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진행자: 김정은 총비서가 ‘지방발전 20X10 정책’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과시하고 있는 가운데, 양강도에서는 신발공장이 제때 운영이 되지 않아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 알아보죠. 문성휘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35년째 제 날짜 못 지키는 북한의 교복 공급
진행자: 북한 당국이 4월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을 맞으며 소학교부터 초급중학교 학생들에게 교복을 공급했다고 하죠. 그런데 양강도는 4월 15일에 공급해야 할 학생 교복을 5월말이 되어서야 했다고 합니다. 문 기자, 양강도에서 학생 교복 공급이 늦어진 이유는 뭡니까?
문성휘 기자: 1990년대 이후부터 북한의 학생 교복 공급은 늘 제 기일을 맞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금 사정 때문인데요. 북한의 학생 교복 공급은 김일성의 후계자로 김정일이 선출되던 198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교복을 공급했는데요. 때문에 당시에는 ‘교복 공급’이라고 하지 않고, ‘교복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이 마련해준 ‘사랑의 선물’이라고 했죠. 그러다가 1990년대 초 동유럽사회주의가 붕괴되고 북한의 경제도 침체기에 들어서게 됩니다.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국가가 정한 가격, 국정가격이라는 것이 없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북한은 학생들의 교복을 무상이 아닌, 국정가격으로 팔았습니다. 상점엔 물건이 없고 장마당이 번성하던 시기여서 학생들에게 특별히 국정가격으로 판매한 교복은 장마당보다 서너 배 싼 가격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학생 교복은 ‘선물’이 아닌 ‘공급’으로 불렸습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겪던 시절엔 학생 교복도 공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고난의 행군’이 한참 지난 2004년부터 4년에 한번으로 학생 교복 공급을 재개했는데요. 이런 상태를 유지하다가 2023년부터 김정은의 지시로 학생 교복 공급을 4년에 한번이 아닌 3년에 한번으로 바꾸었습니다. 또 학생들의 교복을 한꺼번에 다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올해 탁아소와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교복을 공급하면 다음해엔 소학교(초등학교)와 초급중학교(중학교), 그 다음해엔 고급중학교(고등학교)와 대학생, 이렇게 3년동안 바꾸어 가면서 교복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2023년 공급된 교복 재생산 지시
진행자: 그럼 올해는 누가 교복을 공급 받을 차례였나요?
문성휘 기자: 북한은 이미 2023년과 24년에 탁아소 유치원생, 소학교와 초급중학교 학생들에게 교복을 공급했기 때문에 올해는 고급중학교와 대학생들에게 교복을 공급할 차례였습니다. 그런데 2023년에 학생들에게 공급한 교복의 질이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수입한 면으로 만든 교복이었는데 천이 옅어서 장난이 심한 남학생들은 한 달도 못돼 무릎에 구멍이 나고, 찢어져 버렸다는 거죠. 이런 사실을 보고받은 김정은이 크게 화를 내며 소학교와 초급중학교 학생들에게 수입산 면이 아닌 자체로 생산한 데트론(테토론) 천으로 다시 교복을 만들어 공급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덕분에 올해 소학교와 초급중학교 학생들은 두텁고 질긴 데트론 천으로 만든 교복을 새로 공급받았다고 하는데요.
도당은 모든 학생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소학교와 초급중학교 학생들에게만 교복을 주는 것이어서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을 맞출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양강도의 경우 전기가 제대로 오지 않는 데다 교복 재료인 데트론 천이 제때에 도착하지 않아 교복 생산이 많이 늦어졌다고 하고요. 생산이 늦어진 관계로 4월 15일을 훌쩍 넘긴 5월말에야 겨우 소학교와 초급중학교 학생들에게 교복 상의와 하의를 공급했다고 합니다. 단, 신발은 아직도 공급하지 못한 상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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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생산 차질, 원인은 수입물자 돌려막기?
진행자: 기사를 보면 중국으로부터 자재를 수입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신발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고 하는데, 자금 마련에 어려움이 생긴 이유가 뭘까요?
