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이승재입니다.
한국엔 약 3만 5천여 명의 탈북민이 살고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께서도 이분들의 삶이 많이 궁금하실 텐데요. 북한과 전혀 다른 한국 사회에 적응하느라 힘겨워 하는 분들도 많지만,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고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분들도 많습니다. 오늘 [여기는 서울]에선 한국에서 자신의 길을 잘 찾고 사회적으로도 나눔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 탈북민 김소영 씨를 만나봤습니다.
기자: 지금 뭐하고 계세요? 이게 무슨 소린가요?
김소영: 네. 녹두 갈고 있습니다. 미리 갈아서 가져오면 좀 그렇잖아요. 열을 받아서 빨리 부패되니까 즉석에서, 이왕이면 젊은이들이 북한 음식 좀 맛있게 드시고 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통일에 대한 의미를 알리고, 공감대 확산을 위해 매년 5월 넷째 주간을 ‘통일교육주간’으로 지정했습니다. 올해 통일교육주간엔 “광복의 빛, 통일을 밝히다”라는 주제로 1주일간 서울의 신촌, 홍대 등지에서 북한 문화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놀이와 체험행사를 열었는데요. 김소영 씨는 이 통일교육주간의 개막식이 열린 서울 성북구 국립통일교육원 마당에서 개막식에 참석한 200여 명의 시민들을 위해 열심히 북한 음식을 만들고 있었지요.
김소영: 뭐 드릴까요?
시민들: 통일 떡 좀 주시라요. 떡을 한 여섯 개만 주시라요. 여기도 순대 하나 먹읍시다. 순대 하나 먹어도 돼요? 이거 순대 특이하다. 병천순대랑은 좀 다른데?
김소영: 더 드셔요. 북한 순대는 당면이 안 들어갔지요. 맛있게 드시고요. 맛있으면 또 오세요. 북한 순대는 너무 맛있어서 다들 말이 안 나온다고 하던데요?
그의 정성이 느껴졌는지 음식을 맛본 사람들마다 환호가 이어집니다.
시민: 이거 진짜 맛있다. 세상에서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어요. 만두피가 떡으로 되어 있어요.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한 탓에 잠시의 쉴 틈도 없었던 김소영 씨, 북한 음식을 남한 토박이들에게 만들어준 소감은 어떨까요? 행사가 끝난 뒤 전화로 다시 만나봤습니다.
김소영: 너무 맛있다고 막 두 번, 세 번씩 오셔서 드시고 또 드시는 걸 보고 ‘남북한은 정말 요리로 통할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대부분 순대도 녹두전도 잘 드셨는데 ‘떡만두’라는 건 좀 생소해 하시더라고요. 한국의 송편은 팥이나 콩을 넣는데 북한에선 쌀값보다 팥값이 더 비싸기 때문에 그걸 못 넣고 김치나 숙주 혹은 두부를 다져서 소를 넣어요. 그럼 사람들이 ‘북한은 뭐 그리 잘 살기에 만두 피를 쌀가루로 만들까’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겠는데요. 북한에서도 평소엔 잘 못 먹고요. 명절날에만 특별하게 해 먹는 떡, 떡만두는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말투에서부터 요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묻어나는 김소영 씨, 그의 직업은 역시나 요리학원 원장이었습니다. 2010년 탈북해 한국에 온 뒤 요리에 입문해 10년 넘게 자신이 가르친 제자만 해도 3천 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북한 요리를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라는 거였지요.
한국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
김소영: 네. 11년째 학원 운영을 하고 있는데요. 북한 요리를 가르쳐 드리는 게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요리할 수 있는 자격증 즉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복어 이렇게 5가지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가르쳐주는 학원입니다.
기자: 쉽게 말해서 한국에서 요리로 취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기본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요리법을 가르쳐 주시는 일인데요. 이게 북한 요리도 아니고 게다가 북한에선 회계사무원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 길을 걷게 되셨어요?
김소영: 북한에서는 요리와 전혀 다른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 왔을 때는 나이 50이 넘어서 북한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할 수 없었어요. 한국 정부에선 우리 탈북민에게 다양한 기술을 배우라고 학원비를 1인당 약 300만원, 2200여 달러 정도 지원해 줍니다. 그래서 그 지원 받은 돈을 가지고 제가 요리학원에 가서 배우면서 7개월 만에 5개의 자격증을 다 따게 되었습니다.
요리에 관심 많은 한국인들도 1년에 자격증 하나 따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요. 7개월만에 5개를 다 따셨다니 정말 대단하죠. 더구나 보통은 자격증을 따서 식당에 조리사로 취업을 하는데, 김소영 씨는 어떻게 바로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됐을까요?
김소영: 그때 같이 요리학원을 다니며 배웠던 한 친구가 자기는 학원을 설립하기 위해 자격증을 따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니 저를 만나 밥을 먹자고 그래요. 저를 좋게 봐 주셨나봐요. 학원을 설립하려 하는데 강사로 활동해줄 수 없겠냐고 하더라고요. 뜻밖이었어요. 탈북민을 이렇게 강사로 고용해준다는 것이 고마웠어요. 제 자식들도 “엄마가 그걸 하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강사로 2년 3개월을 일했죠. 그러다 보니 주변에 아는 지인이 “빈 건물이 있으니 학원을 직접 운영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주신 겁니다. 그래서 도전을 하게 됐습니다. 학원을 설립하려면 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사업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정말 어려운 일인데요. 감사하게도 탈북민들은 창업을 할 때 한국 통일부 산하의 남북하나재단에서 1%대의 저금리, 그러니까 싼 이자로 대출을 해줍니다. 건물 보증금 전액을 다 대출해 주는 제도가 있어요. 그래서 그 도움을 받아서 2014년 1월에 학원을 설립해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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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한국에 오신 지 4년만에 학원 원장님이 되신 거네요. 탈북민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신 것 같아요. 스스로도 자랑스러우셨죠?
김소영: 그럼요. 한국분들은 탈북민이 자신들을 상대로 이렇게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나봐요. 어느 날 한 수강생이 “우리가 어쩌다가 북한에서 온 분들에게 이렇게 자격증을 다 배우게 됐나, 이 탈북민들 정말 대단하다. 우리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라고 칭찬해 주셨는데 너무 기뻤어요. 그리고 또 도로에서나 공공장소에서나 “원장님!”하면서 수강생들이 저를 반가워 해줄 때, “이분은 탈북민 원장님”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해 줄 때, 그리고 그렇게 보낸 11년 동안 3천여 명의 제자를 두었다는 게 너무 뿌듯합니다. 그리고 제게 배운 분들이 요리 자격증을 취득해서 열심히 일하면서, 어디서 조리장도 하고 요리 실장도 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기쁩니다.
이렇게 자신의 자리를 잘 찾은 김소영 씨, 그러나 60대 중반인 지금의 나이에도 그녀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로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남북 통일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충청북도에 사는 1300여 명 탈북민들과 함께 협회를 만들고 봉사활동과 통일을 준비하는 다양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하는데요. 다음 시간에 자세한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청취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여기는 서울]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