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T: 미국은 북한을 ‘적’으로, 남한은 ‘말 잘 안듣는 사촌’으로 간주해

최근 미국의 게임업체들이 독일의 나치나 구 소련군 대신 북한군을 사악한 적으로 설정한 게임들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지만 남한은 이런 게임들의 국내 판매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9일 남한주민들이 북한을 더 이상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 면도 있지만, 남한정부가 북한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영화와 비디오 게임 등을 검열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세계적인 게임업체인 미국의 유비소프트 (Ubisoft)사가 개발한 군사게임 ‘고스트 리콘 2는 북한 민간지도부가 국방예산을 줄이자, ‘정 (Chung)대장’이라고 불리는 군 장성이 무력정변을 일으키고 이어서 남한을 재래식과 핵무기로 위협한다는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미국의 특수부대 고스트 리콘이 북한의 핵전쟁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북한에 침투해 북한군을 공격하는 것이 이 게임의 주된 내용입니다.

지난해 말에 전 세계시장에 출시된 이 게임은 그러나 남한에서는 등급보류 판정이 내려져 있습니다. 고스트리콘2는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데다가, 북한의 핵문제로 인한 전쟁 발발 등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이유로 등급 보류됐습니다. 현재, 남한에서는 ‘음반, 비디오와 게임물에 관한 법률’에 따라 등급이 분류되지 않은 게임은 시중에서 판매할 수 없게 돼있습니다.

이에 대해 파리에서 발행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은 8일 미국 게임업자들은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에, 남한의 영상물 등급위원회는 북한을 ‘말을 잘 안 듣는 사촌 (wayward cousin)'정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남한은 고스트 리콘 2 외에도 ‘스플린터 셀 (Splinter Cell 3)', ’머시너리즈 (Mercenaries)' 등 북한을 적으로 등장시킨 3개의 게임에 대해 남한 내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신문은 한국전쟁 이후 남한사람들은 북한을 적으로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지적합니다. 그 좋은 예로 지난여름 남한에서 개봉된 ‘웰컴투 동막골’처럼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는 내용의 영화가 인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2000년 이후 개봉된 남한의 주요영화 6편중 5편은 모두 북한사람들을 ‘악인’이 아닌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신문은 평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남한정부가 북한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영화와 비디오 게임 등을 검열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 중 대표적인 인사는 중국 내 탈북자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다룬 기록영화 ‘서울기차 (Seoul Train)'을 제작한 미국인 짐 버터워스 (Jim Butterworth)씨입니다.

그는 이 신문과의 회견에서 남한의 영화사, 방송사등 문화계 어느 곳에서도 ’서울기차‘와 관련된 사업을 하려들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남한정부가 근본적으로 이 영화를 금지했기 때문이며, 유일하게 남한 내에서 상영된 곳은 남한국회의 지하실이었음을 지적했습니다.

한편, 신문은 남한이 북한의 강력한 군대와 핵무기를 다루는 게임들을 검열하는 것은 아시아 국가들의 새로운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비디오 게임이 신문이나 방송, 혹은 인터넷에서 시사정보를 얻는데 무관심한 젊은 세대들에게 정치적 이념을 전달하는데 매우 강력한 도구임을 깨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명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