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간 북의 남편 기다리는 루마니아 할머니

200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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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루마니아 여성이 지난 60년대 북한 당국에 의해 헤어진 북한인 남편을 지금껏 애타게 기다려온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루마니아판 이산가족의 주인공은 루마니아 수도 부카레스트에 사는 올해 71살의 조르제타 미르초유(Georgeta Mircioiu) 할머니 입니다. 할머니는 아직도 매일 남편을 그리워하고 있다면서 죽기 전에 남편의 생사라도 확인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습니다. (루마니아어 통역: 그레그 스칼라티우)

"저는 부카레스트에 사는 루마니아 인입니다. 제 이름은 조르제타 미르초유인데 조선사람인 남편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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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조르제타 미르초유(Georgeta Mircioiu) 할머니와 남편 조정호씨와의 연애시절 - PHOTO courtesy of alto &base; company

미르초유 할머니가 북한인 남편 조정호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52년입니다. 당시 남편 조정호씨는 북한의 전쟁고아 3000여명을 이끌고 위탁교육을 위해 루마니아로 파견된 책임 교사였습니다.

사범 대학을 갓 졸업한 미르초유 할머니가 처음 발령 받은 학교는 다름 아닌 남편이 책임 교사로 있던 조선인민학교였고 이곳에서 두 사람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미르초유 할머니는 남편 조정호씨의 당시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미르초유: 남편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하며 늘 봉사하는 분이였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했죠. 저와 남편은 토요일이면 같이 춤을 추러 가기도 했습니다. 댄스파티에서 달콤한 케?도 함께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어느날 남편은 부모님께 저를 소개하고 싶다며 편지로 청혼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5년 동안 계속됐고 이들의 결혼에 부정적이였던 루마니아와 북한정부도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마침내 조정호씨와 미르초유는 1957년 양국정부로부터 정식 결혼 허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12일 루마니아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두 사람은 이후 함께 평양으로 이주해 그 사이 태어난 예쁜 딸 미란과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미르초유 할머니는 남편과 행복했던 시간이 그렇게 짧게 끝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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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초유: 남편과 평양에서의 생활은 행복했습니다. 저를 아는 주위 사람들은 저에게 아주 친절했습니다. 다만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은 외국인인 저를 경계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딸은 배급을 거의 받지 못했던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1962년 1살 반 된 딸 미란이가 칼슘과 영양 부족으로 치료를 위해 루마니아로 일시 귀국해야 했습니다. 딸의 치료가 끝난 후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루마니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는 남편이 죽었다 실종됐다는 말을 반복하며 제게 비자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미르초유 할머니는 남편의 친척을 통해 남편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편지로 연락했지만 1966년부터 편지마저도 끊기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받은 남편의 편지에는 평양에서 지방 학교 교사로 보내졌다가 다시 탄광으로 보내져 노역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남편은 조국과 당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탄광에서 일한다고 설명했지만 미르초유 할머니는 자신과 결혼한 것이 이유가 됐을 거라며 미안해했습니다.

이 자유아시아 방송을 들으시는 청취자들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남편 조정호를 아시는 분은 지금도 기다리는 저의 처지와 근심을 남편께 알려주세요. 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때에 남편 혹은 남편의 친지라도 만날 수는 없을까요?

미르초유: 그동안 남편의 시어머니와 함경남도에서 공과대학 교수로 일하던 남편의 남동생을 통해 남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연락이 끊긴 후 제가 보낸 편지는 모두 되돌아 왔어요.

남편은 마지막 편지에서 가족이 다시 만난다는 것은 자신의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자기가 탄광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바램이며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믿으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르초유 할머니는 남편의 소식을 듣기 위해 거의 매달 북한 대사관을 찾아 갔다고 합니다. 남편이 살아 있다면 만나게 해 달라, 남편이 죽었다면 아내로써 유골이라도 확인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루마니아 주재 북한 대사관측에 계속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대사관측에서 돌아온 답변은 사망, 소재 파악 불가, 생존, 사망 등으로 매번 달라졌습니다. 미르초유 할머니는 그동안 남편의 소식을 듣기 위해 북한 당국 뿐 아니라 적십자사나 엠네스티 인터네셔널, 즉 국제사면위원회 등 국제 인권단체에 탄원서도 수없이 써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생애에 남편의 생사라도 확인하는 것이 소원이라며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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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신산의 탄광으로 이주했다는 소식의 남편이 보낸 마지막 편지 - PHOTO courtesy of alto &base; company

미르초유: 차우셰스쿠가 북한 방문했을 때 북한 대사관에서 남편이 생존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조국은 조정호를 필요로 하고 있고, 또 상황이 외국인들은 북한으로 오지 못하고 북한 사람들도 외국을 방문하지 못한다며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저는 이제 70세가 넘어서 얼마나 더 살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루를 더 살지 한달을 더 살지 모르는데 남편과 서로 소식을 모르며 연락도 안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민족끼리 우정을 얘기하는데 부부사이에 연락을 못하게 하면서 민족끼리 우정을 얘기하는 것은 인도적인 면에서 볼 때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세월은 흘러서 남편과 헤어질 당시 1살 반이였던 딸 미란은 벌써 40이 넘었습니다. 현재 유엔에서 일하는 딸 미란은 지난 40여년 간 아버지를 찾는 어머니의 노력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남편도 살아 있다면 벌써 나이가 79세의 고령입니다.

그러나 미르초유 할머니는 남편과 다시 만날 희망의 끈을 아직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살아 있다고 믿고 있으며 지금도 매일매일 남편을 기다린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미르초유: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밤에 잠 들 때까지 남편이 계속 보고 싶습니다. 남편과 다시 만나게 되면 남편의 건강을 우선 챙겨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같이 평화롭게 아무 일도 없이 같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남편과 함께 근무했던 학교도 방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도시와 그 동네 그 학교 안에서 우리가 함께 했던 추억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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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남편과 헤어져 어린 아기를 혼자 키우며 평생을 기다림으로 살아온 것이 후회스럽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미르초유 할머니는 단 한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르초유: 우리의 애정은 아직까지 신성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결혼을 한 이유는 모험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하기 위해서 결혼을 한 것입니다. 평생을 같이 살기 위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헤어지게 만들려고 노력할수록 우리의 사랑은 깊어집니다. 장애물이 클수록 사랑은 깊어지듯이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미르초유 할머니는 한국어로 준비한 편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할머니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한국어 연습을 많이 했다면서 이 편지가 꼭 남편이나 남편을 아는 사람들을 통해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소망했습니다.

이수경기자

하고 싶은 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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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성

경기도고양시일산서구중앙로1496

두자식 남매를 키워면서 혼자47년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同感합니다 파독간호사로 떠나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있습니다

Nov 17, 2015 02:3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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