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지의 북한 풍항계] “북핵문제, 미중경쟁 하위개념 전락 우려”

서울-김은지 kime@rfa.org
2020.08.13
trump_xi_b 2017년 11월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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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코로나19 국면에서 가속화된 미중 갈등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략환경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향후 미중 전략적 경쟁이 보다 구조화되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인데요.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는 무엇보다 북핵 문제에 대한 양국의 접근법에 변화를 가져와 북핵 문제를 둘러싼 양국 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중 모두 북한 비핵화 문제를 상호 견제를 위한 전략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데요. 이 경우 북핵 문제는 사실상 미중 전략경쟁의 하위개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북한 현안을 분석, 전망하는 ‘김은지의 북한 풍향계’입니다.

코로나19는 이미 진행 중이던 미중 갈등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코로나 사태는 미중 간 전략경쟁을 가속화하고 나아가 패권경쟁 양상의 요소들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실제 2018년 무역전쟁을 통해 본격화된 미중 대립은 코로나19를 겪으며 그 강도와 수위가 단기간 내에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누적된 상호 불신과 갈등이 코로나를 계기로 표출되며 미중 대결구도는 더욱 노골화되고 격화됐습니다. 코로나 확산 책임론에 이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계기로 미중 단층선은 무역과 기술, 금융, 군사, 남중국해, 대만 등 확대일로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위험성이 부각되며 미중 간 탈동조화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강대국 간 이해의 조정이 비교적 용이한 비전통안보 사안이라는 점에서 미중 협력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오히려 첨예한 갈등구조로의 전환을 이끈 ‘촉매제’로 작용한 겁니다.

정재호 서울대 교수(최종현학술원 학술회의): 미중 패권경쟁이 단기적으로는 소폭 완화될 수 있겠으나 전반적인 추세는 지속 내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코로나 사태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가 ‘차이메리카’의 종언을 고하고 양국 간 디커플링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미중관계는 냉전 2.0으로 가는 냉전 1.6 정도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향후 구조화되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양국 갈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기존의 패권국과 부상하는 강대국 사이의 ‘긴장’이 만들어내는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점에섭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 현재 직면한 미중 전략경쟁 시기는 단순히 트럼프와 시진핑이라는 두 지도자의 ‘선택의 문제’가 아닌 훨씬 더 구조적인 세력전이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현재의 미중 전략경쟁은 훨씬 더 구조적이고 전방위적인 갈등으로 갈 수밖에 없고 어느 한쪽이 타협을 시도할 때 이는 이미 그 세력이 상대에게 양보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동안 타협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실제 미중관계는 지난 2017년 이후 전략경쟁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초 중국을 전략적 경쟁국,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관여에서 압박으로 전환했습니다.

패권 측면에서 중국을 적극 견제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는 지난 5월 미국의 ‘대중국 전략접근 보고서’에 집약돼 있습니다. 보고서는 경제와 미국적 가치, 안보 부문에서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는 세부 이행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미국은 중국에 대해 협력보다는 공개 압박과 사실상의 봉쇄전략 등의 ‘경쟁적 접근(competitive approach)’을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사실상 양국 간 ‘신냉전’을 선언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 국무부는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 설립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구상도 제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이전부터 진행되던 미중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양국 간 디커플링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진 상황입니다.

여기엔 지난 40여년 간 미국의 대중국 관여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심층적인 관여가 중국의 근본적 개방을 유도해 ‘건설적이고 책임있는 이해상관자’로 바뀌길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나아갔다는 겁니다.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성을 강조하며 ‘중국몽’을 내세우고 오는 2049년까지 ‘두 개의 100년’을 완성해 미국을 능가하겠다는 공세적 태도를 강화하며 미국의 이 같은 인식은 강화됐습니다.

관여와 포용을 강조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정책이 중국의 변화를 끌어내는데 실패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은 의회를 포함한 미국 사회 내에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 외교가는 무엇보다 미중 갈등이 점차 이념적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대중국 전략접근 보고서’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이념경쟁으로 규정했습니다. 미국의 이 같은 인식은 시진핑 주석에 대한 호칭 변화(주석->총서기)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이동민 단국대 교수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접근보고서는 중국에 대해 사실상 ‘신냉전’을 선포한 것으로, 시진핑 주석을 총서기로 언급한 것은 향후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초강경 대응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기존의 경제와 군사 안보적 갈등에 더해 ‘가치와 체제 우위’의 논쟁을 거쳐 본격적인 이념 경쟁으로 격화되는 양상입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새로운 분야에서의 영역과 충돌이 격화될 수밖에 없고 이는 미국 입장에선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것으로, 만약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정치와 이념 간의 싸움으로 번질 경우 훨씬 유리한 구도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가치와 이념 체제와 관한 정치적 영역으로까지 확대될 경우 중국과의 경쟁 구도를 기존의 ‘미국 대 중국’에서 자국에 한층 유리한 ‘자유진영 국가 대 중국’으로 전환할 수 있고 이 경우 미국이 훨씬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 의회도 대만과 홍콩,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등 중국의 핵심 국가이익과 관련된 법안들을 잇달아 통과시켰습니다. 오는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국 보고서 발간에 이어 EPN구축, 주요7개국(G7) 확대 구상 등을 통해 대중 연합전선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중국 역시 공산당 체제의 정통성이 직접적으로 연계된 주권과 통일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물러서기가 어렵습니다. 중국 입장에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이자 레드라인, 금지선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경제적 파장을 각오하면서까지 전격적으로 홍콩보안법을 통과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 이면엔 홍콩과 대만, 남중국해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의 시작이란 전략적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실제 미중 간 군사안보적 대립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코로나 사태의 혼란을 틈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군사 활동을 강화하자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의 전략환경은 더욱 유동적이고 불확실해진 가운데 우발적 충돌위험 또한 높아지고 있습니다.