문성휘 기자: 네, 무역기관, 그러니까 신발을 만들 원료와 자재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해 들일 과제를 맡은 양강도 무역관리국이 ‘수입 물자 돌려 막기’를 하다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신발 생산에 필요한 생고무와 천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할 과제는 지난해 10월, 양강도 무역관리국이 떠안고 자금까지 받았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이곳 간부들이 생고무와 천을 수입할 자금을 몰래 빼돌려 약초를 구입했다는 겁니다. 양강도의 경우 10월이면 가을걷이가 끝나고 주민들이 산에서 약초를 거두어 들이는 시기라고 하는데요. 신발 재료를 수입할 자금으로 양강도 무역관리국의 간부들은 약초를 구입했다는 거죠. 약초를 중국에 수출해 이익금을 챙기려던 속셈이었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중국의 무역업자들이 약초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약초 값이 많이 내려 양강도 무역관리국이 부르는 값으로는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구실이었다는 건데요. 이러한 사태가 2월까지 계속되다 보니 신발 생산에 필요한 자재를 수입하지 못했다는 거죠.
급기야 사태를 파악한 양강도당이 자재 수입에 필요한 자금을 다시 대주고 나서야 신발 생산에 필요한 생고무와 천을 3월 말에 중국으로부터 들여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재 수입이 늦어지다 보니 당연히 신발 생산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신발 공장 변압기가 불에 타버린 이유
진행자: 그런데 이런 때 하필 신발 공장의 변압기가 불에 타 아직까지 신발 공급을 못하고 있다는 건데요. 과부하라도 걸린 겁니까?
문성휘 기자: 혜산신발공장은 1980년대 초에 준공한 공장입니다. 생산설비들이 상당히 낡았고요. 북한은 전기가 부족하다 보니 일정한 지역을 번갈아 가면서 전기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혜산시 성후동에 전기를 공급했다면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는 탑성동에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인데요. 올해 3월부터 혜산학생옷공장과 혜산신발공장을 비롯해 학생 교복 생산에 필요한 공장들엔 정상적인 전기 공급을 했다고 합니다. 혜산시 송봉동에 위치한 신발공장의 옆에는 양강도 영농물자수송대와 시 버스사업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농물자수송대와 버스사업소는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다 보니 신발공장의 간부들과 짜고 몰래 도둑전기를 썼다는 거죠.
영농물자수송대와 버스사업소가 신발공장의 변압기에 불법적으로 전기선을 연결해 도둑전기를 썼다는 건데요. 변압기에 과부하가 걸리다 보니 결국 불이 나 버렸다는 거죠. 그때가 4월 7일로 김일성의 생일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양강도당 책임비서가 급히 현장을 방문하고 ‘한주일 안에 수리를 끝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변압기에 들어가는 구리선과 기름을 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다 보니 그때로부터 거의 40일이나 지난 5월 20일이 돼서야 수리를 마쳤다는 거죠. 5월 20일부터 공장을 부분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는데 양강도 현지 소식통들에 따르면 일단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6월 10일 전으로 학생 신발 생산을 마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학생 신발 공급은 6월 10일이 지나야 마칠 수 있고, 따라서 양강도 당국이 학생 교복 공급을 마쳤다고 중앙에 보고할 수 있는 시기 또한 6월 10일이 지나야 한다는 거죠.
간부 처벌한다 해도 교복 공급 빨라지지 않아...
진행자: 그런 속사정이 있었군요. 어쨌든 그래서 이번에 양강도 신발 공장은 결국 책임자 등 관련된 간부들이 처벌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간부들의 처벌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문성휘 기자: 양강도 당국은 5월 31일 도당 회의실에서 도급 기관장, 초급당비서들이 참가한 가운데 학생 교복 생산 총화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 회의에서 학생 신발 생산이 늦어진 문제를 심각하게 취급했고, 생산이 늦어진 책임을 물어 도 무역관리국과 혜산신발공장 초급당비서에게 각각 엄중경고 처벌을 내렸고, 도 무역관리국장, 혜산신발공장 지배인에게는 6개월의 무보수 처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또 불법적으로 전기를 나눠 쓴 책임을 물어 혜산신발공장 기사장은 도당에서 사상검토를 받고 있다고 하고요. 문제는 이런 처벌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북한은 학생 교복 공급과 관련해 옷 설계부터 옷감의 재질에 이르기까지 김정은이 세심하게 보살피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총비서는 학생 교복 생산에 필요한 천조차 제 시간에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 교복 생산에 필요한 천은 평양에 있는 김정숙방직공장과 평안북도 피현방직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천 생산을 제때에 못해 전반적인 학생 교복 공급이 늦어지고 있다는 건데요. 간부 몇 명의 처벌로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거죠.
생산구조부터 공급체계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반을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데 사회주의 생산체계를 고집하는 북한에선 해결의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는 올해도, 내년도, 해마다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진행자: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