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북한 해외노동자] ⑩ 폴란드 농장서 100여 명 노동

바르샤바-양희정 yangh@rfa.org
2016.10.28
T_Mularski_entrance-620.jpg 사르누프 T. Mularski 농장 입구와 경비실.
RFA PHOTO/양희정

앵커: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전 세계 곳곳으로 주민들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예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마련한 ‘2016 연중 기획보도’ 북한 해외노동자 시리즈오늘은 그 열 번째 순서로 유럽에서 몰타 이외에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유일한 나라 폴란드 즉 뽈스까에 대해 알아봅니다.

양희정 기자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국가노동감독원과 백 명 가까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바르샤바 남부 사르누프의 농장 등을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킬로미터를 달려 도착한 작은 마을 사르누프. 폴란드의 유명 야채 재배 회사인 물라르스키(Tadeusz Mularski)의 대규모 농장이 위치한 곳입니다. 기자는 하늘이 잔뜩 흐린 지난 9월의 어느 일요일, 이 농장을 찾았습니다. 이 곳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들로부터 직접 노동 실태를 들어보기 위해서입니다.

기자: How many are there? 폴란드인 경비: (폴란드어) 통역: 백 명 가까이 된다고 볼 수 있대요.

안내와 통역을 맡은 현지 한인을 통해 토마토를 사러 왔다는 기자에게 인상 좋은 폴란드인 경비가 나와 일요일에는 직판장을 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한 기자와 통역이 “우린 북한인 친구를 만날 겸 해서 왔다”며 “이 곳에 북한 노동자가 모두 몇 명이나 되냐”고 묻자, 폴란드인 경비는 경계심을 풀고 백 명 가까이 된다고 알려준 겁니다.

농장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가로 막힌 채 경비실에서 열고 닫을 수 있게 통제되어 있습니다. 뒤따라 온 폴란드인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려 하자 경비는 여성의 차를 막고 안으로 연락을 취하며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옆에서 조용히 올려다 보던 개 한 마리가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 기자는 경비실 안을 들여다 봅니다. 폐쇄회로 영상을 통해 농장 곳곳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눈에 띕니다.

다시 돌아온 경비에게 북한 노동자들이 이 안에 살고 있냐고 묻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기자: 숙소는 이 안에 있다고 해요? 통역: 폴란드어

일주일에 몇 번 북한 영사가 이들을 방문하고 이 곳에서 일하는 다른 외국인들도 있지만 그들은 모두 농장 밖에서 기거한다고 폴란드인 경비는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북한 노동자들이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하는지, 휴일은 며칠이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직도 속으로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 여성 노동자 100여 명이 일하고 있다는 T. Mularski 원예 농장 내부.
북한 여성 노동자 100여 명이 일하고 있다는 T. Mularski 원예 농장 내부.
RFA PHOTO/양희정

그러면서도 그는 북한 노동자는 모두 여성이고 토마토와 오이를 재배하며 일년 내내 이 곳에서 일한다고 답했습니다. 젊고 예쁜 여성들인데 그 중에는 폴란드어를 조금 하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입니다. 농장에서 함께 일하는 폴란드 현지인들로부터 폴란드어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기자는 북한인들이 일요일에 장을 보기 위해 외출을 한다고 해서 왔는데 아직 나가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이 오전에는 생활총화를 하고 주로 오후 2~3시경에 외출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폴란드 경비: (폴란드어) 통역: 어제 일을 했기 때문에 오늘 갈 수 있을 거라고 해요.

토요일이나 일요일 양일 중 하루 쉬는데 전날 일을 했기 때문에 이날 외출할 가능성이 있고 아직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아직 오후 1시가 채 안 됐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이 휴일에 시간을 보낸다는 대형 쇼핑몰 M1.
북한 노동자들이 휴일에 시간을 보낸다는 대형 쇼핑몰 M1.
RFA PHOTO/양희정

기자는 북한 여성들이 자주 간다는 약 7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서양에서 ‘쇼핑몰’이라고 부르는 초대형 상가 밀집지로 향했습니다. M1이라는 대규모 상가 건물 안에는 장식품 가게, 커피와 케익을 파는 카페, 옷가게 등은 물론이고 야채와 과일, 생활용품 등을 파는 대형 상점이 있습니다. 상점 경비는 북한 여성들이 주로 일요일 오후 늦게 스무 명 가량이 한꺼번에 몰려와 여느 여성들이 그렇듯 구경도 하고 물건을 사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합니다. 최근에는 목요일 아침 문을 열자 마자 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녁 시간이 되어도 북한 여성 노동자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물라르스키 농장의 경비가 귀띔을 했기 때문에 외출을 취소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북한 여성 노동자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간다는 농장 인근의 작은 상점(LEWIATAN)으로 향했습니다.

