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당국이 내각 직속 중앙은행 지점에 내화, 즉 북한 원화 화폐를 대량 공급했습니다. '전성'카드 사용을 대중화함으로써 국가은행의 기능을 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지적입니다. 북한 내부 경제소식, 손혜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에는 조선무역은행이 2010년 발행한 외화거래 전용 ‘나래’카드와 조선중앙은행이 2015년 발행한 내화거래 전용 ‘전성’카드 등이 있습니다.
‘전성’카드는 국영기업 자재와 상업거래 결제는 물론, 개인 간 송금과 입출금이 가능한 현금카드지만 중앙은행에 현금이 부족해 발행 초기부터 기능이 대부분 마비된 상황이었습니다.
평안남도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23일 “그런데 최근 도내 중앙은행 지점마다 (구체적 규모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돈이 풀렸다”며 “다발로 묶은 조선돈”이라고 전했습니다.
북한에서 중앙은행 본점은 평양시 중구역에 자리하고 있으며, 각 도(직할시) 중앙은행 총지점 산하에 시, 군 지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사회주의제도의 유일재정관리제 원칙에 따라 1948년 정권수립과 동시에 단일은행제도, 즉 ‘조선중앙은행’을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1959년 11월 국가의 무역이 증대하자 ‘조선중앙은행’으로부터 대외결제 및 외화관리업무 기능을 분리했는데, 이를 전담한 은행이 ‘조선무역은행’입니다. 이밖에도 1978년 설립된 중앙당 39호실 ‘조선대성은행’, 중앙당 38호실 ‘고려은행’ 등과 당 군수공업부 2경제위원회 ‘창광신용은행’이 있습니다.
2006년에는 상업은행법이 제정되면서 조선중앙은행이 담당하고 있던 상업은행 업무가 법적으로 분리되어 ‘상업은행’이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북한 내에서 은행 카드는 무역은행에서 발급한 ‘나래’, 대성은행 ‘금길’ 중앙은행 ‘전성’ 등 10개 카드가 넘습니다.
소식통은 “은산군 지점에도 돈이 들어왔다”며 “‘전성’카드 사용을 대중화함으로써 중앙은행의 기능을 살려내라는 중앙당의 지시로 시행된 것이라고 은행간부가 말해주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중앙은행은 내각 직속으로 내각이 관리하지만, 당적으로는 중앙당 계획재정부의 지도를 받습니다. 개인 간 장사거래는 물론 국영기업의 자재 조달 관련 거래에도 ‘전성’카드를 사용하지 않아 중앙당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섰다는 설명입니다.
전성카드를 사용하려면 국가자재 공급 기능이 살아 있어 개인 또는 국영기업이 자재를 조달할 때 중앙은행 ‘전성’카드로 결제하면 결제대금이 중앙은행으로 환수되는 구조이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중앙은행 지점에 돈을 푼 것은 기업과 일반 주민들도 ‘전성’카드 사용을 대중화하려는 중앙의 의도”라고 이 소식통은 지적했습니다.
소식통은 “지난 주 인민반회의에서는 ‘전성’카드만 있으면 아무 때 돈을 넣었다가 꺼내 쓸 수 있고, 장사 다닐 때 큰돈을 쓰리(도둑)맞는 일도 없을 것이라며 전성 카드를 널리 사용하라고 포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날 평안북도 중앙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이달 중순 정주시 지점에 다발로 묶은 새 돈(구체적 액수 확인 못함)이 들어왔다”며 “중앙에서 풀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이 중앙은행 지점마다 돈다발을 푼 것은 기업은 물론 개인 장사거래와 송금까지도 ‘전성’카드 사용을 대중화함으로써 내수 자금이 중앙은행을 통해 유통되게 하려는 의도라는 게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그는 “중앙의 지시를 집행하기 위해 정주시 지점에서는 지난주부터 시 내 공장기업소 종업원들에게 ‘전성’카드를 집체(단체)로 발급해주기 시작했다”며 “‘전성’카드 발급 비용은 3천원(0.37달러)인데, 10개월 간 월급에서 (300원씩 할부로) 공제되므로 부담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공장 노동자들에게 집체적으로 중앙은행 ‘전성’카드를 발급해 준 사례는 처음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전성카드가 발급됐는지 여부는 즉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소식통은 “주민들에게는 ‘전성’카드를 집체로 발급해주지 않았지만, 그제 인민반 회의에서 시 당 간부와 은행 간부가 돈의 출처를 따지지 않으니 ‘전성’카드에 돈을 넣으면, 중앙은행 지점마다 돈 뽑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어 아무 때나 돈을 뽑아 쓸 수 있다고 말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개인의 자금 출처를 따지지 않고, 임의의 시간에 중앙은행 ‘전성’카드로 입출금이 가능하면 주민들은 사금융시장보다 수수료가 낮고 사용하기 편리한 ‘전성’카드를 선호하게 됩니다.
“사금융 시장의 송금 수수료는 1회당 송금액의 5-10% 정도지만 중앙은행 수수료는 1-2% 정도로 많이 눅다(저렴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중앙은행이 유일하게 현재 북한에서 대중화하고 있는 각종 스마트 폰에 전자결제 앱을 설치할 수 있어 사용이 편리하기 때문에 전성카드가 다른 은행 카드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입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주민들은 개인이 장사로 벌어놓은 돈을 강제 회수했던 당국의 (지난 2009년) 화폐교환 사례를 잊지 않고 있어 중앙은행이 발급한 ‘전성’카드로 송금 거래 등을 할 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소식통은 코로나 기간 북한은 시장경제를 계획경제로 복원하는 경제체제 정비를 시도했다며 그 대표적 예가 특권층 산하 무역회사를 내각으로 그 소속을 변경시키는 것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달 당국이 중앙은행 지점에 현금을 공급한 것도 사금융 시장을 국가가 장악한 금융 체계로 흡수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KB국민은행 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손광수 연구위원은 24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중앙은행이 발행한 전자결제 ‘전성’카드 실용화를 추진하는 것은 공금융에서의 화폐유통 침전을 활성화함으로써 화폐유통을 중앙집권화 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손광수 연구위원: 내화를 풀어서 '전성'카드 사용을 장려하는 것은 장마당에 풀려있는 현금을 국가은행에 충전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손 연구위원은 이어 “서구 자본주의는 인터넷 상점을 늘린 다음 전자결제 카드를 만들었는데, 북한은 거꾸로 시장 화폐를 흡수하는 결제구조부터 만들었다”며 “최근 평양에 전자 상업망을 늘리려는 시도도 이런 문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또 앞으로 북한 당국은 화폐 유통 구조의 주도권을 장마당과 개인 돈주에서 국가로 회귀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앞서 2021년 10월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제정한 「전자결제법」 제1조에는 “전자결제법은 전자결제사업에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세워 현금유통량을 줄이고 무현금유통량을 늘이며 화폐유통을 원활히 하는 데 이바지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