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박성우 xallsl@rfa.org
제주도 봉개동 ‘거친오름’ 기슭에서는 2만5천명에서 3만 명으로 추산되는 1948년 4.3 사건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제가 열렸습니다. 제주도민들은 4.3사건 60주년을 맞이해 제주도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좌우 이념 갈등이 존재하고 있어 앞으로도 풀어야 될 숙제가 많다는 지적입니다.

제주공항에서 동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25분가량을 달리면 제주시 봉개동 ‘거친오름’ 기슭이 나옵니다.
4월3일 오전 10시. 이곳 4.3평화공원에서는 1948년 4.3 사건으로 발생한 2만5천명에서 3만 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들의 유족과 도민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위령제 식전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행사장 중앙 무대 바로 뒤편에는 위령제단이 마련돼 있습니다. 이곳 165평 규모의 봉안실 안에는 1만4천여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4.3사건 당시 가족 5명이 희생됐다는 올해 66세 양순옥씨는 그나마 이렇게 가족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걸 보니 위안이 된다고 말합니다.
유가족: 그렇죠. 위안이 되죠. 아버지 어머니는 신체를 찾아다 모셨는데요. 오빠네는 신체를 못찾아서... 그래서 (위령제단을) 찾아와 보니까... 좋은 집에 이렇게 이름 석 자라도 모신 게 기쁩니다.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2000년 공포된 다음 2002년부터 국고 592억원을 투입해 짓기 시작한 이 평화공원엔 희생자 위령제단과 위령탑, 그리고 추념광장이 들어섰고 지난달 28일엔 4.3평화기념관도 문을 열었습니다.
기자: 여기가 지난 주에 새로 개관한 4.3 평화기념관이에요?
안내원: 네... 4월 28일에 개관했습니다.
기념관엔 4.3사건 당시 발생한 일들을 연대기 순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1948년, 제주도 한 땅굴에서 11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다랑쉬굴’ 사건을 재현한 방에 들어서자 유가족들은 몸서리를 치기도 합니다.
유가족: 여기 와보니 기가 막혀. 말을 할 수가 없어. 아이고 관세음보살... 내 남편은 (시신을) 찾아서 묻었지만, 우리 사촌 오라방, 아지방, 사촌 아지매, 다 이런 곳에서 죽었지. 아이고 관세음보살...

4.3사건 유가족과 제주 도민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당시 제주도에서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이 기념관은 하지만 개관하는 것 자체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등 보수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는 지난 28일 제주 4.3평화기념관의 개관식을 연기할 것 요구했습니다.
이유는 “제주 4.3평화기념관이 날조 왜곡된 진상조사보고서를 근거로 전시물을 제작해 군대와 경찰을 악으로, 폭도들을 봉기자로 미화하는 등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 박세직 회장입니다.
박세직: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과거사진상위원회에 배정해서 그 중 988억원이니까... 천억원에 가까운 그러한 자금으로 제주평화공원을 건립 중에 있습니다. 거기 잠든 13,564명 모두를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이 학살했다...라고 공식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이것이 여러분 말이나 됩니까. 도대체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보수진영에선 4.3사건의 성격부터 제대로 다시 규명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4.3사건은 남로당 중앙이 주도한 좌익 폭동”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은퇴한 경찰들의 모임인 제주 경우회 김용중 회장은 구체적으로는 “폭동에 적극 가담한 자가 3,000여명이었고, 이들에 의해 2,000여명의 우익 인사가 희생되고 경찰관 153명, 군인 180여명이 전사했다”고 말합니다.
김용중: 그런 것은 중앙당의 지령이 분명이 있었다...고 보는데. 그런데 증거가 없다 이거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기 위해서 지령을 하는데, 서면으로 해서 지금까지 공개가 되게 하겠습니까?
보수진영은 또 “제주4.3평화기념관은 좌익 폭도도 희생자로 둔갑시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같은 일은 소위 ‘좌파 정권’ 하에서 진상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게 보수진영의 생각입니다. 김용중 회장입니다.
김용중: 국무총리가 위원장이 된 정부 보고서는 역사 교과서적 성격이 있는 사료거든요. 물론 좌익측 주장에도 일리가 있죠. 또 그렇다면 우익쪽 시각도 같이... 그래서 균형 잡히게 모든 게 작성돼야 하는데...
이 같은 보수진영의 4.3사건 재규명 요구를 접한 제주 도민들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4.3희생자유족회 김두연 회장입니다.
