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보릿고개에 시작된 모내기 전투...“주민들 굶으며 일해”

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진행자: 모내기 전투가 시작되면 전국에서 농촌 지원에 총동원이 되죠. 그게 바로 지금입니다. 그런데 이때 가장 바쁠 농민들이 몰래 장사에 나선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소식 손혜민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한창 바쁜 모내기 때에 몰래 빠져나가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 장마당 운영도 축소될 텐데 어디에서 어떻게 장사를 한다는 건가요?

보릿고개에 시작된 모내기 전투, 농민 생계 위협

손혜민 기자: 지난 주 평안남도 주민과 전화가 연결되어 통화하게 되었는데요. 5월 중순부터 모내기 전투가 시작되면서 장마당 개장이 단축되었다고 속상해 하더라고요. 지역주민들을 모내기 전투에 새벽부터 강제로 동원할 목적으로 북한 당국이 아침부터 운영되던 장마당 개장을 오후 2시로 늦춘 겁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면서 배를 가장 곯는 계절이 5월이라는 겁니다. 지금은 보릿고개와 맞물리는 시기여서 주민들의 생계가 더 심각한 것입니다.

도시보다 농촌에 절량 세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결혼하면 가정 주부로 눌러 앉아 장사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도시 여성과 달리 농촌 여성들은 결혼해도 계속 농장 정노력으로 일해야 하므로 장사할 기회가 드뭅니다. 특히 농촌에는 종합시장 자체가 없죠. 이 때문에 농촌 여성들은 열흘에 한번 휴식하는 날에야 도시에 있는 종합시장으로 이동해 과일이나 채소 등을 팔면서 푼돈을 벌고 있는데요. 이마저도 5월에는 통제되기 때문에 아침 밥도 못 먹고 논판에서 일을 하다 맥이 없어 앉아 있는 모습이 나타나는 겁니다.

무엇보다 농촌에서 살고 있는 부모들이 가슴 아픈 것은 어린 자녀가 손가락 빨면서 굶는 모습을 보는 건데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은 일부 농민들 속에서는 새벽 시간을 이용해 장사에 나서고 있는데요. 텃밭에서 한창 자라는 시금치와 풋마늘, 들에서 뜯어온 나물 등을 머리에 이고 도시 장마당으로 걸어가는 겁니다. 도시에도 물론 장마당 개장은 통제되지만 새벽에는 장마당 주변에 농촌에서 나오는 채소와 가축 등을 넘겨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넘겨 받은 채소와 가축 등은 오후 2시 이후 개장하는 장마당에서 두 배로 팔리는 겁니다.

사진은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 모습.
사진은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 모습. (연합)

장사하러 가는 농민 단속, 처벌 수위는?

진행자: 모내기 전투 기간에 장사하러 가는 농민들을 단속하기 위해 도시로 가는 골목을 안전원이 지키고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였군요. 단속되면 처벌 수위는 어떻게 됩니까?

손혜민 기자: 농민들은 두 시간 정도 걸어 도시 장마당으로 나갑니다. 북한의 시, 군은 공업과 농업을 연계하는 경제단위로 규정되어 있어 도시 주변에 농촌이 배치되어 농촌과 도시 간 거리는 멀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농민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 도시 장마당으로 이동해 장사 물건을 넘기고 돌아와 오전 9시~10시 농촌에 출근하는 건데요. 이들의 동향 자료가 리 당위원회에 보고되면서 리 당에서는 모내기 전투 기간 장사하는 농민들을 단속해 사상 투쟁하도록 당 세포조직에 지시했다는 것이죠.

