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텅 빈 공장에 출근한 북한 노동자의 하루

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진행자: 김정은 총비서가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성과를 자랑하고 있는 지방공업공장에 대해 지방의 주민들은 불만이 많은 모양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자세한 소식 문성휘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안녕하세요?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양강도 주민들이 특히 얼마 전 준공을 마친 김형직군 지방공업공장에 실망이 크다고 하는데요. 문 기자, 김형직군에는 어떤 지방공업공장들이 들어선 겁니까?

빈 공장들 놔두고 새로 짓는 지방공업공장에 주민들 불만

문성휘 기자: 북한이 김형직군에 건설했다는 지방공업공장은 식료공장과 옷공장, 일용품공장이 전부입니다. 이건 북한이 지방 시, 군들에 건설하고 있다는 지방공업공장은 어디나 마찬가지입니다. 식료공장과 옷공장, 일용품공장, 여기에 종이공장 하나가 더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김형직군은 풍부한 산림자원이 있음에도 자금 사정으로 종이공장은 건설하지 못했습니다.

애초 김정은이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하겠다고 할 때 양강도 당국이 올린 설계는 휘황찬란했습니다. 종이공장과 기념품공장, 육류공장을 비롯해 1980년대 수준의 지방공업공장들을 설계했는데요. 하지만 자금 사정 때문에 결론적으로 식료공장과 일용품공장, 옷공장과 종이공장이 전부였습니다. 김형직군 같은 경우엔 자금 사정으로 종이공장 건설은 허용되지 않았는데요.

북한이 지방의 시, 군에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하는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첫째는 지방의 시, 군에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 북한의 지방 시, 군에는 많은 공장들이 있었습니다. 식료공장과 피복공장, 종이공장과 유리공장, 그리고 철제일용, 목재일용, 수지일용품 공장이 있었고, 또 건재공장과 육류가공공장, 버섯공장과 농기구공장, 토기공장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공장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 모두 폐허가 되다 보니 그곳에서 일하던 시, 군의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없어진 겁니다. 공장들이 폐허가 되었다고 하니 이러한 공장들이 모두 없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 공장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기계설비, 생산시설은 하나도 남지 않고 빈 건물만 남아 있는 거죠. 노동자들은 아무런 생산시설도 없는 빈 건물로 매일 출근을 합니다.

중국 단둥에서 찍은 신의주의 한 공장.
중국 단둥에서 찍은 신의주의 한 공장. 중국 단둥에서 찍은 신의주의 한 공장. (Reuters)

빈 공장에 출근한 북한 노동자들의 하루

진행자: 어떻게든 돈벌이를 해야 할 텐데, 할 일이 없는 공장에 출근한 노동자들은 하루종일 뭘 합니까?

문성휘 기자: 생산시설이 없으니 노동자들은 1년 내내 사회적인 동원으로 세월을 보내는 거죠. 농촌동원, 도로보수, 철도지원, 원림조성, 허구한 날 이런 일에 동원되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은 공장, 기업소에서 생산물이 없으면 월급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동원은 생산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월급이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거기다 배급도 주지 않으니 시, 군의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꼬리 없는 소나 말인 겁니다.

보통 한 개 시, 군의 인구는 적게는 3만여 명, 많게는 10만명 이상입니다. 시, 군에는 우선 시 소재지인 시와 군 소재지인 읍이 있습니다. 시와 읍의 아래엔 리와 노동자구가 있는데 리에는 농장이 있습니다. 농민들이 거주하고 있고요. 노동자구는 보통 광산이나 임산, 수산협동조합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엔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군 인구 10만명이라고 할 때 노동자가 5만여 명, 농민이 5만여 명,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농민들의 경우 농사를 지어야 하니까 1년내내 일거리가 있는데, 노동자들의 경우는 공장, 기업소들이 생산을 못하니까 일거리가 없는 겁니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것이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하는 첫 번째 목적이고요.

두 번째는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해 시, 군 노동자들, 농민들의 주머니도 털어내겠다는 의도입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지방 시, 군 주민들은 집에서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생필품과 식료품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과 개인 거래로 돈이 회전할 뿐, 국가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구조를 허물고 지방 주민들의 돈을 국가가 합법적으로 회수하겠다는 것이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하는 두 번째 목적입니다.

하지만 김형직군과 같이 지방공업공장이라고 건설했다는 게 겨우 식료공장과 일용품공장, 옷공장입니다. 이걸로 지방 시, 군 주민들의 생활을 도시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고 지방 주민들의 돈도 회수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겨우 건설해 놓았다는 지방공업공장도 가동을 못하고 있으니까 주민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는 겁니다.

평양 평천구역 평양어린이식식료품 공장 근로자들이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평양 평천구역 평양어린이식식료품 공장 근로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북한의 뿌리 깊은 탁상행정

진행자: 건설해 놓은 지방공업공장이 가동을 못하니까 주민들도 속상하겠죠. 이런 지방공업공장을 두고 주민들 속에서는 ‘쓸데없는 돈 낭비’라는 비난이 높다고 합니다. 과거부터 습관화된 중앙 간부들의 사업 방식이 이런 돈 낭비를 낳고 있다고 하는데, 과거에는 어떤 사례가 있었습니까?

