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입니다. 안창규 기자 나와 있습니다.
당대회 1년 앞두고 벌써 시작한 자금 확보 경쟁
진행자 : 함경남도에서는 주민들에게 은행 저금을 강요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강요‘라는 표현대로 강제로 돈을 걷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각 세대마다 할당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정도면 또 다른 과제금 아니겠습니까?
안창규 기자 : 새로 등장한 과제이기도 하지만 과거부터 전국 각 지역에서 인민반 별로 분기마다 해오던 저금의 연장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내년 초 북한에서 당 제9차 대회가 열립니다.
북한에서 최고의 행사 중 하나가 노동당 대회입니다. 요즘 북한 곳곳에 ‘제9차 당대회를 빛나는 노력적 성과로 맞이하자‘는 구호가 나붙고 당대회를 맞아 보다 큰 성과를 달성하라는 당국의 독촉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느 지역, 기관, 공장을 막론하고 뭐든 성과를 내야 합니다. 당대회에 ‘충성의 선물‘을 바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일차적으로 20개의 지방 시, 군에 새 지방공업 공장이 건설되었는데 이를 제외하고도 북한 각 지방에 신발 공장, 교복 공장, 즉석 국수 공장 등 다양한 새로운 공장이 건설되었거나 건설 중입니다.
몇 년 전부터 북한은 각도, 시, 군별로 사회주의 경쟁을 붙여놓고 자체 노력에 의한 지방 발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김정은이 지방 간부들을 굉장히 닦달질하고 있는데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없으면 자리를 내놓으라는 겁니다.
결국 당대회를 맞아 성과를 내자면 도시 미화나 국토관리사업에서 뚜렷한 성과가 있거나, 멈춰 선 지 오래된 공장, 기업소를 되살리든가, 새 공장이 건설된 지역의 경우 김정은의 치적으로 인정되는 새 공장을 정상 운영해야 하는데 정작 중앙이 지방 발전에 필요한 자금이나 물자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지방 당국이 부족한 자금 충당을 위해 1분기 인민반 저금 과제를 몇 배 높여 하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각지에서 저금이 지방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선전도 이어졌습니다.
주민에게 저금액 ‘할당‘하고, 분기마다 강제로 걷는 방식
북한은 오래전부터 인민반을 통한 조직적 형식의 저금을 강요해 왔습니다. 매 분기마다 각 세대가 의무적으로 일정한 금액의 저금을 해야 하는데 여윳돈이 없는 가정이 많다 보니 그 액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2023년까지 북한 돈으로 최소 500~1,000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노동자 사무원 월급이 10배 정도 인상되었지요. 그런 만큼 저금 액수도 10배 인상돼 1만 원 수준이 돼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강요된 분기 저금 과제는 2~3만 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수십 배 높아진 것입니다.
큰 장사를 못해 하루 벌어 하루 겨우 살아가는 가정에는 2~3만원도 큰돈입니다. 그러니 북한 주민들 속에서 당국이 주는 건 없이 빼앗아만 간다는 불만이 터지고 있는 겁니다.
진행자 : 북한의 대표적인 ‘바보’ 중 하나가 ‘은행에 돈을 저금하는 사람‘이라는 얘기도 하지 않습니까? 1990년대 중반 이후 은행에 저금한 돈을 찾을 수 없자 나온 얘기인데요. 최근 저금소 활용 실태는 어떻습니까? 요즘 도시에는 현금인출기도 등장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안창규 기자 : 현재는 은행과 저금소가 나름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6년경 북한은 상업은행을 새로 내오고 전국에 지점을 세웠습니다. 경제 활성화에서 화폐 유통의 중요성을 뒤늦게 인식하고 과거 화폐 발행과 통화 정책, 화폐 결제와 유통 등을 관장하던 중앙은행의 업무 일부를 상업은행에 넘긴 겁니다.

북한 은행은 진화 중...다양한 은행 상품 등장, 월급은 현금직불카드
각 지방에 설치된 상업은행과 각 저금소가 수년 전부터 주민들에게 자금 유치, 즉 저금을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저금의 형태도 다양하다고 하는데 임의의 순간에 돈을 넣고 찾을 수 있는 일반 저금, 일정한 금액을 계속 넣고 기한이 되면 찾을 수 있는 정기 저금, 분기마다 진행하는 추첨에 당첨되는 경우 상금을 받을 수 있는 추첨제 저금 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반 저금의 예금 금리는 최고 4.5%로 알려졌습니다.
또 맡긴 돈을 찾은 것도 과거보다는 용이하다고 합니다. 다만 인구가 적거나 장사가 활발하지 않은 시골 지역은 아직도 은행에서 돈 찾기 어렵다는 말이 나옵니다.
중앙은행이 발급한 진성카드를 비롯한 현금 직불 카드 사용을 적극 독려하는 것도 이색적입니다. 아직 카드 결제가 가능하지 못한 곳이 많아 전국에 실시된 건 아니지만 월급을 카드에 넣어 지급한 사실은 이미 보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카드나 계좌를 통해 다른 지역에 돈을 송금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문제는 수수료가 3%로 한국에 비하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은 거래 대금을 은행보다는 개인을 통해 하는 걸 더 선호합니다.