김두연: 4.3 희생자 13,564명 전원이 ‘폭도 빨갱이.’ 정부가 3년에 걸쳐... 고건 총리가 6개월간 보류하면서 만들어낸 진상 보고서가 ‘잘못된 보고서.’ 이 어찌 유족으로서 통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4.3사건 관련 행사장에서 만난 유가족들도 한결같이 보수진영의 4.3사건에 대한 재규명 요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유가족1: 그런 말 들을 때 마다 가슴이 너무 아파요.
유가족2: 말이 안되죠 그거는...
유가족3: 대단히 불쾌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4.3에 대한 내력을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유가족4: 어떻게 공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공정했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와서 사과도 하고 그랬는데... 이번에 정부가 바뀌고 나서 말이 많아져서 저는 너무 분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끝나고 10년만에 보수적 색채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4.3사건에 대한 보수진영의 재규명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4.3사건 유가족들은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몇 년 전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와 이를 토대로 한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취소하라며 헌법 소원을 냈다가 기각당한 바 있는 보수단체들이 보수성향의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진상보고서 폐기와 4.3평화공원 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4.3사건 유가족들은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가족: 이거를 우리 영혼들을 돌봐줘야 한이 풀리지. 이걸 안풀면... 우리까지 죽게 생겼어. 지금 우리 생각에는... 이젠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절대 못찍어주고...
유가족들은 또 4.3사건 60주년이라는 큰 행사에 이명박 대통령이 불참한 데도 불만을 토로합니다.
유가족: 너무 너무 섭섭하지요. 우리 제주도 사람도 모두 대한민국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슬픈 일에 대통령이 안 올 수 있습니까. 와야 됩니다.
하루 전 4.3사건 관련 행사장에서 만난 김태환 제주도지사도 제주 도민들의 이 같은 마음을 대변했습니다.
김태환: 금년이 4.3 60주년이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참석해 주시기를 온 도민이 간절히 바랬습니다. 하지만 국가 대내외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현안 사업이 많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민들께서도 많은 이해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대통령 대신 한승수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4월3일 오전 11시 국무총리의 헌화 분양을 시작으로 당시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위령제 본행사가 시작됩니다.
1948년 4.3 사건을 전후해서 1954년 9월까지 제주도 전역에서는 2만5천명에서 3만명으로 추산되는 제주도민들이 사망했습니다.
이들 중 토벌대에 의해 사망한 주민은 78.1%. 남로당 제주도당이 이끈 무장대가 죽인 주민은 12.6%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보수진영에서도 제주 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발생한 가슴 아픈 비극이었으며 제주도민의 억울한 희생은 위로돼야 한다”고 전제합니다.
하지만 무장대가 죽인 주민들도 12.6%나 된다는 사실. 그리고 진압작전에서 전사한 군인 180여명과 경찰 153명도 제대로 역사 속에 기억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제주 경우회 김영중 회장입니다.
김용중: 공권력에 의해서 귀중한 생명을 무자비하게 희생시킨 건데.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인정하고 사과하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숫자적으로는 아주 적지만, 그들의 실력 지배 하에 있는 공간에서는 토벌대 못지 않는 잔인한 살육행위가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겁니다.
이번 4.3사건 60주년 기념사업은 “60년의 기억, 60년의 희망, 진실의 노를 저어 평화의 바다로”라는 구호와 함께 화해와 상생을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유가족들과 보수진영이 4.3사건의 진상과 희생자 명예회복 문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역사의 진실이 바뀌지는 않지만, 그 진실을 찾는 작업은 앞으로도 숙제로 남아 있다는 게 제60주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 고태호 봉행집행위원장의 생각입니다.
고태호: 이걸 해결하려면 지금 당장 뭐 시간 가지고 언제 된다... 이렇게 말 할 수 없구요. 상당한 인내심과 시간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도민 입장에서 볼 때...
서로에게 맺힌 응어리를 풀기위해 좌우 대립을 떠나 서로가 손을 맞잡을 날이 언제 올 수 있을 지는 현재로선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보수진영과 유가족 대표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주 도민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인 제주 4.3사건을 역사적으로 제대로 규명하는 것이 제주도를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문충성 시인입니다.
문충성: 분노, 억울, 미움, 저주의 찌꺼기들 남아 있다면 모두 풀어버리시고, 후손들 새로운 삶의 길 눈부신 창조의 세계 여는 데 맨 앞장 서시어 우리들 이끄는 우리들의 새로운 꿈이 되어 주소서.
제주도 4.3평화공원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성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