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장이 크게 선 지난 1일에도 북한 장마당이 시끌시끌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지금 북한에서 꼭 사야 할 걸 꼽는다면 그건 바로 새끼 돼지라고 합니다. 맞습니까?
손혜민 기자: 맞습니다. 3월에 들어서면 북한 장마당은 기존과 또 다른 풍경인데요. 겨울에 텅텅 비어있던 가축 매대에 새끼 돼지부터 새끼 토끼, 새끼 오리, 병아리, 꼬리를 흔들며 바라보는 강아지들까지 귀여운 집짐승 새끼들이 손님을 부릅니다. 이 중에서도 새끼 돼지 숫자가 가장 많은데요. 그렇지만 오전 10시 이전에 전부 판매되는 것도 새끼 돼지입니다.
그만큼 새끼 돼지 수요가 가장 많은 달이 3월이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식량난으로 연결됩니다. 북한 주민들이 1년 식량을 해결할 수 있는 가정 부업 수단이 돼지 축산인데, 돼지 축산을 시작하는 시기가 3월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새끼 돼지는 어떤 사료를 먹느냐에 따라 크는 속도가 차이 나지만, 보통 7개월~9개월이면 70~80kg 정도 어미 돼지로 큽니다. 3월부터 새끼 돼지를 기르기 시작하면 9월~10월이면 어미 돼지가 되어 도축 시장에 팔 수 있다는 거죠.
새끼 돼지의 죽음, 부모 죽음보다 더 슬퍼
북한에서 9월에는 옥수수 수확이 끝나고 10월에는 벼가을이 시작됩니다. 식량 가격이 내려가는 계절인 거죠. 또 북한의 결혼식은 9~10월이 가장 많습니다. 결혼식을 식당에서 하든 집에서 하든 돼지고기 수요가 늘어나는 건데요. 그러니 돼지고기 가격이 오르는 건 불가피합니다. 결국 돼지를 기른 주민은 비싸게 돼지를 팔고, 그 돈으로 가족의 식량을 싸게 사들일 수 있는 겁니다.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이 흐름은 비교적 유지됩니다.
물론 5월~6월에 새끼 돼지를 사들여 길러도 11월~12월에 판매할 수 있는데요. 이 시기도 식량 가격은 내려가고 고기 값은 오르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새끼 돼지를 사서 잣들이는, 그러니까 사료에 적응하는 3개월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새끼 돼지는 3개월이 지나야 자체 면역이 생기거든요. 이 기간은 아기 이유식 하듯 사료에 신경 쓰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많은 품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5~6월에 새끼 돼지를 사면 7~8월 장마에 직면하는 거죠. 새끼 돼지가 설사하기 시작하면 죽는 사례가 많습니다. 가격이 비싼 새끼 돼지가 덜컥 죽어버리면 솔직히 부모님 사망보다 더 슬퍼하는 주민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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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생계를 위해 지금 다들 새끼 돼지를 산다고 하셨는데, 도시 아파트 사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겠죠?
손혜민 기자: 한국에서는 먹고 사는 수준이 높으니 이해되지 않으실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 듯이 북한에서 돼지 기르기는 ‘가족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지방도시 아파트는 물론 평양 아파트에서도 돼지, 닭, 오리를 기르는 이유이죠. 제가 평양을 드나들며 장사할 때 보통강구역과 그곳에서 조금 벗어난 동대원구역, 선교구역에 많이 다녔거든요. 105층 류경호텔 앞이 보통강구역인데, 그곳 아파트에 가보니 베란다에서 암탉을 기르며 달걀을 받아 팔며 부식물을 해결하더라고요. 암탉이 소리 내면 단속되니까 주사기로 뜨거운 물을 암탉 목구멍에 쏴 울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던 기억이 납니다.
아파트 안방을 점령한 북한 돼지
동대원구역이나 선교구역에는 온돌식 구조의 아파트가 많아 베란다에서 돼지 기르는 평양 시민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니 지방도시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겠죠. 지금도 인상에 남는 것은 평안남도에서 고등학교 여교사가 살고 있는 신축 아파트 살림집에 갔었는데, 어미 돼지가 안방에서 사람과 같이 사는 겁니다. 보통 아파트 베란다나 부엌 마루 밑에서 돼지를 기르거든요. 그런데 그 여교사는 돼지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명줄이라며 추워서 감기 걸릴까 봐 방안에서 기르는 겁니다. 그것도 풀어놓은 채로요.
돼지가 아무데나 변을 보면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돼지도 훈련 주면 개나 고양이처럼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본다는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돼지를 어떻게 집안에 풀어 놓고 기르냐고 하니, 사람처럼 따뜻한 방에서 자고 먹으며 자유롭게 오가면 돼지가 빨리 큰다고 말하더라고요. 오죽 살기 힘들면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방 하나를 통째로 돼지우리로 사용하며 돼지를 기르는 주민은 아무것도 아닌 거죠.
