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필요한 영웅은 ‘홍길동’

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야러분은 지금 서울의 탈북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 저희가 다룰 작품의 주인공은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만 좋아하는게 아닐 겁니다. 이 사람만큼이나 한국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 내리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만큼 유명하고 사랑받는 사람이란 말인데요. 심지어, 이 사람 이름은 관공서나 은행에 가면 꼭 있습니다. 선생님, 오늘 저희가 알아보고 또 이야기 나눌 작품과 그 안의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사진은 국립극장이 만든 마당극 신 홍길동전의 한 장면.
사진은 국립극장이 만든 마당극 신 홍길동전의 한 장면. 사진은 국립극장이 만든 마당극 신 홍길동전의 한 장면. (연합)

남북 공히 사랑받는 홍길동

도명학: 네, 홍길동입니다. 남북한을 통틀어 홍길동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북한에는 홍길동전을 각색해 만든 영화 “홍길동”이 있고 고등중학교 교과서에도 홍길동전이 있습니다, 남한에도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한 “쾌도 홍길동”, “탐정 홍길동” 같은 드라마들과 “풍운아 홍길동” 같은 만화작품이 있고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나온 바 있습니다. 5천 년 역사를 함께 살아온 단일민족이기에 홍길동은 남과 북에서 다 같이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MC: 먼저, 홍길동전을 쓴 사람은 누구인가요? 작가부터 소개 좀 해 주시죠.

도명학: 작가는 허균으로 알려져 있고, 홍길동전은 16세기 후반과 1618년 사이에 창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허균이 저자라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 작가 미상으로 보는 견해들도 있습니다.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근거로는 허균과 동시대인이자 허균의 제자였던 이식이라는 사람의 문집 “택당집”에서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고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이식은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고 하면서 허균이 수호전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논란이 있는 건 홍길동전 원본이 아직 발견되지 못했고 후대에 간행된 이본들만이 전해져 왔기 때문입니다.

허균은 조선 중기, 그러니까 이조시대 중기의 관료, 외교관, 학자, 의병장, 문장가, 비평가, 사상가였습니다. 호는 교산이고,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정치 쪽으로는 뛰어나지 않았지만 허구의 이야기를 꾸며내며 망상하는 것에는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고 하며 생전에 문장, 시, 소설 등 문집으로 이름이 조선과 명나라에 널리 알려졌으며, 아버지 허엽, 이복 형 허성, 친형 허봉, 친누나 허난설헌과 함께 허씨 5문장으로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성격은 자유분방하고, 사회비판적이고, 다양한 사상들을 믿고,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교류했습니다. 조선의 15대 왕 광해군과는 사돈이 될 정도로 잘 나갔으나, 인목왕후를 싫어하여 몇 차례에 걸쳐 암살을 기도한 것 때문에 역적이 되면서 가문이 풍비박산나고 조선이 망할 때까지 복권받지 못했습니다. 허균을 연구한 한국의 역사학자 이이화는 허균을 “인간을 사랑한 사람, 차별 없는 세상, 약자가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인본주의자이고 자유주의자다.”라고 평가했고 대한민국 행정안전부에서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 허균”이라고 평가하는 등 현대에 재평가되었습니다.

MC: 남한에서 나온 ‘홍길동전’ 원작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도명학: 홍길동전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홍길동은 양반계급인 아버지 홍판서의 아들로 태어난 자식이지만 생모가 첩이이서 차별을 받습니다. 서자인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는 천한 신분으로 가문에서 고립되어 점점 상황이 꼬여 더는 그대로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야인이 되어 버립니다. 그는 도적단을 접수하여 정의의 비밀결사 활빈당을 조직하고 전국을 무대로 의적 활동을 하던 중 아버지와 이복형을 협박한 임금 앞에 일부러 붙잡혀습니다. 그러나 곧 유유히 도술을 부려 도망가고, 이에 도저히 홍길동을 잡을 방법이 없게 된 임금은 홍길동에게 병조판서 벼슬을 내주고, 홍길동은 부하들을 데리고 저도라는 섬으로 갔다가 그 옆에 있는 율도국으로 쳐들어가 점령하고 결국엔 율도국의 왕이 되는 것이 작품의 결말입니다.

남북한 홍길동 ‘사상과 의미 서로 달라

MC: 그럼 북한에서 나온 ‘홍길동전’은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나요?

도명학: 소설 “홍길동전”은 예로부터 전해온 고전소설인 만큼 북한에서도 남한과 동일합니다. 다만 다른 것은 홍길동전에 담겨진 사상과 의미에 대한 평가입니다. 또 1986년에 제작된 영화 “홍길동”은 각색 작품인만큼 원작과 일치하진 않습니다.

1986년, 북한은 홍길동 이야기를 무술영화 형식으로 영화 “홍길동”을 제작하였습니다. 영화에서 홍길동은 서자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와 형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동시에 아버지의 첫 째 부인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시작 부분은 홍길동의 아버지가 어린 길동과 그의 어머니를 안전한 장소로 보내는 도중에 복수심에 불타는 정실부인이 보낸 암살자들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위급한 순간, 정체 모를 늙은 도술사가 나타나 그들을 구해줍니다.

