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북 남성들, 양복 안에 빨간 니트 입는 이유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막바지 추위가 서서히 물러가면서 포근한 봄 느낌도 물씬 나는데요. 이맘때가 되면 북한의 장마당은 분위기가 싹 바뀐다고 합니다. 특히 옷매대가 봄옷들로 가득 차 알록달록 화사해지는 모양인데요. 먼저 남성들 옷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 지 살펴 보죠. 손 기자, 북한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남성들 옷차림은 대체로 비슷하고 색깔도 무채색이라 아무리 봄이라도 과연 뭐가 크게 달라졌을까 싶은데 어떻습니까?

북한 남성들 옷차림에도 봄이 올까?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가난한 북한이라도 봄철이 다가오면 달라지는 변화의 하나가 옷차림입니다. 며칠 전 전화로 연결된 평안남도 주민에게 봄철 남성들은 어떤 옷을 입냐고 물어봤습니다. 당연히 장군님 잠바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겁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장군님 잠바가 어떤 옷인지 설명드린다면요. 김정일이 즐겨 입던 카키색 잠바를 장군님 잠바라고 합니다. 이 잠바는 1980년대 김정일이 먼저 입고 중앙당 간부들에게 공급되면서 권력의 상징으로 부각되었죠. 남자라면 누구나 입고 싶어 했지만, 입지 못했습니다. 현품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1990년대 장마당이 나오면서 달라졌습니다. 옷 장사꾼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거든요. 북한 남성들이 그토록 선망하던 장군님 잠바를 그대로 모방해 장마당 상품으로 내놓았는데요. 결국 북한에는 카키색 잠바가 남성들의 단체복이 되었습니다. 이 잠바는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할 때까지 겨울에는 긴 팔, 여름에는 짧은 팔 모양으로 꽤 오랫동안 유행되었거든요. 하지만 2012년 김정은이 집권하며 한물갔는데요.

갑자기 없어진 건 아니고 여전히 장군님 잠바를 입는 남성도 있지만요. 도시에서는 장군님 잠바 대신 ‘쯔메리’로 불리는 군복 모양의 목까지 깃이 올라오는 양복을 입습니다. 김정일이 공개석상에서 잠바를 주로 입었다면, 김정은은 공개석상에서 쯔메리 양복을 입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김정은은 공장과 농촌을 현지에서 시찰할 때 V자 모양의 목이 파인 양복을 입었는데, 그 모습이 관영 매체로 방영되었습니다. 이 소식통은 그래서 봄철을 맞으며 장마당에 나오는 남성들의 옷은 김정은의 V자 모양의 옷과 비슷한 ‘제낀 양복’이 많다는 겁니다.

북한서 빨간 옷 입으면 정신 나간 남자? 이제는 옛말

제낀 양복은 검정색도 있고, 카키색, 차콜색, 지어는 연회색까지 있다고 합니다. 북한 남성들의 옷차림에 색깔의 다양성이 등장한 것은 주목할만 합니다. 지금까지 북한 의류 변화는 여성에게만 한정된 모습이었는데, 요즘에는 남성들이 제낀 양복을 입고 그 안에 빨간 니트 옷를 입는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남자가 빨간 옷을 입으면 정신 나간 남자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보편적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빨간색도 입고 파란색도 입는 남성들이 늘어나 북한 사회 변화가 실감납니다.

진행자: 북한 남자들이 빨간 색 옷을 안에 입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네요. 아무래도 외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까요?

손혜민 기자: 맞습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남자들의 옷차림이 밝지 않나요. 빨간 색도 입고 노란 색도 입고 정말 다양합니다. 한류 영향이 북한 남성들이 선호하는 색깔까지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북한과 인접한 중국의 문화도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을 수시로 오가고 있는 무역일꾼들이나 중국에서 몇 년 동안 외화벌이 노동자로 일을 하다 귀국한 남녀 노동자들이 다양한 옷을 입고 나오거나 가지고 나오는데, 그 속에 빨간 옷이 많다 보니 북한에 자연스레 퍼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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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그렇군요. 그럼 여자옷은 어떨까요? 아무래도 남자옷 보다는 여자옷이 유행이나 색상에 민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류 영향도 더 클 것 같고요. 지금 이 계절에 여성들 사이에 유행하는 옷이나 장신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손혜민 기자: 북한 남성들의 옷 색깔도 변화하니 미를 추구하는 여성들의 옷은 얼마나 다양할까요. 남성 옷에 비해 유행도 빠르게 변화합니다. 봄철을 맞으며 장마당 매대가 확 달라졌다면 남성의 옷보다 여성들의 옷 색깔이 다양한 게 주요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봄철 여성들이 입는 코트는 검정색보다는 차콜색, 회색, 파란색, 분홍색 등 봄기운에 어울리는 고운 색상이 많습니다. 특히 진달래 꽃처럼 연하고 밝은 분홍색 코트는 도시 여성들이 즐겨 찾는 봄 옷 중의 하나로 알려졌습니다.

