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가 무슨 힘 있나”...김정은 공개비판에 북 주민들 비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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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태풍 피해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막말을 써가며 내각과 총리를 비난하고 엄한 처벌을 경고한 후 행정 간부들이 몸을 낮추며 당위원회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모를 총리와 내각을 동정하는 모습입니다. 북한 내부소식, 안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말 김정은 위원장은 제6호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강원도 안변군과 남포시 온천군 안석 간석지 건설 현장을 찾았습니다. 폭우로 강원도 안변군에서는 200여 정보(1정보는 약 9900㎡)의 농경지가 침수되었고 남포시 온천군에서도 간석지 제방이 파괴되면서 270여 정보의 논밭을 포함한 많은 농경지가 물에 잠겼습니다.

최근 몇 년간 경제현장이 아닌 군수공장과 미사일 발사장을 비롯한 군 관련 현장만 찾던 김정은이 농업 부문 피해 지역을 시찰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막대한 면적의 농경지가 침수된 데 분노한 김정은 위원장은 김덕훈 총리와 내각 간부들을 ‘정치적 미숙아’, ‘지적 저능아’, ‘관료배’, ‘건달뱅이’라 칭하며 엄격한 처벌을 지시했습니다.

양강도 혜산시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5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요즘 어디서나 노발대발한 김정은이 야비한 표현을 써가며 총리와 내각을 비판한 내용이 화제가 되고 있다”며 “신문과 방송에 김정은이 비판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데 대해 많은 사람이 의아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지난 8월 22일 전국의 모든 기관의 아침 조회 때 김정은이 간석지 피해현장을 시찰하면서 총리와 내각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내용이 실린 노동신문 기사가 독보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8월 22일 노동신문과 중앙텔레비죤 및 중앙방송은 김 위원장의 피해지역 시찰 소식과 함께 총리와 내각에 대한 비판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소식통은 “사람들 누구나 김정은이 직접 총리와 내각 간부들을 비판하고 엄하게 처벌하라고 한 데 놀라고 있다”며 “당 정치국 상무위원인 내각 총리의 무책임한 사업태도와 삐뚫어진 사상관점을 지적하며 엄한 처벌을 경고한 김정은의 발언 내용이 신문 방송에 그대로 실린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또 “지금까지 어떤 문제가 드러나기도 전에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규율조사부, 국가검열위원회와 중앙검찰소의 검열부터 먼저 예고된 적은 없었다”며 “각기 막대한 권한을 가진 네 기관의 검열이 진행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하다”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이어서 “김정일 때부터 나랏일이 잘 안 되는 책임은 모두 내각을 비롯한 경제일꾼들에게 돌아갔다”며 “각 도, 시, 군 인민위원회는 물론 중앙기관인 내각도 맡은 책임은 크지만 사실 아무런 권한도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내각을 가리켜 나라 경제를 책임진 사령탑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내각은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노동당의 승인과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각 경제 부문에 대한 지도와 통제 권한은 내각보다 경제부, 경공업부, 농업부, 과학교육부, 문화예술부 등 노동당중앙위원회의 담당 부서가 더 강하게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앙당 부장이나 도당책임비서 등의 높은 당 간부가 생산 현장에 온다고 하면 위생문화사업을 하는 등 대소동이 벌어지고 일부 걸린(당면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총리나 부총리는 아무리 왔다가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소식통은 옷을 입은 채로 물에 잠긴 논밭에 들어간 김정은에 대한 반응을 묻는 질문에 “의도적인 그 모습에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총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며 총리와 내각을 동정하는 분위기”라고 답했습니다.

함경북도의 한 기업소 간부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같은 날 “요즘 나라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며 ”총리와 내각에 대한 김정은의 비판 내용이 신문 방송에 그대로 공개되면서 사람들이 장성택 처형 때와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김정은이 등장한 후 긍정적인 내용만 싣던 노동신문과 방송에 지방과 간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부정적인 내용도 실리고 있다”며 그럼에도 “속된 욕설로 이어진 총리와 내각에 대한 김정은의 비판과 처벌 경고는 너무나 뜻밖”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특히 조사도 있기 전에 먼저 총리와 내각에 대한 김정은의 비판이 신문과 방송에 그대로 소개되었다”며 “당의 최고 지도 검열 부서인 조직지도부와 규율조사부, 국가검열위원회와 중앙검찰소에 처벌을 지시한 것도 이례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이어서 “내부적으로 생산 정상화와 계획 수행, 장마철 피해 방지에 대한 당의 지시 집행 정형에 대한 전국적인 검열이 진행된다는 암시가 있다”며 “인민위원회와 각급 공장 기업소 지배인을 비롯한 행정 간부들이 살얼음장을 건너는 심정으로 자기 목을 틀어쥔 당위원회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그러면서 “당에서 무슨 지시를 내리면 자재와 조건부족 등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행정 간부들이 요즘 찍소리 못하고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결사관철’과 ‘자력갱생’ 구호가 더 남발될 것이 뻔한데 결국 힘없는 노동자와 일반 주민들이 더 죽어나게 되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