어린 길동은, 도술사에게 자신을 제자로 키워줄 것을 간곡히 요청해 산에 들어가 도술을 전수 받으며, 요술피리 부는 법도 배웁니다. 몇 년 후, 길동은 도적들에게 납치된 임대감의 딸을 구해냅니다. 임대감은 자신의 딸을 구해준 길동에게 아주 큰 감사함을 전하며 그의 딸과 길동을 결혼시키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임대감은 길동을 홍판서의 아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곧 임대감은 길동이 홍판서의 서자임을 알게 되고, 그의 딸과의 혼인을 거절합니다. 이미 홍길동에게 사랑을 느낀 임대감의 딸은 이러한 현실에 한탄하며 자살을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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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과 그의 어머니는 다시 홍판서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첫째 부인이 못살게 굴고 암살자들을 다시 고용하여 길동을 죽이고자 하지만, 첫째 부인이 낳은 자식이지만 길동을 사랑하는 이복형이 길동을 구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길동은 백성들을 구원하는 데에 헌신하게 됩니다. 그 후, 길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려고 하였던 도적단에 들어 도적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길동은 연마한 마술피리 실력으로 자신의 등장을 알렸는데요, 탐관오리 등 부패를 저지른 사람들은 이러한 길동의 피리소리만 들으면 벌벌 떱니다.

길동의 노력으로 점차 세상이 안정화 되어가 보이던 어느 날, 일본의 무사들이 국보를 훔쳐가고 길동의 아버지인 홍판서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몰립니다. 이에 길동의 형이 국보를 되찾으려 노력하지만 결국 위험에 쳐하게 되는데 길동은 형을 구하고, 길동이 사랑하는 임대감의 딸이 일본 무사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하여 길동과 형, 마을의 사람들은 일본 무사들을 찾아서 무찌릅니다. 거기에는 일본 무사들이 훔쳐간 보물들과, 길동이 사랑한 여인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납치당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보물들을 되찾아온 길동은 영웅이 되었고 왕은 그에게 원하는 것을 무엇이던지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길동의 형은 왕에게 길동과 임대감의 딸이 서로 사랑을 하고 있으니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것 빼고는 들어주겠다며 서자와 임대감의 딸의 결혼을 거절합니다. 왕의 그러한 대답을 듣고 난 후, 길동과 그의 어머니, 임대감의 딸, 그리고 길동의 무리들은 나라의 불평등이 크다 하여 배를 타고 어디론가 멀리 떠납니다. 이 영화는 언젠가 미래의 조선 사람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맞이하게 되리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끝납니다.

원작 소설 홍길동전과 좀 다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홍길동이 봉건적 신분 차별에 대한 반항심과 양반관료들의 부정부패를 응징하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적 활동을 하는 이야기는 같습니다.

MC: 선생님 보시기에, 남한의 홍길동과 북한의 홍길동이 많이 다른가요? 뭐가 어떻게 다르나요?

도명학: 크게 다른 점은 없고, 다만 남한도 북한도 다 원작을 각색한 작품들이 있는 관계로 각색 작품들에 등장하는 홍길동의 이미지나 행동거지 같은 것은 차이가 좀 있습니다. 북한 영화에 나오는 홍길동은 의젓하고 반듯하고 대 바르고 예절 있고, 정의감에 불타고 백성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은 모범생 스타일인데 비해 남한 작품들에 나오는 홍길동은 대개 인품이나 성격 면에서 북한 홍길동에 비해 완벽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고 더러 허술한 점도 있고 익살스러울 때도 있고, 정말로 도둑놈다운 기질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홍길동' 속 한 장면
애니메이션 '홍길동' 속 한 장면 애니메이션 '홍길동' 속 한 장면 (연합, 한국영상자료원)

MC: 북한 주민들에게 홍길동은 어떤 존재인가요? 많이들 좋아하나요? 어떤 점을 좋아하는 건가요?

도명학: 북한 사람들이 홍길동이란 존재를 특별히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거나 하는 건 느껴보지 못했고요, 다만 영화 “홍길동”은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우선 주연을 맡은 배우가 아주 미남이고, 또 무술영화 형식으로 만들었기에 특별히 청소년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MC: 남한주민과 북한주민이 바라는 영웅 ‘홍길동’은 어떤 모습일까요?

도명학: 홍길동은 신분 차별이 없는 평등사회를 갈망한 인물이니만큼 남북한 사람 누구에게나 비록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긴 하지만 영웅일 것입니다. 다만 남한은 이미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이지만 북한은 봉건왕조나 다른 없는 신분제도로 독재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홍길동은 북한을 위해 절실히 필요한 영웅일 것입니다. 북한 영화 “홍길동”에서 보게 되는 불평등과 신분제도와 부패상은 곧 북한의 현재 모습입니다. 북한당국 입장에선 속이 찔리는 영화를 만든 격이라 할 수 있고, 실지 주민들도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MC: 마지막으로 한가지 궁금한게 있는데요. 한국은 관공서에 가면 여러가지 서류양식이 있는데요. 어떻게 빈칸을 채워야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샘플, 그러니까 견본을 비치해 놓습니다. 그때 주로 사용되는 이름이 바로 ‘홍길동’입니다. 북한에도 혹시 그런게 있나요? 예를 들때 사용하는 가상의 인물을 가리키는 이름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도명학: 북한에서는 홍길동을 샘플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간혹 김갑돌, 김갑순 하는 식으로 서류에 기재하면 된다고 안내할 때는 있습니다.

MC: 이제 마쳐야 할 시간이 다 됐습니다.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