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원의 평양과 서울사이] 북한 당국 경제이민 허용할까?

2008-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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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한주일 동안 오래 기다리셨죠? 일요일 새벽 여러분 찾아가는 양성원의 평양과 서울사입니다. 평양과 서울사이 참 가까운 거리죠, 그런데 60년 떨어져 있는 거리는 너무 멉니다. 바로 평양과 서울사이는 그런 거리를 조금이라도 좁혀 들이기 위해 매주 일요일 여러분 찾아뵙고 있습니다.

평양과 서울의 기록적인 한파

지난주 한반도는 정말 추웠어요. 평양 또 서울 모두 기록적인 한파라고 얘기하는데요. 그런데 겨울은 이 정도는 추워야죠. 여러분들 기억나세요? 방안에 냉수를 떠놓으면 그 냉수가 얼어서 정말 자고 일어나도 코끝이 찡하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추웠습니다. 그런데 북한이나 남한이나 기온이 기상이변으로 전체적으로 따뜻해서 그런지 조금만 추워도 기록적인 한파라는 말이 서슴없이 쓰입니다. 사실 이렇게 춥다고 해도 서울에서는 한강이 얼어붙는 날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강에서 스케이트 타고 썰매타고 얼음을 깨고 낚시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추워도 생각할 수 없는 풍경이 됐습니다. 평양은 어떤가요? 또 저쪽 압록강, 두만강 쪽은 어떻습니까? 탈북자들 얘기를 들으면 그 얼음을 살살 디디면서 중국으로 건너왔다는 얘기를 듣게됩니다. 그러다가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지면 어쩌나 걱정도 되지만 탈북자들은 겨울에 압록강, 두만강 물이 낮다고 하더군요.

탈북자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요새는 별로 배고파서 탈북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중국과 북한 국경지대를 다녀 온 국제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북한을 나온 탈북자가 있어서 가족이나 친지를 데려오는, 글쎄요 이것을 이민이라고 해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식의 탈북이지 꼭 북한 밖으로 나와야 되겠다고 해서 굶주린 배를 움켜주고 나오는 탈북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들 단체들이 앞으로는 북한 내의 민주화와 인권 향상을 돕는 방향으로 활동 방향을 바꾸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노래 하나 들을까요?

노래: 클레지콰이 - 로미오 & 줄리엣

국제인권단체들의 활동 방향

조금 전에 북한 내의 인권향샹과 민주화를 돕는 방향으로 국제인권단체들이 활동 방향을 바뀐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그렇게 말하면 좀 멀게 느껴지죠. 그것이 내 생활에 무슨 영향을 주는가라고 생각 하실테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북한 주민들이 입은 인권피해를 법적으로 보상 받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남한에서 또 세계적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인권단체들이 북한 주민들이 인권피해를 본데 대해 북한 당국으로부터 보상을 받으려면 일단 증거를 많이 수집해야 한다고 해서 증거수집 노력에 들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난주 영국 런던에서는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를 논의하는 국제인권대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서도 국제인권단체들은 국제법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유린 피해를 보상하도록 하고 그렇게 북한 주민들을 고통 속에 빠트린 북한 당국을 처벌할 수 있는 준비작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만약에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 북한에서 가족 중 일부가 남한으로 넘어갔다고 북한 당국이 마음대로 사는 곳을 지정해서 아이들 학교도 좋은 데 못 보내고 직업도 제대로 못 갖고 고생을 했다면 이것을 북한 당국으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구요.

또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해서 북한당국으로 처벌을 받았다든가 또 자기가 생각할 때 너무나 억울한 일로 피해를 입었다든가 또는 전쟁으로 가족이 흩어져 오랜 세월 떨어져 살면서 고통을 받은 경우도 모두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꼭 금전적으로 물질적으로 보상을 받는다해서 그 고통과 피해가 다 없어지겠습니까만은 이런 일이 후손들에게는 인간으로서 편안하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가족과 살고 또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맘대로 못한 그런 억울함, 불편, 고통 같은 피해가 이어지지 않게 한다는 데 의의가 있겠죠. 좀 무거운 이야기였는데 화제를 바꿔야 겠습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연주..

다음달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연주하고 그 후에는 서울에서 연주를 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교향악단도 9월에 영국을 가는군요. 영국 뿐 아니라 독일과 오스트리아에도 간다고 하니 북한의 음악 수준을 음악의 본 고장이라는 유럽에 알리는 정말 더없이 귀한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연주 곡목도 보니까요. 영국에서 공연하면서 북한 국가도 연주하는 것으로 돼 있구요.

‘미들즈브러’라고 해서 기억나세요? 1966년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렸을때 참 여러가지 조건이 불리한 북한 대표팀이 막강한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을 물리치고 그것도 1-0으로 말이죠, 세계 축구 8강에 들어간 북한과는 아주 가까운 영국의 도시에서도 공연을 합니다. 제가 그 당시 자료를 찾아보니까 영국의 축구팬, 관중들은 같은 유럽 사람인 이탈리아를 응원하지 않고 멀리 한반도에서 날아 온 북한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했다고 돼있습니다.