의류 전시회에서 옷을 입어보고 있는 북한 여성
2023년 가을 의류 전시회에서에서 옷을 입어보고 있는 북한 여성 의류 전시회에서 옷을 입어보고 있는 북한 여성 (Jon Chol Jin/AP)

코트 모양은 반코트가 많고요. 코트를 입는 여성들의 연령은 장사하는 아줌마보다 도시에서 공장으로 출근하는 20~30대 미혼 여성들이 많습니다. 기혼 여성이라도 교사나 사무원은 직업 활동이 유지되므로 정장을 입고 그 위에 코트를 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트의 유행도 변화하고 있는데요. 2000년대 초까지 도시에서 유행하던 여성용 코트는 어깨에 주름이 잡힌 망또 모양이었습니다. 퍼진 모양의 망또 코트를 입으면 귀부인 같다는 인식이었거든요.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달라졌습니다.

진행자: 유행이 바뀌게 된 이유가 뭘까요?

북한 여성들, 허리띠 없인 못 살아

손혜민 기자: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물밀듯이 들어와 돈을 버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판(CD)을 빌려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시청했으니 보는 눈이 달라진 겁니다. 한국 여성들이 입는 코트는 퍼진 모양이 아니고 몸에 붙는 몸매 코트였거든요. 허리를 잘록하게 묶은 게 정말 고왔습니다. 이때부터 여성 코트는 물론, 동복과 바지까지 전부 몸에 착 붙는 몸매 동복과 몸매 바지로 유행이 바뀝니다.

의류가공업자들은 일부러 한국 드라마를 사서 보면서 여성들의 옷차림만 주시하며 옷 모양에서 옷 깃과 바늘 뜸까지 그대로 모방해 장마당에 내놓았습니다. 이때부터 북한 여성들 속에서는 단체복 개념이 사라졌습니다. 재미있는 말도 생겼는데요. ‘입은 거지는 얻어 먹어도 못 입은 거지는 못 얻어 먹는다’ 그만큼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기회가 차례진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여성들의 옷차림에 혁띠가 필수인 것도 주목됩니다. 물론 기존에도 북한 여성들이 입는 코트와 원피스에는 달려 나오는 천 혁띠가 있어 그것을 여성들이 허리에 매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가죽이나 합성가죽으로 만든 혁띠가 옷의 품격을 올려주는 장신구로 인식되고 있는 겁니다. 혁띠는 고리 디자인과 금속 재질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며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행자: 날씬한 걸 좋아하는 한국과 달리 북한에선 살이 좀 통통한 여성들이 예쁜 여성의 기준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혁띠로 몸매를 강조할 정도로 허리가 잘록하게 옷을 입는다고 하니 의외네요.

한류가 바꾼 북한 ‘미’의 기준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은 아직까지 먹을 것이 귀하니 뚱뚱한 여자가 부유한 계층의 상징으로 됩니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은 다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류 영향이 옷차림 문화에 변화를 불러오며 신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불러 온 겁니다. 평양을 비롯한 부유층 사이에서 다이어트 문화도 확산되고 있는데요. 코로나 이전부터 북한 무역회사들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자 명단을 보면 ‘몸 까기공’이 꽤 많은 것이 이러한 현실을 방증합니다.

진행자: 한류 영향이 북한 내 미의 기준까지도 바꾸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 북한에도 유행에 맞는 옷이나 장신구를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동안 코로나 국경 봉쇄로 의류 관련해서도 수입이 잘 안 됐을 것 같은데 장마당에서는 주로 어떤 경로로 들어온 옷들을 팔고 있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짧게 말씀드리면, 코로나 이전만큼 북중 간 무역이 활발하진 못하지만, 의류나 식품, 주류 등 소비재 상품은 중국에서 수입되는 물량이 꽤 늘어났습니다. 달라졌다면, 코로나 전에는 개인이 직접 무역회사에 원단을 주문해 직수입하는 것이 가능했지만요.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비공식적으로 무역에 참여하는 개인의 활동을 중단시킨 건데요. 따라서 지금은 의류 원단은 물론 의류 완제품도 국가 무역회사가 직수입해 상점과 장마당에 유통합니다. 물류 수입과 유통구조를 국가가 독점하겠다는 의도이나 앞으로 북중 육로 무역이 정상화되면 개인에 의한 원단 직수입과 의류 직수입은 다시 살아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