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민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미국 최고의 곡창지대 중 하나인 인디애나 주. 워싱턴에서 비행기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이 곳의 날씨는 얼마 전까지 많은 비가 내려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 Bloomfield 에 자리 잡은 클레멘트 씨의 회사도 많은 양의 비로 창고가 물에 잠겼습니다. 회사를 찾았을 때 클레멘트 씨는 물에 잠긴 창고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의료장비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제품을 나르고 정리하느라 바빴습니다.
Clement: Fortunately, all production area, office didn't get flooded. You see the field. completely under water. This whole things were underwater, and they went back. we are lucky.
다행스럽게도 생산 공장과 사무실은 피해가 없었어요. 여기 대지가 보이죠. 전부 다 물에 잠겼었어요. 여기까지 잠겼는데, 더 이상은 피해가 없었죠. 운이 좋았어요. 하하..
클레멘트 씨는 현재 현대 수술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복강경 수술 장비를 만듭니다. 복강경 수술은 사람의 몸을 크게 찢지 않고도 자그마한 관을 넣어서 그 관을 통해 수술할 부위를 찾아 수술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첨단의 수술 장비입니다.
클레멘트 씨의 회사는 내년 한 해 매출 500만 달러를 바라 볼 정도로 사업이 잘 됩니다.
직원 Weldon:He is super boss, very easy going. He cares for other people, he thanks for people beside himself. He always happy. I am happy to work at here.
훌륭한 사장님이죠. 다른 사람들을 돌볼 줄 알고,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져요. 저도 이 곳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 기쁨과 희망을 줄 정도로 여유를 가진 사업가가 됐지만 사실 그의 과거는 희망이나 기쁨과는 거리가 멉니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인 그리고 어머니는 한국인, 그는 어려서부터 혼혈아를 부르는 "튀기" 라는 말이 더 익숙했습니다.
자기를 낳은 어머니는 아버지인 미군 병사와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의 상황으로 볼 때 주위의 시선은 이 갈 곳 없는 어머니와 아들에게 고통이요 상처였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못 이긴 어머니는 어느 날 클레멘트 씨를 시장에 버려두고 떠나버렸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4살. 하지만 클레멘트 씨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버렸다는 죄책감으로 또 불행하게 만들까봐 지금까지 어머니를 찾지도 않았습니다.
부인 김원숙 씨: 적극성이에요. 부지런하고, Optimistic 이에요. 나는 이렇게 positive 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He is "I can do it" person. Everything is greatful.
다 감사해요. 참 감사하는 사람이에요. 뭐든지.. 인생이라는 것이 다 좋게만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문제와 문제가 겹치는 것이 인생인데, 그걸 문제로 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아이들도 좋아하고 주변 사람들도 좋아하고..
부인 김원숙씨도 의료기기를 지원하다가 만났습니다. 부인은 한국인이고 미국에 와 살면서 북한을 돕는 기관에서 일하던 중 클레멘트씨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부인인 김원숙 씨가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그의 남편 클레멘트 씨는 그러나 칭찬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허름한 뒷골목에서 구걸을 해야 했고 굶는 날이 많아 그가 찾은 것은 쓰레기통이었습니다. 버려진 생선뼈도 빨아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Clement: Korean war was nightmare...bombing, noising , siren, people screaming, gunshot, shooting, equipment, the machine was moving around, tank and truck. Outside window was bombing, It was night. Window was lighting up with flash from bombing. They means how close I was to the War.
한국 전쟁은 정말 공포였어요. 폭음, 사이렌소리,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곳곳에서 총소리가 나고, 탱크나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도 들리고... 한 번은 밤에 창 밖에서 폭탄이 터졌는데 창문이 불꽃으로 번쩍 거렸어요. 내가 얼마나 전쟁과 가까운 곳에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거죠.
그러나 그 한국 전쟁은 그에게는 시련이면서도 그가 이제부터 살아가야 할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서울 뒷골목을 전전하던 그는 한 선교단체에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클레멘트 씨는 7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그가 입양된 곳은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입니다. 전쟁의 공포, 어머니와의 갑작스런 이별, 쓰레기통을 뒤져 배를 채우던 아픈 기억. 무엇 하나 온전할 것이 없는 그에게는 입양 가정의 풍요함도 낯설기만 했습니다.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영어는 그가 학교를 다니면서 저능아 아닌 저능아 취급까지 받게 했습니다. 결국 5학년을 두 번이나 다니는 고생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시련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Clement: Well, it's funny thing. Some people when there something happens, incidently crisis happened, run the other way. Another people absorb crisis and frozen, they can't move. they can't do properly things. Others. they do whatever they can. So I'd like to get involved.
