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군수공장시찰 사진, 반미구호 모자이크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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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지난 8~9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중요 군수공장들을 현지지도한 바 있습니다. 이를 보도한 북한 매체 사진 가운데 일부 구호가 모자이크, 즉 잘 알아보지 못하도록 흐림 처리가 돼 있어 그 이유가 주목됩니다.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0일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중요 군수공장 현지지도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당시 김 총비서는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족속들을 우리의 주적으로 단정”,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는 등 매우 강경한 대남 발언을 쏟아내면서 긴장을 고조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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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9일 중요군수공장들을 현지지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일 보도했다. 공장 벽면에 '원쑤들은 전쟁도화선에 불을 달고 있다. 침략자 미제와 대한민국 것들을 쓸어버릴...' 이라는 구호판이 흐릿하게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이와 함께 주목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김 총비서 현지지도 모습을 담은 사진 속의 일부 정치 구호가 모자이크, 즉 잘 알아보지 못하도록 흐림 처리가 돼 있었다는 점입니다. 해당 부분을 확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원쑤들은 전쟁도화선에 불을 달고 있다. 침략자 미제와 대한민국것들을 쓸어버릴”이라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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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9일 중요군수공장들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찍힌 사진을 보면 해당 구호에서 ‘침략자 미제와 대한민국’ 문구만 미사일 발사 용도의 군용 차량에 가려져 있고 모자이크 처리는 돼 있지 않아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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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TV는 15일 '위대한 전환, 승리와 변혁의 2023년' 제목의 새 기록영화를 방영했다. / 연합뉴스

최근 이와 유사한 내용의 구호는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5일 방영한 ‘위대한 전환, 승리와 변혁의 2023년’이라는 제목의 기록영화에서도 확인 됐는데, “원쑤들은 전쟁도화선에 불을 달고 있다. 남조선괴뢰들을 쓸어버릴 무기생산”이라는 내용입니다. 모자이크 처리는 돼 있지 않습니다.

해당 구호가 김 총비서의 군수공장 현지지도 현장에 걸려 있던 구호와 다른 점은 ‘침략자 미제’라는 표현이 없고 한국을 ‘남조선괴뢰들’로 지칭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북한이 한국에 대한 적대관계는 분명히 하되, 대미 메시지 수위는 조절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7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북한이 해당 구호의 ‘침략자 미제’라는 표현 때문에 모자이크 처리를 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즉,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에 대한 메시지임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고립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은 의도가 있을 때 모자이크 처리를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아주 강도 높은 전쟁 불사 발언까지 해놓고 같은 민족이 아니다, 통일 대상이 아니라고 극언을 해놓고 한미일 관계를 교란시키는 전략입니다. 일본에는 기시다 '각하'라는 표현까지 쓰고 미국에는 대미 압박의 수위를 조절하는 거죠.

앞서 김정은 총비서는 새해 첫날 지진이 발생한 일본에 위문 전문을 보내면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는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 집권 이후 이와 같은 사례는 없었다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김 총비서의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 최고인민회의 연설문 등을 보면 이례적으로 남북관계에 많은 부분이 할애돼 있는 반면 대미 관계는 절제됐거나 분량이 적다”며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권 탈환을 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이기도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앞서 북한은 지난 2018년 정권수립일 기념 열병식을 진행한 뒤 당시의 영상을 이틀 후 인터넷에 게재하면서 대미 적대 구호를 모자이크 처리한 바 있습니다. 열병식에 등장하는 전차 등의 앞부분에는 “철천지 원쑤인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당시는 미북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포괄적 합의를 이룬 뒤 후속 회담 등을 위한 접촉이 진행 중이던 민감한 시점이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상황에 따라 대미, 대남 압박의 강도를 조절하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의 상황은 미국을 자극하기 보다는 한미, 더 나아가 한미일 관계에 대한 이간질, 대한민국의 고립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1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김정은 총비서의 중요 군수공장 사진의 일부 구호에 모자이크가 처리된 이유에 대해 “북한 매체는 경우에 따라 보도사진의 특정부분을 식별하기 어렵게 처리해 왔으며 이는 구호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통일부는 “인물이나 게시물 등도 식별이 곤란하게 작업하여 보도하기도 하는데 해당 사진도 그러한 맥락으로 특기하여 평가할 사항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