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중국 경제 개혁과 교훈” - 중국과 북한의 비교
2005.05.02
주간 기획, “중국의 개혁, 개방이 주는 북한에 대한 교훈”을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3년 전 경제개선 조치를 통해 나름의 개혁, 개방의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진정한 경제개혁을 위해선 아직도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주간 기획 그 세 번째 시간으로 북한은 과연 20여 년 전 중국과 같이 개혁, 개방에 나설 준비가 돼 있는지 알아봅니다. 진행에 양성원 기자입니다.
북한의 개혁, 개방조치와 관련해 근래 가장 내외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2002년 7월의 ‘경제관리개선조치’였습니다. 당시 북한의 이 같은 조치는 과거 중국의 개혁, 개방 초기와 비슷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조치의 핵심은 물건값 현실화 등 가격개혁과 임금인상, 또 배급제의 단계적인 폐지, 또 기업 자율성과 차등임금제 도입 등 기업책임 경영제로의 전환 그리고 환율 현실화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평양에서 4년째 거주하고 있는 현직 스웨덴 대사는 지난해 남한의 한 북한 전문가를 만나 북한은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로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 근거로 북한 종합시장의 물가가 시장 수요공급 상황에 따라 등락하는 것, 또 근로자의 임금이 성과급으로 지급되는 것, 그리고 북한주민들이 직장에서 받는 월급 이외에 부업으로 하는 돈벌이에 관심을 갖는 것 등을 제시했습니다.
유럽에서 오랜 외교관 생활을 했던 한 북한의 외자유치 담당 기업인은 지난 3월 미국 Los Angeles Times 신문과의 회견에서 북한은 국가주도 경제체제를 변화시켜 중국과 같은 점진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북한은 혁명적이었으나 지금은 혁명 보다 발전을 선호한다, 또 북한은 중국의 개혁, 개방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우려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의 말대로 북한은 중국을 따라 개혁, 개방의 길로 나선 것일까요?
중국과 북한의 경제개혁 비교 전문가인 남한 인천대학교의 박정동 교수의 견해는 이와 다릅니다. 그는 북한 당국이 부분적인 경제제도 개혁을 하곤 있지만 본격적인 개혁, 개방에 나서기 위한 시동을 걸지 못하고 있고 그 결과 효과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합니다.
박정동: 2002년 북한과 70년대 후반 중국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중국은 지도부 자체가 스스로 시장경제로 변화해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덩샤오핑을 위시해 최고 지도자를 비롯해 군부도 모두 중국의 경제 발전만을 최우선 목표로 했다. 하지만 북한은 전혀 그런 자세가 없다. 경제 특구를 만들어도 최고 지도자나 군부가 일언반구 이야기가 없다.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안한다고 공표까지 하는 마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성, 나진, 선봉에 경제특구를 만들어봐야 외국 자본이 신뢰가 없어 투자를 안 한다. 설사 임금이 무료, 땅을 무료로 준다 해도 하루아침에 투자금액을 날릴 위험을 무릎 쓰고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자본이 북한으로 들어가 공장이 돌아가고 그 결과 물자 공급 측면이 나아지지 않으면 가격개혁을 해봤자 인플레이션만 초래되는 것이다.
하지만 남한 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북한이 2002년 7월 취한 경제관리 개선조치에 큰 의미를 부여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03년 초부터 북한 당국은 종합시장을 만들었다면서 북한 주민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장사로 나선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금 북한의 청년 장교, 당원, 인텔리들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이 힘들게 일해 월급으로 4000원 정도 받는데 옆집에서는 장사로 돈을 많이 벌어 집을 옮기고 자가용을 굴리는 것을 보면서 소위 배고픈 것은 참지만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형국이라는 설명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북한의 변화가 전술적 제스처가 아닌 소위 본질적 변화로 가기 위한 의미 있는 변화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실제 지난 3월말 북한의 박봉주 내각 총리의 중국 방문과 관련해 북한이 중국 경제개혁 배우기에 주력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도 박정동 교수는 단지 립 서비스, 즉 입에 발린 말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박정동: ‘천지개벽이다’라고 말하는 것, 북한이 중국을 배운다는 말들은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지도부가 실제 중국처럼 액션을 취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일부에서 북한이 중국식으로 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오해다. 학문적으로 볼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으로 북한 지도부 자체가 큰 각오를 해야 한다는 점을 우선 꼽습니다.
박정동: 개혁, 개방으로 수반되는 여러 불협화음을 감수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 또 해외자본, 특히 동포 자본의 유치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핵문제 해결하고 정치적 안정을 먼저 취해야 한다. 군사, 외교도 경제 발전을 위한 종속 변수로 둬야 한다. 중국처럼 인민공사 해체, 협동농장 해체, 국유기업의 민영화라든지 대단히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중국 전문가인 김일평 미 코네티컷 주립대 명예교수도 북한이 해외자본을 유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김일평: 중국 개혁 초기 경제개발에 나섰을 때 서방 나라들의 대중 투자가 없었다. 하지만 초기 중국 투자에는 해외 중국 교포, 즉 화교들 역할이 컸다. 외국에서 관심을 갖고 그 후에 서양 사람들도 투자를 시작했다. 북한은 재일동포, 재미동포들의 투자 많이 기대하는 데 아직 끌어들이지 못한다. 북한이 좀 더 개방적이고 경제를 개혁하겠다고 하면 해외 동포들에게 인센티브를 줘야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실제 탈북자들은 북한의 경제관리 개선조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지난 98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3년 동안 심양의 한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도 했던 탈북여성 김 씨는 북한이 최근 경제개선 조치를 취했다고 하는데 정치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을 더 억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탈북여성: 북한에서 흔히 말했던 것이 중국은 겉으로는 사회주의고 속은 자본주의라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북한도 조금씩 변해갔으면 좋겠다. 2002년 7.1 경제조치 이후 북한이 변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겉으로는 장사도 좀 할 수 있고 배급제도 폐지되고 그럴지 몰라도 속으로는 정치적으로 더 억압당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목에다 줄을 매고 끌면 그냥 끌려가는 것이다. 따라 오면서 뭘 먹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냥 끄는 것이다. 지금 북한 상황이 이렇다고 할 수 있겠다.
김 씨를 포함해 많은 탈북자들은 북한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아직은 중국처럼 진정한 개혁이 아니라 당장의 불을 끄기 위한 임시 미봉책 정도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간기획 중국 개혁, 개방이 주는 북한에 대한 교훈. 오늘은 중국이 개혁, 개방에 나섰던 당시와 북한의 최근 상황을 비교해 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중국에서 장사 경험이 있는 이 탈북여성의 경험담을 더 자세히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