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수해민 연설 때 한국식 표현 사용
2024.08.13
앵커 : 지난 10일, 김정은 총비서는 홍수 피해를 입은 평안북도 의주군을 직접 찾아 수해민 임시 숙소를 방문하고 위로했습니다. 또 수해민들을 모아 놓고 연설하는 애민 행보를 보였는데요, 주민들은 김 총비서의 연설에 한국식 표현이 다수 등장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 안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사회 기반 시설이 약한 북한은 태풍, 폭우 등 자연재해에 취약합니다. 그러나 큰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재해 지역의 피해 상황보다 김정은 총비서의 행보를 요란하게 선전하는데요, 직접 차를 몰고 피해 현장을 찾거나 홍수로 물에 잠긴 논밭에 들어가는 모습 등이 보도됐습니다.
올해 역시, 지난 7월 말 압록강 범람으로 물에 잠긴 평안북도 신의주와 의주군을 찾아 직승기(헬기)를 동원해 주민들의 대피를 지휘한데 이어 지난 10일, 의주군을 다시 찾아 수해민들을 격려하고 연설을 한 소식이 북한 매체에 자세히 소개됐습니다.
평안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 요청)은 12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지금까지 김정은 위원장이 여러 수해 피해 지역을 찾았지만 수해민들 앞에서 연설한 건 처음”이라며 “피해 현장을 찾아 사전 대책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고 간부들을 욕하고 닦달질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김정은 위원장의 수해 지역 방문과 연설은 기록 영상으로 제작돼 조선중앙텔레비죤을 통해 반복적으로 방영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연설 내용보다 김정은이 연설에서 남한 말을 많이 사용한 모습에 사람들이 놀랐다”며 “연설 서두에서 흔히 사용하던 동지 혹은 인민이라는 말 대신 ‘주민’이라고 했고 노인이나 늙은이를 한국식으로 ‘어르신’이라고 했으며 텔레비죤도 ‘TV’라는 한국식 표현을 썼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나이든 사람을 가리킬 때 노인 또는 늙은이라는 표현이 주로 쓰이고 이를 높여 부를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에서는 텔레비죤을 줄여 보통 ‘텔레비’로 많이 부르며 “텔레비죤을 ‘TV’라고 하는 사람은 수상하니 신고하라”는 내용이 북한 반간첩 선전화(포스터)에도 등장합니다. 또 북한에서는 ‘어르신’이라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소식통은 특히 연설에서 김정은이 사용한 “‘병약자’, ‘험지’, ‘음료수’, ‘폄훼한다’ 등의 말은 북한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병약자 대신 환자 또는 허약자, 험지 대신 어렵고 힘든 곳, 음료수 대신 물, 폄훼 대신 비방 또는 비하가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이 같은 연설문을 누군가 써준다 해도 김정은의 승인 없이 그런 단어를 사용할 수 있었겠냐며 “주민들에게는 평양말을 사용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한국말을 대놓고 쓰는데 이건 이치에 맞지 않는 처사”라고 소식통은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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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양강도의 다른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같은 날 “모심(1호) 행사치고는 형식을 크게 차리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연설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참가자들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라 집과 재산을 잃은 수해민들이라는 것을 고려했는지 열과 줄을 반듯하게 맞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앉게 했다”며 “이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현장 촬영을 위해 연출한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소식통은 “김정은이 타고 다니는 열차의 호화로움이 놀라웠다”며 “열차의 벽 한 면을 활짝 열어젖혀 주석단을 만들고 주단(카펫)을 깐 연탁(연단,강연대)이 설치돼 있었고 그 옆에는 국기를 세워놓았다”고 전했습니다.
이전에는 국기보다는 당 깃발이 주로 설치됐지만 주민들의 신뢰를 잃은 노동당보다 국가를 강조하는 최근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소식통은 특히 “연설장에 모인 수해민들 중간 중간에 호위국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며 “보도 사진과 영상에서 살이(피부가) 검게 타지 않고 뼈도 앙상하지 않는, 얼굴이 번번한 사람은 다 호위국 군관(장교)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많은 홍수 피해가 있었어도 수해민 숙소까지 직접 찾아간 적 없는 김정은이 왜 갑자기 연설에, 수해민 손까지 잡으며 호들갑을 떠는지 많은 사람이 의아해한다”며 “하도 민심이 나빠지니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세우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급하긴 급한 모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