사람들은 갑자기 어떤 위기에 닥쳤을 때 그것을 피해 도망가거나 그것에 얼어붙어 아무것도 못하죠.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나는 어려움과 아픔을 꺼나가는 소방수입니다.
이런 소방수 정신은 그가 지금 일군 회사의 직원들도 존경하고 따라 배우려고 합니다. 그의 소방수 정신의 밑바탕은 사랑과 긍정적인 자세입니다. 다시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근로자들이 사장인 클레멘트 씨를 평하는 얘기를 들어봅니다.
직원 Charles: Well he is good boss. I really like him. He is very understanding. There is a American dream to become from Korean orphan, and have business and taking care of it very successful. He works hard, he is very much positive attitude on life, concerning care of employees.
정말 좋은 사장님이죠. 굉장히 이해심이 많아요. 한국 전쟁고아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꿈을 이룬 거죠. 매우 긍정적인 자세를 가졌고, 직원들에게도 많은 신경을 써 줍니다.
그러면 모든 근로자들까지 회사에 만족하고, 사장을 믿고 따르는 그의 성공 신화는 어디서 출발했을까요?
클레멘트 씨는 미국 중서부에서 알아주는 대학인 퍼듀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전자기기 회사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지만 그의 도전 정신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공 출발지는 바로 자신이 살던 집 2층 다락방. 돈을 벌기 위해 손을 댄 분야는 의료기기 발명과 특허입니다. 지금까지 32개의 특허품을 발명했습니다. 이쯤 되면 천재, 도전적 사업가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그의 성공 발판이 된 복강경 수술기는 수술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수술 부위를 많이 찢어야 하는 현대 의학의 불편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까 하는 발명가적인 발상에서 고안됐습니다.
직원이 자기 혼자였던 클레멘트씨의 회사는 시작 1년 만에 직원이 17명으로 늘었습니다. 지금의 직원 수는 모두 38명이고 무려 18년 이상 근무한 직원도 많습니다.
그렇게 잘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에게 변화의 시간이 다시 찾아옵니다.
지금부터 9년 전인 지난 1999년 그는 미국 텔레비전에 비친 북한의 헐벗은 어린이들을 보게 됩니다. 마치 한국 전쟁이 끝난 뒤 쓰레기통을 뒤지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고 그는 회상합니다.
'어떻게 도울 것인가?' '그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라는 선택적 질문을 자신에게 하지 않고 도와야 한다는 당위성 아래 방법에 몰두합니다. 혼혈아로 미국에 입양돼 성공을 일군 도전적 사업가다운 패기이고 용기입니다.
그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UN 사무실, 미국 국무부 등에 묻고 또 물었습니다. 답은 바로 자기 옆에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가 만든 의료기기를 북한에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의료장비를 북한에 지원 했습니다. 직접 북한을 방문해 자신이 제공한 장비로 복강경 시술을 하고 북한 의사들이 기뻐하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Clement: See, you know, this is why I hate politic. I love science. because science does not lie. science does not have two sides, science has on side. North Korea is not the enemy. People identify North Korea is some crazy and designed to destroy the world. It is not my thought. North Korea is we have to take care of North Korea. Period.
저는 정치를 싫어합니다. 과학을 좋아하죠. 과학은 편을 가르지 않거든요. 북한은 적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북한을 이상하게 보고 세계를 망치려는 집단으로 보는데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도와야 할 대상으로 보는 거죠. 그겁니다.
한국 전쟁으로 인생의 시작이 남들과 같진 않았지만 그는 늘 남북한을 가리지 않는 사랑을 갖고 있고 그래서 먼 미국에 살면서도 한반도를 향한 희망을 갖습니다. 클레멘트 씨는 자신이 배운 북한 노래를 직접 불러줍니다.
I can do song, North Korean song for them. (really?)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웃음)
사랑하는 아내는 우스꽝스런 발음으로 북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 더욱 행복해 합니다.
북한에 자기가 만든 의료장비를 보내고 한국 전쟁의 고난을 인생 성공으로 승화시킨 클레멘트 씨는 분명 남북한이 가야 할 미래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