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대 칼럼: 아리랑 공연과 북한체제 선전

남한의 통일부 차관을 지냈고 현재 평화문제연구소 소장인 송영대씨의 논평입니다. 내용은 논평가 개인의 견해입니다.

북한은 지난 8월 16일부터 평양 5.1경기장에서 집체예술 아리랑을 공연했습니다. 10만명이 등장한 아리랑 공연은 북한 당국이 노동당 창건 60주년을 기념하고 주민들에게 체제의 정통성을 고취시키고 주민들을 결속하기 위해 기획한 행사입니다.

북한은 이 행사에 북한 주민들은 물론 남한 관광객과 중국 관광객 등 해외 관광객들까지 끌어 모으는 등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집단체조와 예술공연 그리고 카드섹션 등으로 결합시킨 아리랑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됐습니다.

제1장에선 북한의 탄생과 함께 광복과 6.25전쟁을 각각 일제와 미제를 몰아낸 혁명으로 미화시킨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제2장에선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선군정치의 기치를 높이 세우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특히 「인민의 군대」편에서는 군복차림의 6만여 참가자들이 적군 격퇴 장면을 연출하면서 역동적인 음악과 함께 질러대는 함성으로 경기장 분위기를 한층 돋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장에서는 「21세기의 태양」은 김일성 주석이라면서 웅장한 느낌의 강성부흥 아리랑 노래가락에 맞춰 김일성 부자에 대한 충성을 촉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이 부문에서는 북한체제 찬양과 김일성 부자 우상화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수령님 그리움으로 사무치는 이 산하」등의 문구가 카드섹션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 공연도 「아버지 장군님 고맙습니다」라는 카드섹션과 아우성으로 채워졌습니다.

우리는 이 공연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세가지 의문점과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는 아리랑 공연이 전체주의 체제의 상징적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북한은 헌법 조항에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복무해야 한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이 국가, 당, 수령을 위하여 헌신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 또는 당의 이익을 앞세우고 행동해야 된다는 전체주의 사상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구절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리랑 공연을 보면, 개인이 북한이라는 기계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한 기분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10만명이 참가하는 집단체조, 집체예술, 집체 카드섹션에 참가하고 있는 개인들은 이미 자기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고 전체에 매몰돼 있는 서글픈 현상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아리랑은 비인간적, 비인도적 공연이라는 점입니다. 그 웅장하고 화려한 공연 이면에는 연습과 공연과정에 배인 학생들의 피눈물나는 고통이 담겨져 있습니다. 학생들은 5개월 동안 연습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과거 공연에 참여했던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공연연습을 할 때 자리를 뜰 수가 없어 기저귀를 차는 아이들도 있었고, 또 북한 당국이 점심만 주고 저녁은 굶기면서 연습을 시킨 일이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이번에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온 한 남측 관광객은 「동원된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셋째로 아리랑 공연은 남한을 자극하는 요소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2장 선군 아리랑의 「인민의 군대」에는 북한군 3천여명의 총검술과 격투기 장면이 나옵니다. 그 중 3명의 북한군이 한국군 구형 전투복 차림의 가상 「적군」 30여명을 총검으로 때려눕히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남한 관람객들 앞에서 국군 격퇴장면을 보여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 사실이 남한 신문에 보도되자 북한 당국은 뒤늦게 이 장면을 슬그머니 삭제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대남 적대적 태도를 숨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아리랑 공연을 보고 돌아온 한 남한 관광객은 『북한체제의 본질을 제대로 알 것 같다. 웅장한 스케일과 일사불란함에 놀랐지만 살아있는 반공교육을 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 말을 귀에 담아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뒷맛이 씁쓸한 공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