김준형 한국 국립외교원장(2020 한반도평화심포지엄): 중국이 지구적 경쟁에서는 아직 미국과 맞서는 데 역부족일 수 있지만 지정학적으로 동아시아의 경우 4개의 충돌 발화점이 있습니다. 한반도, 센카쿠, 중국-대만 양안, 그리고 남중국해가 그런 지점들인데요. 양국의 세력권 경계 설정이 관건으로, 이들을 연결하면 동아시아를 위에서 아래로 가로지르는 경계선, 이른바 미중의 지정학적 패권의 단층선이 생기는데, 중국은 이를 돌파하려 하고 미국은 어떻게든 봉쇄하려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중 간 군사 안보경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재성 교수는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일정 부분 군사 대비태세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경제와 사회, 정치 등 다른 영역에서 발생하는 세력균형의 변화를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군사 안보라는 인식 하에 미국의 대중 군사력 강화 추세는 지속될 것이고 중국 역시 군사 현대화의 노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다만 미중 양국 모두 당분간 경제회생과 사회안정 등 국내 문제에 집중할 필요성이 크다는 점에서 첨예한 직접 대치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대신 양국은 자국의 세력권(진영)에 편입하기 위한 ‘줄 세우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른바 ‘대리 견제와 경쟁’을 통한 세력권 확보 전략을 노골화할 것이란 관측입니다.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 양국 모두 현재 내부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어 국내문제에 집중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실제 첨예한 대립국면을 만들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시진핑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공산당 일당체제의 안정적 유지로, 정치경제적 난국에 직면한 상황에서 체제 안정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아 결국 두 나라가 끝까지 정면대결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이에 따라 미중 양국은 직접 대치는 가능한 우회하면서 동맹과 동반자를 견인하고 이를 전면에 내세워 ‘대리 견제와 경쟁’을 통해 자신의 진영, 세력권을 확보하는 외교전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반도는 이 같은 미중 대리경쟁의 ‘전장’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는 무엇보다 북한 비핵화의 추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중이 비핵화 문제를 정책의 우선순위에 놓는 대신 상호 견제를 위한 전략수단으로 활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북핵 문제는 미중 전략경쟁의 하위개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미중관계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북한 비핵화 문제가 미중관계의 부분집합으로 환원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는 다른 사안 중 유일하게 협력 기조를 유지해오던 북핵 문제에 있어 미중 양측의 불협화음, 나아가 중국의 이탈을 의미합니다. 현재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처해 있는 중국 입장에서 ‘북한 카드’는 유용한 대미 협상카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중 전략적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중국이 인식하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중국의 핵심사안에서 미국이 중국의 ‘임계점’을 넘어 대중국 견제를 강화할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김성한 전 한국 외교부 차관은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될 경우 중국은 사실상 북한의 핵을 용인하고 핵심기술의 지원이나 제재로 발생한 손실 부분을 중국이 메워주는 방식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김성한 전 한국 외교부 차관(고려대 국제대학원장): 미중 전략 경쟁이 계속 격화될 경우 중국이 미국에 대해 동북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북한 카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북한에 대해선 상당히 모호한 입장, 즉 비핵화를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북한에 대한 지원을 해왔던 이 같은 중국의 입장이 앞으로는 다소 선명성을 띄는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 이는 결국 중국 입장에서 북한 카드를 보다 확실하게 하는 쪽으로 변화할 가능성, 그것은 한반도의 전략상황이 굉장히 악화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북한의 전략적 입지 강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북중 간 전략적 협력이 강화될수록 핵 협상에서 북한의 대미 협상력은 높아집니다. 이는 협상교착의 장기화와 북한에 대한 단계별 보상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역시 북핵 문제를 대중국 전략적 견제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중거리 핵전력(INF)조약 폐기는 북핵 협상 프로세스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학술협력실장은 미북 간에 협상이 진전돼 한반도 비핵화의 윤곽이 뚜렷해지더라도 동북아 차원에서 전개될 새로운 INF논쟁은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중단거리와 중장거리 미사일 폐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결국 미중이 한반도 문제를 상호 견제를 위한 전략자산으로 활용할 경우 북핵 문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긴장 속 현상 유지’를 지속할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은 현재 미중의 전략적 갈등 공간을 이용해 핵무기 실전배치 단계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군사적 긴장 속 현상유지’는 오히려 북한에 대한 보상이 가장 많은 게임 틀이란 점에서 김정은 정권에게 ‘새로운 길’을 위한 전략적 공간을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고강도 제재로 고통받고 있지만 동북아의 신냉전 구도를 이용해 북한이 중러의 지원 등 제한적인 보상을 받는 한편, 핵무력 고도화를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내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중의 상호 협력을 적극 견인하기 위한 협력적 견인외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한국 정부가 미중 전략적 경쟁과 갈등이 한반도 문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한편, 미중관계에서 한반도의 비핵평화 의제가 주목받을 수 있는 정교한 대미, 대중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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