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4일 개통 9일째인 신압록강대교를 건너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은 것을 두고 전문가들의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북중 친선 강화와 경제협력, 미북 대화를 앞둔 사전 조율 가능성과 함께 중국의 압력에 의한 원치 않은 행보였을 것이란 분석까지 거론된다.
김정은 방중, ‘중국 압박’ vs ‘전략적 선택’
북한 노동당 39호실 출신의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는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을 중국의 압력과 유도의 결과로 봤다.
리 대표는 25일 RFA에 중국 지도부가 오랫동안 방치된 신압록강대교에 불만을 품고 개통을 압박한 끝에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한 북한도 어쩔 수 없이 빗장을 열었는데, 김 위원장이 그 다리를 직접 건너 단둥까지 방문한 것은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정호] 왜 12년 동안 막았던 그 도로(다리)를 따라갔는가를 생각하면, 중국이 뭔가 그 유도를 잘했다고 봅니다. 내 생각에는 압력도 있지만, 유도를 그럴듯하게, 김정은이 거기 넘어오지 않으면 안 되게끔 뭔가 한 것 같습니다.
신압록강대교는 201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장성택 당시 노동당 행정부장이 추진해 중국 측 투자로 2014년 완공됐다. 하지만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된 뒤 사실상 방치됐고, 12년 만인 지난 10월 15일에 정식 개통됐다. 반면, 북한은 러시아와 잇는 두만강 자동차 다리를 착공 16개월 만에 완공해 지난 9월 7일 개통했다.
또 리 대표는 김 위원장이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해석했다. ‘항미원조’는 중국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북한을 도왔다는 뜻으로, 자국의 6·25전쟁 참전을 일컫는 표현이다.
북한은 그동안 한국전쟁에 대해 김일성 주석이 미국을 물리친 ‘조국해방전쟁’으로 선전해 왔고, 김씨 일가 3대 세습의 정통성도 이 서사에 기대고 있다.
따라서 리 대표는 김 위원장이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은 것에 대해 “김씨 일가가 수십 년간 피해 온 행보”라고 설명하고, 이번 방문 역시 중국의 압력 없이는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 담당관을 지낸 시드니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일을 맞아 김 위원장이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은 것은 의미가 있다며, 그가 능동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사일러 고문은 26일 RFA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김 위원장이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안전지대’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중국 어느 쪽도 북한이 상대방과 관계를 맺는 것에 지나치게 우려하지 않으면서도, 자국의 이익이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하는지를 지켜보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사일러 고문은 이어 “러시아의 대북 지원이 북한의 역량을 키우고, 김 위원장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한국을 상대로 제한적인 무력 사용까지 고려하도록 부추기는 상황이 된다면 중국은 우려할 것”이라면서, 김 위원장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은 이러한 중국의 우려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북 정상회담 사전 조율?... “자주외교 모순” 지적도
한국 통일연구원의 정은이 북한연구실장은 26일 RFA에 이번 방문을 북중 군사 교류 흐름의 연장선에서 봤다고 밝혔다.
양국은 지난 6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군사 교류 강화에 합의했고, 김 위원장의 단둥 방문 당일인 24일 북한은 황해북도 신평군의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묘를 열사릉원으로 개건해 준공식을 열었는데, 정 실장은 중국이 북한과 군사 교류에 적극적인 배경에는 북러 간 군사협력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분석했다.
리 대표는 시진핑 주석이 아닌 중국 권력 서열 4위인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김 위원장을 맞았다는 점도 짚었다. 특히 리 대표는 북한 매체가 공개한 사진에서 왕후닝 주석이 김 위원장과 중앙석에 나란히 앉은 장면에 주목했다.
[리정호] 북한 사람이 볼 때는 ‘아니 우리 지도자를 신적인 존재로 모시고, 우리 지도자가 제일이라고 했는데 나란히 앉아 있으면’... 그런 것도 ‘중국의 대국주의’ 하면서 뭔가 위압을 느끼게 하는 거란 말이에요. 이건 말하자면 황제 앞에 찾아간 지방 군주 같은 격이 됐다는 거죠.
한국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애초 김 위원장의 중국 측 상대가 당초 서열 2위인 리창 국무원 총리로 계획됐다가 왕후닝 주석으로 바뀐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이 다음 달 18~19일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미북 정상회담과의 연관성도 거론된다.
정 실장은 북한의 최선희 외무상과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과 마자오쉬 외교부 상무부부장 등 양측 외교 라인이 대칭으로 배치된 점을 근거로 APEC을 전후한 미북 정상의 만남을 위한 사전 조율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내년 4기 집권을 앞두고 미북 대화의 중재자로서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리 대표도 미북 대화에 관한 조율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내세워 온 자주외교와 모순된다고 지적했는데, 김 위원장이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기 전 중국의 승인부터 구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이 2018년 첫 미북 정상회담을 앞뒀을 때 시 주석을 먼저 만났지만, 당시는 정상 대 정상이었고 이번에는 서열 4위가 상대였다는 점도 리 대표는 꼬집었다.
다만, 북중 양측의 공식 보도에는 미국 관련 언급이 없었으며, 미국 국무부는 김 위원장의 방중과 관련한 RFA의 논평 요청에 26일 오후까지 답변하지 않았다.
한편, 윤민호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26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에서의 미북 정상회담 조율 목적 여부에 대해 “관련 부분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우리 정부 역할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에디터 노정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