북한에서는 돈을 자주, 많이 사용하거나 돈거래가 많아도 안전부나 검찰소, 보위부 등의 시야에 듭니다. 은행을 통해 큰 금액을 거래하면 이력이 남기 때문에 가택수색이나 몰수가 일상인 북한에서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자산을 빼앗기거나 몰수당하는 등 만약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 은행 사용을 꺼리는 겁니다.
관련기사
진행자 : 안 기자도 언급했지만 요즘은 월급도 카드로 지급하고 개인 간 비법적인 송금도 차단하고 있습니다. 또 외화 사용을 단속하고 환전도 공식환전소 등을 이용하도록 하면서 시중의 돈을 중앙에 끌어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은행에 저금을 강제하는 것도 그런 명목으로 볼 수 있을까요?
목표는 국영 경제 몸집 키우기
안창규 기자 : 그렇습니다. 북한이 주민들에게 저금을 강요하는 것이나 카드 사용을 독려하는 것은 다 화폐 유통을 국가가 장악함과 동시에 필요에 따라 국가가 사용할 자금을 확보하려는 의도입니다.
북한에서 기업 간 거래는 거의 100% 은행을 통해 진행되므로 국가가 통제할 수 있지만 개인 간 거래는 그렇지 못합니다. 앞에서 설명 드렸지만 당국의 통제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높은 수수료를 내더라도 은행이 아닌 개인 송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젠가는 북한 국영 경제가 시장 경제를 능가하겠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결과 북한에서 은행과 같은 공개된 합법이 아니라 시장이나 개인 간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돈거래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화폐 개혁이나 교환을 통해 새 화폐를 발행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돈이 개인 수중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은행이 아니라 장롱에 현금을 쌓아두거나 외화로 환전해 보관하기 때문인데 이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북한의 딜레마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카드 사용, 전자 송금, 휴대전화를 통한 전자결제를 도입하는 등 북한이 필요한 준비를 하나둘 하는 중이라 봅니다.
“돈은 감추고, 신뢰는 없다”
진행자 : 화폐가 유통이 돼야 경제가 돌아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은행의 역할이 중요합니다만 북한에는 선결돼야 하는 과제가 많아 보입니다.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할 부분은 뭘까요?
안창규 기자 : 가장 필요한 건 가격의 일원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북한에는 국가가격제정위원회가 정해주는 국정 가격과 여러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동되는 시장 가격 2가지가 존재합니다. 외화도 마찬가지로 국정 환율과 시장 환율이 다릅니다. 30년 넘게 장기간 식량과 각종 필수품 부족이 심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겁니다.
일반 주민은 시장 가격으로 식량이나 물품을 구입하지만 권력을 가진 간부나 일부 계층은 물품을 시장 가격보다 대폭 낮은 국정 가격에 구입합니다. 이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현재 북한 노동자가 5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고 하면 쌀 5kg 좀 넘게 살 수 있는데 이 돈으로는 한 달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직장을 다녀 월급을 받는 주업보다 장사나 개인 돈벌이로 돈을 버는 부업이 더 중요해지는 겁니다.
노동자, 사무원 월급이 낮은 것도 다 국정 가격을 기준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이중 가격이 없어진다면 하나의 혁명이 될 겁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북한도 이중 가격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북한이 과거의 식량 배급소 대신하는 식량판매소를 통해 통일된 식량 가격을 제정하고 있는 것을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쌀, 강냉이, 밀 등 식량이 충분히 생산되지 않으면 이 시도 역시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주민들이 원하는 식량, 식료품을 비롯한 각종 상품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합니다. 북한은 상품이 부족합니다. 특히 기름(식용유), 사탕가루(설탕), 맛내기(미원) 같은 식료품과 휘발유 등 외국 수입에 의존하는 물품의 경우 가격이 매우 높습니다.
또 돈을 많이 벌거나, 돈을 흔하게 쓰는 것에 대한 당국의 통제나 단속이 없어져야 합니다. 북한에는 남보다 잘 살거나 돈이 많으면 당국의 시야에 들어 감시를 받나 조사를 받게 됩니다. 오죽하면 잘 사는 집들이 먹다 남은 고깃국이나 음식물을 굶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남이 못 보는 밤에 몰래 버렸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이 외에도 주민들의 믿음을 잃은 은행 신뢰를 회복하는 문제를 비롯해 북한이 해결해야 할 정책적 행정적 문제가 많을 겁니다. 어쨌든 걸음마를 뗀 지 10년이 되어오는 북한 상업은행이 각 지방에서 잘 정착해 경제난 이전처럼 누구나 여윳돈이 있는 경우 마음 놓고 저금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진행자 : 또 서민들도 저금할 만한 여윳돈이 생기는 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자, 다들 바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북한은] 안창규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안 기자, 고맙습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에디터 :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