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납북 생존자, 귀환 7주년 맞아 담화
도쿄-채명석 xallsl@rfa.org
2009.10.14
2009.10.14
MC: 2002년 10월에 귀국한 납치 생존자 하스이케 가오루 씨가 귀환 7주년을 맞이해 “적어도 1년 이내에 납치문제에 커다란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는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도쿄에서 채명석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평양에서 개최된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를 시인함에 따라 일본인 납치 피해자 5명이 2002년10월15일 일본에 귀국했습니다.
납치 생존자 하스이케 가오루, 유키코 씨 부부는 일본 귀환 7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니가타 현 가시와자키 시를 통해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하스이케 씨 부부는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적어도 1년 이내에 납치문제에 커다란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스이케 씨 부부는 또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납치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면서 “정부가 납치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납치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날 성명을 발표한 하스이케 가오루 씨는 고향인 가시와자키 시청에서 촉탁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소설 ‘칼의 노래’를 번역 출판한 이후 본격적인 한국 문학 변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스이케 씨는 또 자신의 북한 체험과 한국 방문기를 책으로 엮어 지난 6월 ‘반도에 다시 한번’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신쪼샤의 ‘다큐멘터리(기록) 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하스이케 씨는 이 책에서 “흉년이 들면 식량 배급이 쌀 대신 9할이 잡곡으로 나왔다. 겨울이 되면 일가 4명이 먹을 김치 1.4톤 가량을 한꺼번에 담그느라 큰 홍역을 치렀다. 전기가 나가면 산에 가서 땔감을 구해 와야 했다”고 24년간에 걸친 북한 생활을 회상했습니다.
하스이케 씨는 또 한국 가수 김연자 씨가 평양에 와서 ‘임진강’을 불렀을 때 “내가 새라면 창공을 훨훨 날아 강을 넘을 수 있을 텐데”라는 가사 대목에 고향 생각에 젖어 “나도 기타를 들고 임진강 노래를 조용히 입에 담아 보았다”고 밝혔습니다.
하스이케 씨는 또 이 책에서 “평양에서 공중전화를 발견한 순간 나도 모르게 다이얼을 돌려보았다”고 회상하면서 “이 일로 비밀 전화를 걸었다는 밀고까지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하스이케 씨 부부와 함께 귀국한 지무라 야스시 부부는 고향인 후쿠이 현 오하마 시에 생활 기반을 마련했으며, 소가 히토미 씨 역시 미국인 남편 찰스 로버트 젠킨스, 두 딸과 함께 고향인 니가타 현 사도 시에 생활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도쿄에서 채명석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평양에서 개최된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를 시인함에 따라 일본인 납치 피해자 5명이 2002년10월15일 일본에 귀국했습니다.
납치 생존자 하스이케 가오루, 유키코 씨 부부는 일본 귀환 7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니가타 현 가시와자키 시를 통해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하스이케 씨 부부는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적어도 1년 이내에 납치문제에 커다란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스이케 씨 부부는 또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납치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면서 “정부가 납치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납치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날 성명을 발표한 하스이케 가오루 씨는 고향인 가시와자키 시청에서 촉탁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소설 ‘칼의 노래’를 번역 출판한 이후 본격적인 한국 문학 변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스이케 씨는 또 자신의 북한 체험과 한국 방문기를 책으로 엮어 지난 6월 ‘반도에 다시 한번’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신쪼샤의 ‘다큐멘터리(기록) 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하스이케 씨는 이 책에서 “흉년이 들면 식량 배급이 쌀 대신 9할이 잡곡으로 나왔다. 겨울이 되면 일가 4명이 먹을 김치 1.4톤 가량을 한꺼번에 담그느라 큰 홍역을 치렀다. 전기가 나가면 산에 가서 땔감을 구해 와야 했다”고 24년간에 걸친 북한 생활을 회상했습니다.
하스이케 씨는 또 한국 가수 김연자 씨가 평양에 와서 ‘임진강’을 불렀을 때 “내가 새라면 창공을 훨훨 날아 강을 넘을 수 있을 텐데”라는 가사 대목에 고향 생각에 젖어 “나도 기타를 들고 임진강 노래를 조용히 입에 담아 보았다”고 밝혔습니다.
하스이케 씨는 또 이 책에서 “평양에서 공중전화를 발견한 순간 나도 모르게 다이얼을 돌려보았다”고 회상하면서 “이 일로 비밀 전화를 걸었다는 밀고까지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하스이케 씨 부부와 함께 귀국한 지무라 야스시 부부는 고향인 후쿠이 현 오하마 시에 생활 기반을 마련했으며, 소가 히토미 씨 역시 미국인 남편 찰스 로버트 젠킨스, 두 딸과 함께 고향인 니가타 현 사도 시에 생활 터전을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