문성휘 기자: 그러니까 1980년대, 김일성 통치 후기부터 북한의 간부들은 탁상행정에 매몰돼 있었습니다. 북한 당국도 1980년대 형식주의, 요령주의, 탁상행정을 뿌리 뽑자고 요란하게 떠들었지만 결국 탁상행정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탁상행정은 한마디로 현실을 외면한 정책, 현지 사정은 알아보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 머리속으로 그려낸 정책입니다. 이런 탁상행정을 놓고 북한의 주민들은 “자기가 만든 덫에 자기가 빠진 격”이라고 말을 합니다. 결국 김일성이 만든 덫에 김일성이 빠져 들었다는 것이 탁상행정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분석인데요.

집권 초기 김일성은 농민들 속에 들어가 땅도 만져보고, 노동자들의 식당도 돌아보면서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당과 수령의 권위를 지킨다는 구실로 노동자, 농민들을 멀리했습니다. 또 “당과 수령을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를 스스로 만들어 내고, 당과 수령의 안전을 지킨다는 구실 아래 노동자, 농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완전히 차단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10대 전망목표’와 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한 계획들을 내놓고 집행하다 보니 중앙의 간부들도 책상머리에 앉아 온갖 방법들을 구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0년대 말에 북한의 모든 시, 군들에 건설되었다가 실패한 남새 온실이 그 대표적 사례이고요. 평양의 창광원을 모방한 대중 목욕탕을 지방에 건설하는 정책도 결국 수많은 돈만 날렸습니다. 김정일 시대 양어장 건설과 토끼목장 건설도 그랬고, 김정은 시대 남새온실과 교통공원, 율동영화관과 청년야외극장 건설을 비롯해 쓸 데 없는 돈 낭비를 일일이 꼽자면 끝도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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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6개 군 지방공업공장 건설 착공식
북한, 6개 군 지방공업공장 건설 착공식 북한, 6개 군 지방공업공장 건설 착공식에서 건설 장비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AP)

지방공업공장 건설 때문에 식량난 악화?

진행자: 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지금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지방공업공장 건설도 결국엔 쓸데없는 돈 낭비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군요. 또 하나 지금 벌어진 문제는 지방공업공장의 원료기지를 만든다며 농경지를 침해하고 있다는 건데, 농경지가 줄게 되면 식량난 악화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죠.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있는 건가요?

문성휘 기자: 지금 북한은 지방공업공장들에 원료와 자재를 대준다며 지방의 가는 곳마다 수많은 농경지를 떼어내 원료기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농경지가 줄어 앞으로 식량난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은데요. 북한 당국도 나름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른바 새 땅을 찾아 농경지를 늘린다는 것이 그러한 방법 중에 하나인데요. 문제는 땅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새 땅이 있었으면 이미 농경지를 만들고 남았겠죠. 결국 없는 땅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 북한 당국의 ‘새 땅 찾기’인데요. 마른 수건 비틀어 물을 짜내는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원료기지 조성으로 식량난이 가속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왜냐면 원료기지 역시 먹을 거리를 심는 밭이고, 공예림을 만드는 산림조성이기 때문입니다. 밭에는 메주콩이나 해바라기와 같은 기름작물을 심고, 산에는 종이원료와 산열매를 딸 수 있는 나무를 심어 지방공업공장들에 원료로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메주콩이나 해바라기, 산열매 모두 식량을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식량난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건데요.

하지만 국가적인 식량생산량이 감소하리라는 것은 북한의 간부들 조차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향은 앞으로 더 지켜 보아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방 주민들이 현실적으로 바라는 삶

진행자: 도시와 농촌의 차이를 줄이고, 농촌 주민들의 생활을 도시 부럽지 않게 만들기 위해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한다, 이것이 북한 당국의 선전인데요. 하지만 농촌 주민들이 오히려 지방공업공장 건설을 반대한다면 도시보다 현저히 낙후된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는 걸까요, 지방 주민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요?

문성휘 기자: 지방의 주민들은 그동안 집에서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생필품을 만들고, 식료품을 만들어 생존을 해 왔습니다. 지방의 두부장사나 술장사, 당과류 장사가 그러한 사례고요. 주민들은 집에서 가구를 만들고, 가전제품을 수리하며 돈을 벌고, 생존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방공업공장들이 들어서 생산을 하게 되면 지방 주민들의 수공업적인 장사거리가 없어지게 되고, 결국 생존까지 위협을 받게 된다는 거죠. 지방공업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 개인들이 수공업적으로 만드는 상품보다 질이 한창 떨어진다는 결함도 있고요. 더욱이 공장을 건설한다, 원료기지를 만든다, 너무도 주민들을 들볶으니까, ‘그래 봤자 너희들이 만드는 질 나쁜 제품 누가 사겠냐? 제발 들볶지 말고 좀 편하게 살자’ 이것이 지방 주민들의 한결 같은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진행자: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