이에 작업반 당조직에서는 리 안전부 간부와 함께 이른 새벽부터 농장 마을에서 도시로 나가는 길목에 서서 오가는 농민들을 단속하는 건데요. 평안남도 은산군에서 두 명의 농민이 장사 보따리를 이고 걸어가다가 길목에서 단속되었고, 그날 오전 농민들이 모인 논 현장에서 자아비판을 했다고 합니다. 단속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그리 높은 건 아니라는 거겠죠. 그러다 보니 이를 지켜보던 농민들 속에서는 열심히 일해도 자식들에게 밥 한 그릇 해주지 못하는데, 모내기 전투에 열심히 참가해야 무슨 소용이 있냐며 단속을 피해, 혹은 단속에 걸리더라도 생계형 장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현지 주민들은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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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
모내기를 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 2019년 5월, 평안남도 삼봉협동농장의 농민들이 논에 모내기를 하고 있다. (AP)

모내기 전투 동원된 인력, 점심 굶으며 일해

진행자: 모내기 전투가 시작되면 농민뿐 아니라 동원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끼니를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모내기 때 당국에서 제공해주는 게 아예 없습니까?

손혜민 기자: 네. 아예 없어서 문제입니다. 공장 노동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 농장에 파견되어 모내기나 논두렁 만들기 등 작업을 해야 하고, 가정 주부들은 주로 오전에만 모판 뜨기 등에 동원되지만, 식사 한 끼 지원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공장 노동자들 속에서는 점심 도시락을 싸서 농촌에서 종일 일해야 하는데, 쌀이 없어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노동자들은 점심을 굶고 농사 일에 동원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일부 농장에서는 모내기가 끝나면, 모내기에 동원되었던 공장이나 여맹조직에 옥수수 20kg 정도 공급하기도 한다고 하지만 지금 대부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더 심각한 건 10대 학생들인데요. 10대 학생들은 30일~45일 간 당국이 지정한 농장에서 숙식하며 모내기 전투에 동원됩니다. 1990년대 식량배급제가 무너지기 이전에는 모내기에 동원된 학생들의 식량은 해당 농장에서 공급했지만, 이마저 이제는 옛말이 되었죠. 지금은 학생들이 농촌지원 나가는 날짜를 계산해 자기 식량을 배낭에 지고 나가야 합니다. 가난한 집 자녀들은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데 1개월 식량이 어디 있겠나요. 반면 잘사는 집 자녀들은 학교에 돈을 내고 농촌 지원에 나가지 않는데, 이렇게 바치는 일부 자금으로 가난한 학생들의 식량과 부식물을 마련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2013년 6월, 황해남도 신천군의 한 농장 근처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 여성이 아이와 함께 쉬고 있다.
2013년 6월, 황해남도 신천군의 한 농장 근처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 여성이 아이와 함께 쉬고 있다. 2013년 6월, 황해남도 신천군의 한 농장 근처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 여성이 아이와 함께 쉬고 있다. (AP)

올해 모내기 전투는 성공적?

진행자: 안 그래도 힘쓰는 일이라 힘들 텐데 끼니 걱정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네요. 더구나 올해는 강수량이 부족해 모내기도 좀 늦어졌다고 하는데, 올해 북한의 모내기 전투, 당국이 원하는 때에 잘 마칠 수 있을까요?

손혜민 기자: 최근 북한 농장에서 변화된 게 있다면 기계화가 진척된 것입니다. 당국이 농업 전선을 주타격 방향으로 지정한 2020년 이후 농업 부문에 주력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숙천군과 연안군 등 곡창지대 농장에는 모내기 기계와 연료가 공급되고, 특히 경운기가 도입되어 좁은 논길로도 오가며 모를 운반해 모내기는 늦어도 6월 초 끝낼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산골농장에는 여전히 원시적인 노동으로 농사를 하고 있어 모내기는 6월 하순쯤에나 마무리가 예견된다고 하는데요. 북한이 지금도 제9차 당대회를 승리자의 대회로 맞이하자며 모내기 전투를 제 기간에 끝내 당이 제시한 알곡생산목표를 강조하고 있지만, 지역적 차이는 불가피해 봅니다.

진행자: 전투라는 명목으로 고된 일을 시키려면 끼니 정도는 해결해줘야 농민들이 이탈할 생각도 않고, 당국이 원하는 때에 모내기도 잘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