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합의했던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이 북한의 취소통보로 무산됐습니다. 북한은 지난 24일 남한측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25일 진행하기로 했던 열차 시험운행에 대해 군사보장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고, 남측의 친미 극우보수세력이 불안정한 사태를 조성하고 있어 시험운행은 예정대로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남한측은 23일 북한의 군사보장 조치를 끌어내기 위해 열차에 탑승할 남측 인사 명단을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북측에 전했으나 북한은 이날 오후 전통문을 보내 서해상 충돌 방지와 같은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며 남측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이로써 55년만에 경의선 남북 철길이 열리게 됐다던 지난 12일의 남북합의가 없었던 일로 돼버렸습니다. 북한은 지난 2004년 6월과 2005년 7월에도 각각 남북 철도 시험운행에 합의했다가 군부가 동의하지 않는다며 계획을 취소했었습니다. 그러면 북한이 현시점에서 열차시험 운행을 취소한 의도가 무엇인가.
첫째는 북한 군부가 강력히 반발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 노동당과 내각에서는 시험운행 추진에 찬성했겠지만 군부에서는 남측과의 급속한 관계 개선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반대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남한측으로부터 보다 큰 것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용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번 남북장성급회담에서도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설정 논의를 먼저 하자며 남북한간 군사현안에 대한 합의를 미루었습니다. 따라서 남한측으로부터 NLL 재설정이라는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열차 시험운행 취소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남한정부는 열차 시험운행 성사를 낙관하고만 있었습니다.
남한정부는 북한 군부가 동의가 없어도 시험운행을 할 수 있다며 남한측 탑승자 명단을 북한에 전달하는 계획까지 밝혔습니다. 불과 24시간 뒤에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조차 헛짚은 것입니다.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열차 시험운행이라는 이벤트성 업적과시에만 급급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향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 우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다음 달 방북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김 전 대통령이 기대했던 열차 방북을 무산시킴으로써 김 전 대통령 방북의 의미도 퇴색시켰습니다.
또 기존의 남북대화 통로는 계속 유지되겠지만 남한측의 대북경제지원은 축소되거나 중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북철도 취소를 그냥 넘길 수 없는 남한정부는 북한측에 보낼 예정이던 철도자재와 신발, 의류, 비누 등 경공업 원자재 지원은 일단 연기한다는 방침입니다. 중요한 것은 약속을 밥 먹듯이 위반하면서 민족을 우롱한 북한 당국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하고 7천억원의 예산을 들이고도 시험운행에 실패한 남한정부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