의 땅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녹둔도처럼 청나라와 러시아간의 부당한 조약으로 빼앗긴 영토는 반드시 되찾아 와야 한다. (2006.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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