사르누프 T. Mularski농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휴일에 자전거나 도보로 장 보러 간다는 수퍼.
사르누프 T. Mularski농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휴일에 자전거나 도보로 장 보러 간다는 수퍼.
RFA PHOTO/양희정

통역: 저 왼쪽으로 들어가요. 저 화살표시 있죠? …GPS안내…큰 길에서 들어가고… 야 크다. 엄청 크네. 계속 만들고 있네요. 여기도 밀어가지고 만들고 있네요. 엄청 큰 거예요.

큰 길에서 바라본 농장의 규모가 새삼 놀랍습니다. 구글 위성으로 하늘에서 찍은 이 농장 사진을 보면 온실의 규모가 상당합니다.

위성사진으로 본 T. Mularski의 대규모 농장 모습.
위성사진으로 본 T. Mularski의 대규모 농장 모습.
사진- 구글 지도 캡쳐

레비아탄이라는 농장 근처 상점에도 북한 여성 노동자들은 이날 가지 않았습니다.

폴란드는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 들이고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뤘습니다. 폴란드인들은 인근 유럽연합 국가에서 일하며 더 높은 임금을 받고, 그 빈 자리를 값싼 북한 노동자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영국 채널 4의 디스패치 프로그램 취재진은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국인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할 자금 마련을 위해 주민을 ‘국가 주도의 노예노동’에 필사적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디스패치는 당시 물라르스키 농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는 62명이고 이들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고용됐다는 농장 관계자의 주장을 전했습니다.

독일의 언론매체 바이스독일(Vice Germany)은 폴란드 북한 노동자 현장 취재 관련 ‘김정은을 위한 현금(Cash for Kim)’이라는 동영상에서 북한 당국이 노동자 한 사람 당 연간 최대 3만 5천 달러를 벌어 들인다고 보도했습니다.

기자는 외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휴식이나 휴일 준수 혹은 추가 근무 수당이나 임금 지불 등과 관련한 위법 여부를 정기적으로 감찰 조사하는 바르샤바 시내에 위치한 폴란드 국가노동감독원(National Labour Inspectorate)을 찾았습니다. 야로스와프 레쉬니에프스키 (Jaroslaw Lesniewski) 국장과 그의 직원들은 수 년간의 감찰 결과에 대해 몇 시간 동안이나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폴란드 노동법의 안전 규정을 위반하고 조선소의 용접공이나 건설노동자 등을 위험에 노출시킨 폴란드나 북한 회사 고용주에 대해 법적 고발 조치까지 취해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해주고 있다고 레쉬니에프스키 국장은 말했습니다.

레쉬니에프스키 국장: 폴란드 여러 지역에서 100명이 넘는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대규모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기자: 아르멕스인가요?)

레쉬니에프스키 국장: 아르멕스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지만 진행 중인 감찰대상은 야채 등의 재배 분야입니다. (기자: 물라르스키이군요?)

2013년 언론에 폴란드 내 북한 노동자의 인권 착취 문제가 제기 되면서 북한 노동자 고용주 전체에 대한 감찰을 시행했고, 올 한해만 400여 명에 대해 15건의 감사를 진행했다는 것입니다. 레쉬니에프스키 국장은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는 이른바 ‘나쁜 기업’에 대한 목록을 공개하지는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주간 잡지 뉴스위크 폴란드판과 폴란드 최대 일간지 가제타 비보르차(Gazeta Wyborcza) 그리고 바이스 독일 등은 북한 노동자들이 유럽연합 회원국인 폴란드에서 조차 물론 북한에서와 마찬가지로 감시와 통제 속에 살아간다고 잇따라 보도했습니다. 한국과 영국, 네덜란드의 단체들도 북한 관리 한 명이 노동자 전체의 월급을 수령해 간 것을 입증하는 서명이 담긴 서류 등을 입수했고 북한 노동자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최대 90퍼센트까지 착취 당할 뿐 아니라 하루 12시간 안팎의 장시간 근무와 심지어 구타와 모욕을 당하는 ‘북한 밖의 북한’에서 살고 있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레쉬니에프스키 국장은 폴란드 국가노동감독원의 조사 활동에서 북한 노동자의 인권 유린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며 활동에 제약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폴란드 국가노동감독원의 레쉬니에프스키 국장은 감독원 차원의 감찰에서는 강제 노역 등 폴란드 내 북한 노동자의 인권 유린의 단서를 찾지 못했지만 개별적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레쉬니에프스키 국장: 개별적으로는 회의에 참석하거나 시민단체 관계자, 전문가와의 대화 혹은 관련 기사를 통해 임금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는 등 문제가 있다는 정황(signals)이 많습니다. 다만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레쉬니에프스키 국장은 장시간에 걸친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 성의 있게 답하며 북한 노동자가 폴란드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불만을 표출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감찰을 통해 인권 유린의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임금 착취, 장시간 근무와 구타가 반복되는 열악한 상황에 처한 북한 노동자들은 오늘도 고달픈 ‘노예 노동’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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