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인 만화가, 프랑스 만화제작사들 북한의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 대거 활용

200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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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계 캐나다인 만화가가 북한을 방문한 경험을 만화책으로 펴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화제의 주인공은 기 들릴 (Guy Delisle)씨로 들릴 씨는 지난 2001년 만화영화제작을 위해 두 달간 북한에 머문 경험을 바탕으로 만화책 ‘평양, 북한에서의 여행’을 최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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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계 캐나다인 만화가로 만화책 ‘평양, 북한에서의 여행’을 펴낸 기 들릴 (Guy Delisle)씨 - PHOTO courtesy Guy Delisle

이와 관련해, 들릴 씨는 22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비록 두 달만 있었지만, 북한 당국의 외부 정보에 대한 통제가 워낙 심해 매우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에 장명화 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들릴 씨. 우선 어떻게 평양에 가게 됐는지 소개해주시죠.

제가 일하던 프랑스 만화제작사가 특별만화영화를 제작하기 하기 위해 북한 측과 어떻게 연결이 됐습니다. 2001년 당시에 많은 회사들이 북한으로 향했습니다. 북한에서 만화영화 하청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북한의 노동력이 값도 싸고, 질도 중국에 비해 더 좋으면 좋았지 전혀 떨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아는 만화제작사들은 거의가 다 북한에 일을 맡겼던 것으로 압니다.

사실 북한은 지난 1950년대부터 만화영화를 만들어왔거든요. 저는 당시 만화영화 해외감독의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회사에서 저를 북한에 보냈습니다. 제가 과거에 베트남에 한번, 중국에 두 번 일한 적이 있거든요. 북한 출장제의를 받고 아주 흥분했었어요. 한번 방문해보면 좋겠다 싶었던 나라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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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릴 씨가 최근 펴내신 ‘평양, 북한에서의 여행’이란 만화책을 읽었는데요, 공항에 들어가실 때 조지 오웰이 쓴 ‘1984년’과 라디오를 가지고 북한으로 들어가셨더라고요. 뭐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제가 북한으로 가기 전에, 회사 측에서 북한에서 하지 말아야 할 사항들, 그리고 지켜야 할 사항들을 적은 두 장의 종이를 주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핸드폰을 가져가지 말 것, 포르노그래피, 즉 호색잡지를 가져가지 말 것, 라디오를 가져가지 말 것 등등입니다. 그런데 저는 라디오를 무척 좋아합니다.

늘 라디오를 들으며 일하는 편이예요. 그래서 아주 작은 것으로 하나 가져가보자, 그렇게 마음먹었어요. 전에 어떤 책을 읽었는데요, 한 탈북자가 몰래 남한방송을 듣다가 누군가 자기가 이렇게 방송을 들은 사실을 알아차린 것을 들은 후, 북한을 죽기 살기로 탈출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저는 생각했죠. 내가 한번 라디오를 가져가서 북한에서 해외방송을 들어보자! 그런데 북한에서 있다 보니 제 생각과는 다르더군요.

어떻게 달랐습니까?

단 한 개의 채널밖에 없는 거예요. 그 많은 주파수중에, 제가 들을 수 있는 방송은 단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였죠. 이건 북한에서 겪었던 으스스한 (scary) 경험중의 하나입니다. 아니 글쎄 모든 정보가 다 정권을 위한 방송이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정보가 달랑 한 종류밖에 없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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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들릴 (Guy Delisle)씨가 만화로 그린 자신의 초상화 - PHOTO courtesy Guy Delisle

제가 여러 나라를 방문해봤지만, 한 번도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심지어 제가 현재 머물고 있는 버마에서도 영국방송인 BBC, 미국 뉴스전문방송인 CNN, 그리고 여러 프랑스 방송을 듣거나 볼 수 있거든요.

다시 말하면, 언제든지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달라요. 마치 거품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외국방송은 전혀 들을 수 없어요. 외국방송을 들었다는 북한사람들은 아마 단파방송을 들었겠죠. 제가 가져간 일반 AM/FM 라디오로는 외국방송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평양에서 외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사교클럽에도 가보신 것으로 아는데요? 어떻습니까?

좀 웃긴 이야기지만, 그곳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를 누렸어요. 북한에 있을 때 안내원과 통역사가 늘 따라다녔거든요. 그 사교클럽은 호텔 안에 있었어요. 평양 내에 외교중심거리가 있는데요, 북한사람들은 그곳에 얼씬거리면 안 됩니다.

이곳에는 외국 외교관들과 비정부기구 요원들이 살고 있는 동네예요. 이 사람들은 안내원이나 통역이 따라다니지 않더라고요.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 파티를 열어 음료도 마시고 춤도 추고 그랬죠. 따라다니는 사람이 없으니까 어찌나 마음이 편했던지 모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조그만 슈퍼마켓, 즉 잡화점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간식거리, 외국과일, 외국음식 등을 팔았어요. 파티가 끝나면 종종 들러서 커피를 마시곤 했죠. 왜냐면 파티가 끝나고 나면 저희가 묶고 있는 호텔로 우리를 데려갈 누군가가 나타나야하는데 그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 올 때까지 밤새도록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리는 수밖에요. 어쩔 때는 그 외교거리를 밤새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그런데 만화책 중간에 보면, 난데없이 통역한테 장애인 문제를 물어보셨더라고요?

그건요, 평양에서 상주하고 있는 비정부 단체 중에 핸디캡 인터내셔널이라는 국제 장애인 단체가 있었어요. 이 단체요원들은 북한의 장애자들만 상대하죠. 그런데 제가 어느 날 평양거리를 걷고 있는데, 거리가 너무 깨끗하고 사람들도 너무나 옷을 잘 차려 입었더라고요.

그 많은 사람 중에 휠체어에 탄 사람이나 구걸하는 거지들의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거예요.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핸디캡 인터내셔널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국가에 보통 평균적으로 그 나라 인구 가운데 7%는 장애인이라고 보면 된다고 하던데 말이죠. 그래서 제 통역한테 물었더니 아 글쎄 북한에는 장애인이 하나도 없다고 하지 뭐예요.

마지막으로 본인이 그동안 북한에 관해 들었던 것과 직접 가서 생활하면서 느끼셨던 사이에 큰 차이점을 느끼셨습니까?

제가 느낀 점이요? 지난 2001년 9.11사태가 나기 전에 북한을 방문했는데요, 그때는 북한은 제게 그저 낯선 나라정도였죠. 그런데 이제는 무서운 곳이 돼 버렸어요. 제가 북한에 있던 기간 내내 북한사람들 모두가 정말로 바깥세상에 대해, 그리고 전쟁이 일어날까봐 벌벌 떨고 있었어요.

거기서 살다보면 마치 일주일전에 전쟁이 막 끝나고 한 달 내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돼요. 게다가 제가 북한에 갔을 때는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이 막 당선됐을 때거든요. 북한사람들은 부시대통령이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조만간 시작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특히 북한 정권은 전쟁이 곧 일어날 것이라고 주민들을 계속 세뇌하고 있었죠. 신문을 봐도 그렇고, 텔레비전을 봐도 그렇고, 영화를 봐도 그렇고. 모든 매체가 다 전쟁에 대해 떠들어댔으니까요. 한두 달 있으니까, 제 자신도 진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으스스한 경험이었어요.

장명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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