진행자: 한국에서 고양이나 강아지를 집안에서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것과 같네요. 하지만 고양이나 강아지와 달리 돼지 배설량은 보통이 아닐 텐데, 아파트에서 이걸 다 어떻게 처리하는 거죠?
아파트에서 사는 돼지 분변 해결법
손혜민 기자: 단층집에서는 돼지우리가 마당이나 창고에 있어서 들어가 분변을 삽으로 청소하면 되는데, 아파트는 다르지 않나요. 하지만 살기 위해 지혜를 모으는 사람들의 창발성은 정말 놀랍습니다. ‘ㄱ’자 모양의 배관을 베란다나 화장실 창가로 뽑고, 그 배관이 아파트 밑에까지 닿는 곳에 커다란 망울을 파줍니다. 그러면 아파트 살림집에서 돼지가 자라는 우리에서부터 밑에 있는 망울로 배관을 통해 돼지 분변이 모입니다. 망울에 모인 분변은 퇴비 원료로 농촌에 팝니다.
진행자: 창의력을 동원해 아파트에서까지 키울 정도로 지금 새끼 돼지를 사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얘기네요. 그럼 장마당에서 파는 그 많은 새끼 돼지들은 다 어디에서 가져오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모돈을 전문하는 개인이 있는데요. 어미 암퇘지를 기르며 새끼 돼지를 생산하는 겁니다. 암퇘지가 새끼를 낳자면 수정이 선행되어야 하죠. 그래서 등장한 것이 돼지수정업입니다. 초기 등장한 돼지수정은 국영방역소가 사택을 돌면서 해주는 인공수정이 보편적이었어요. 즉, 내각 농업성 축산총국 산하 각 도, 시 수의방역소에 인공수정소가 있거든요. 이들도 식량배급이 중단되니 장마당 활동에 나선 겁니다. 가격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도시에서는 쌀 3kg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국영방역소에서 인공수정한 암퇘지가 새끼를 배지 않거나 새끼를 배어 낳는다고 해도 6~7마리 정도 밖에 낳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모돈업자의 입장에서 암퇘지가 새끼 돼지를 6~7마리 정도밖에 낳지 못하면 사료값도 못 건집니다. 그래서 다시 또 등장한 것이 돼지수정입니다. 우량종 수퇘지를 목장에서 사들여 암퇘지와 직접 교미시키면서 돈을 받는 직업을 돼지수정업자라고 합니다.
국영방역소와 달리 개인은 수정 가격을 후불제로 받았습니다. 암퇘지가 10마리 이상의 새끼 돼지를 낳지 않으면 돈을 안 받겠다는 것이었죠. 그만큼 자신이 있었던 건데요. 대신 후불제는 새끼 돼지 한 마리였습니다. 새끼 돼지 한 마리 가격은 장마당에서 30kg 정도의 쌀을 살 수 있는 가격입니다. 결국 국영방역소의 인공수정 가격보다 10배 이상 비쌌지만, 모돈을 전문하는 개인은 환영했습니다. 훨씬 그것이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안방 아랫목에서 해산하는 귀한 북한 돼지
진행자: 새끼 돼지 1마리에 쌀 30kg 정도 가격이라고 하셨는데, 새끼 돼지 생산량만 잘 확보가 된다면 모돈업자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꽤 크겠는데요.
손혜민 기자: 암퇘지 두 마리로 모돈업을 전문하는 여성을 봤는데, 3년 만에 집 한 채 사더라고요. 그만큼 수익이 짭짤한 건데요.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어미 암퇘지가 새끼를 배면, 낳을 때까지 모돈업자는 시집 간 딸이 임신하여 입덧을 할 때와 해산할 때 모든 것을 다 해주듯 똑같습니다. 새끼 돼지를 낳기 시작하면 밤새워 어미 돼지 옆에서 떠나지 않고 해산을 돕습니다.
새끼를 다 낳으면 어미 암퇘지가 뒤척이다가 새끼를 혹시 깔아 뭉갤 수 있으므로 새끼 돼지들을 전부 살림집 따뜻한 아랫목에 담요를 깔고 나란히 눕히죠. 그리고는 아기 키우듯 젖 먹을 시간이면 어미에게 가져가 젖을 먹이며 보살피는 기간이 30일 정도입니다. 이후 열흘 정도 사료를 조금씩 먹이기 시작하면 장마당에 팔 수 있는 새끼 돼지로 자랍니다. 북한에 돼지전염병이 돌지 않고 새끼 돼지들이 무탈하게 커서 북한 주민들의 삶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