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광복 60주년을 맞은 8월 15일, 남북한 이산가족들이 분단 반세기 만에 대형 모니터를 통해 처음으로 시도된 화상상봉을 했다.
남한에서는 상봉자 20명과 그 동반가족 57명이 북한에 있는 가족 50명을 상봉했고 북한에서는 상봉자 20명이 남한가족 79명을 각각 상봉해 모두 226명이 이번 화상 상봉행사에 참여했다.
남북한 상봉장을 연결해 화상으로나마 부모형제들의 살아있는 얼굴을 확인한 이산가족들은 기쁨과 애가 타는 가운데 울고 또 울었다. 기쁨은 부모형제가 살아있는 모습을 본 것이었고 애가 타는 것은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을 수도, 껴안고 부모형제간의 온기를 느껴볼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북쪽의 죽은 아들을 사진으로 본 남쪽의 노모는 “아들아”를 외치며 모니터로 다가가 부등켜 안으려 했고 한국전쟁으로 가족이 헤어진 북쪽의 아내와 아들, 딸은 휠체어를 타고 나온 남쪽의 아버지에게 “여보” “아버지”를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번 화상 상봉은 그나마 남북한 가족 226명이 상봉이란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남한에 있는 10여만 명의 이산가족들과 북한에 있는 숫자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산가족들에게 언제 가서 행운의 상봉기회가 주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또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기회를 영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상봉이 된 남북한 이산가족 수는 9,979명이다. 남측에서 대기하고 있는 신청자만 10여만 명이다.
그동안 10여 차례에 걸친 이산가족 직접 대면 상봉에 이어 화상상봉까지 이루어진 것은 남·북 관계가 나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이번 화상상봉을 보며 몇 가지 과제와 가장 바람직한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과제는 화상상봉의 숫자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언제 또 남북의 이상 가족들이 화상상봉을 통해 서로 만나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현재 방식으로 한다면 남북에서 동반가족 말고 직접 상봉자 각각 20여 명 씩으로 극히 제한된 숫자만 상봉 기회가 주어질 뿐이다. 두 번째로 이번 화상상봉을 통해 만나는 시간은 불과 1시간 정도였다. 반세기 넘게 애타게 기다린 긴 세월치고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세 번째로 화상상봉은 57년 또는 55년 만에 만난 남북의 부모형제 가족들이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98세 된 남쪽 노모의 얼굴을 칠순의 북쪽 딸들이 아무리 쓰다듬어 보려고 해도 쓰다듬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보기에도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산가족 문제가 인도주의 문제라는 것은 새삼 더 얘기할 필요가 없다. 남과 북은 이산가족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라고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산가족 상봉에 제한을 두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지리적으로나 교통 상 불편한 금강산에 상봉장을 설치하려는 것인가. 진정 남북이 인도주의 정신에 따른다면 남북한 협상과 대하의 장소이며 또한 남북한의 접점으로 교통 상으로도 편리한 판문점에 이산가족 상봉장을 만들어 상시로 상봉토록 하면 되는 것 아닌가.
8·15 이산가족 화상상봉은 한마디로 남북의 이벤트성 행사 같은 느낌이었다. 남·북한은 이번 주 남·북적십자 회담을 갖는다. 남북한이 진정 이산가족들의 반세가가 넘는 비극과 맺힌 한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면 남·북 이산가족들이 편리하게 만날 수 있는 곳에 상봉장을 만들어 상시로 상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전쟁 중 국군포로들과 납북자 가족들 문제도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에 앞서 먼저 생사확인을 할 수 있는 서신교환도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 (2005. 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