이번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영국 공연이 그 때 축구경기 처럼 영국 사람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영국, 정확히는 아일랜드 민요인데요. 오 데니 보이 듣겠습니다. 남한에서는 아 목동아 로 번역이 돼서 남한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노래: Oh Danny Boy

조금 전 제가 북한 교향악단 얘기 해드렸는데요. 남북한 간에서 문학인들이 모여서 통일문학이라는 잡지를 처음 발간하다고 해요. 참 반가운 소식이죠. 사실 문화만큼 민족을 민족답게 확인시켜주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에서도 남북문화기행이라는 연속 기획물을 방송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설날이 가까워서 다시한번 같이 듣고 싶은 얘기가 설에 먹는 떡국과 만두국 얘긴데요. 이것 서울에서 이현주 기자가 보도한 것이 있습니다. 같이 들어 보시면서 떡국과 만두국 비교해 보시죠

떡국과 만두국

떡 방앗간 쌀가루 찢는 소리. 저는 지금, 종로 이화동의 떡 방앗간에 나와 있습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설날을 앞두고 가래떡 뽑기가 한창입니다. 불린 쌀을 빻아서 쌀가루로 만들고 쌀가루를 시루에 넣고 살짝 쪄, 이걸 떡메를 친 다음 길게 뽑으면 바로 가래떡이 나옵니다.

김이 솔솔 나는 갓 뺀 가래떡을 찬물에 살짝 헹구어 판에 넣고 하루를 말린 다음, 기계로 어슷썰기 해 내면 바로 남쪽 주민들의 설날 상에 오르는 떡국 떡이 완성되는 겁니다. 남쪽의 대표적인 설날 풍경은 이런 방앗간 앞에 줄줄이 늘어선 아낙네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먹거리가 풍성해지고 가족 구성원들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이런 풍경은 사라졌습니다. 탈북자분들께 얘기를 들어보면 북한에선 설날, 떡국보다는 만두국을 먹거나 고기에 이밥을 먹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네요.

탈북자 정영씨도 처음 남쪽에 와서 ‘떡국은 먹었나’ 하고 물어오는 새해 인사가 상당히 낯설었다고 말합니다.

고기도 넣고 남새도 넣어서 만두를 만듭니다. 아무리 잘 사는 집도 설날엔 이런 만두국을 먹어야 설날이죠.

남쪽이 떡국, 북쪽이 만두국을 먹는 문화는 예전부터 전해오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쌀 농사가 남쪽보다 적은 북쪽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남북이 서로의 문화를 전혀 모르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탈북자 분들에게 떡국 얘기를 꺼내면 다들 끝내주는 이북 만두 맛 자랑이 늘어집니다. 배추에 돼지고기, 김치를 섞어 만들었던 만두속 맛은 남쪽의 만두와는 비교가 안된다고 한참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올해 농사가 힘들어 떡은 고사하고 만두피 만들 밀가루는 구할 수 있는지 고향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음악: 고향의 봄..

지금 들으시는 노래는 탈북자 김용 씨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낸 음반 중, 고향의 봄입니다. 명절 때 제일 생각나는 곳, 역시 고향입니다. 그래서 이 때가 싫다는 탈북자들도 많았습니다. 탈북자 한민 씨도 명절 음식 앞에선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고 말합니다.

이 내가 먹는 이 음식 한 입이라도 어머니가 먹어 봤으면 이런 생각이 나요. 눈으로 계속 봐왔던 꽃제비도 자꾸 생각나요.. 잊어버리자 해도 자꾸 떠오르네요.

고향보다 나은 삶은 살아도, 풍요를 나눠주고 싶어도, 쉽게 나눠줄 수 없는 안타까움.. 남쪽의 모든 탈북자들의 마음일 것 같습니다.

이 보도에서 이현주 기자가 설명한 것을 보면 북쪽은 만두국, 남쪽은 떡국인데요. 사실 북쪽의 음식 중 만두는 남쪽에 내려온 북쪽의 실향민들이 큰 돈을 모을 수 있게 해준 음식이기도 합니다.

한일관이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잠시 제가 말씀드렸는데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역사가 70년이 넘는 음식점이 돈을 많이 벌게 만들어 준 음식도 만두국이었구요. 지금도 평양냉면, 함흥냉면 유명한 곳에서는 만두국들을 함께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만두국이 모두 북한식이다 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분단의 세월 만큼이나 민족공통의 음식의 맛, 재료, 만드는 방법도 다 바뀌었거든요. 노래하나 듣죠.

이승열 Buona Sera

양성원의 평양과 서울사이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다음주에는 보다 따뜻하고 밝은 소식 가지고 여러분 찾아갈 것 약속드리구요. 다음주 평일 뉴스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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