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북한에선 왜 봄마다 횟칠을 하나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날이 포근해지기가 무섭게 북한 주민들이 해야 할 일이 있죠. 당국은 벌써부터 봄철 위생월간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위생월간이 되면 장마당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게 횟가루, 생석회라고 하는데, 횟가루는 석횟가루를 말하는 거 같은데, 생석회는 정확히 어떤 걸 말합니까?

손혜민 기자: 석회석 광물을 소성로에서 구워낸 것이 생석회이고, 생석회가 물과 반응하면 하얀 분말이 되는데, 이것이 횟가루입니다. 북한에서 횟가루는 소석회라고도 하지만 석횟가루라는 용어는 전혀 쓰지 않습니다. 석횟가루라고 하면 가공 공정이 없고 석회석을 가루로 빻은 것으로 오인할 것 같은데요. 남북이 사용하는 횟가루 언어의 뜻은 다르지만, 가성비가 좋아 대중적으로 소비하는 용도는 거의 같더라고요. 한국에서 주로 산성화된 토지와 욕조, 변기 테두리 등 보수작업에 횟가루, 즉 석횟가루를 사용하는 것처럼 북한도 같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북한에서는 거리와 마을, 공장과 학교를 위생적으로 꾸리는데 필요한 외장재로 횟가루가 널리 사용됩니다.

봄만 되면 비싸지는 횟가루, 생석회

진행자: 그래서 봄철 위생월간만 되면 횟가루나 생석회 가격이 크게 오른다고요?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3월에는 위생월간과 영농 시기가 겹치는 시기입니다. 해마다 봄철이면 북한 당국은 한해 알곡 생산은 영농 준비가 관건이고, 영농 준비의 관건은 지력 개선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지력 개선이란 산성화된 농경지를 중성화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횟가루를 농경지에 많이 뿌려야 하는데요. 북한의 농경지가 절반 이상 산성화된 것을 감안한다면 농업 부분에서 횟가루 수요량이 짐작될 겁니다.

농업 부분보다 3-4월 봄철 위생월간에 소비되는 횟가루는 더 많습니다. 전국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거리와 마을, 공장과 학교 등에 횟칠을 해야 하는 작업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모든 살림집 부엌 안과 외벽, 울타리에도 횟칠을 하는데요. 도로 바닥 양 옆에도 20cm 정도로 횟칠 선을 그어주고 나무 밑둥에도 횟칠합니다. 횟칠 작업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전국의 공장기업소와 학교, 대학 등 주민 세대까지 소비해야 하는 횟가루는 적지 않습니다. 원래 북한의 각 시, 군 지역마다 소석회공장이 자리하고 있고, 여기서 도시와 농촌에 횟가루 공급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1990년대 경제난 이후 소석회공장도 주 원료인 석회석과 석탄 연료 공급이 중단되면서 가동을 멈췄죠. 그러나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횟가루 제품을 공장이든 개인이든 외면할 수 없지 않나요. 횟가루를 생산해 시장에 공급하는 주체가 증가한 배경입니다.

석회석 광산 발파 폭약, 개인이 제조?

진행자: 소석회공장 말고 일반 공장과 개인도 횟가루를 생산한다는 얘기인가요?

손혜민 기자: 2000년대 들어 북한 장마당이 발달하면서 횟가루 생산에는 석회석 광산 일대 중심으로 일반 공장에서도 소성로를 차려 놓고 횟가루를 생산했고, 개인도 횟가루 생산에 나섰죠. 생산 주체가 국가계획 외에 등장한 건데요. 대표적으로 평안남도 순천 지역입니다. 순천에는 시멘트연합기업소 산하 석회석 광산이 1급 기업 규모로 자리하고 있거든요. 횟가루 주요 원료인 석회석 생산은 노천광산에서 채취되므로 개인 투자가 유치된다면 일도 아닙니다. 발파 폭약만 있으면 됩니다.

발파 폭약은 개인이 제조하는데요. 폭약 원료는 중국에서 수입하거나 2경제 산하 수류탄공장과 비료공장에서 유출되는 것을 사들입니다. 지난 2월 북한 매체는 순천 석회석 광산에서 25만산(m³) 대발파로 시멘트공장에 석회석을 공급하여 시멘트 증산에 기여했다고 선전했는데요. 노동신문에 발파 사진이 실린 것을 보니 어느 돈주가 투자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개인이 투자해 발파가 이루어지면 생산된 석회석은 공장과 개인이 배분합니다. 개인의 몫으로 배분된 석회석이 시장으로 유통되어 횟가루를 생산하는 공장이나 개인에게 판매되는 겁니다.

봄철을 맞으며 순천과 인접한 은산군 소석회공장에서 지역 농장들에 횟가루를 시장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RFA가 보도한 적이 있는데요. 이 공장에서도 석회석과 석탄을 시장에서 자체 조달하여 횟가루를 생산했으므로 당연히 시장가격으로 판매하는 겁니다. 작년만 해도 횟가루 1kg 가격은 내화 500원이었는데, 시장환율이 폭등하면서 물가도 상승하여 횟가루 가격도 1kg에 1,500원으로 올랐다고 합니다. 1kg 1,500원은 도매가이고, 소매가는 2,00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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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작년보다 세 배나 올랐네요. 도매가와 소매가는 어떤 식으로 구분이 되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도매는 횟가루 생산 현장에서, 소매는 대부분 장마당 매대에서 진행되는데요. 장마당 구석진 매대에서 등잔과 전기선 등 철제 잡화를 팔고 있는 아바이들이 횟가루를 소매하는 상인입니다. 횟가루 도매 현장에서 손수레로 구매한 후 집에서 비닐봉지마다 3~5kg 정도씩 횟가루를 담습니다. 주민 세대가 봄철 위생월간에 사용하는 횟가루가 3~5kg 정도이기 때문에 횟가루를 사려는 주민이 오면 봉지로 포장한 횟가루를 파는 것입니다.

그나마 봄철에는 아바이들에게 장사 품목이 늘어나는 시기여서 다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5kg짜리 횟가루 한 봉지만 팔아도 아바이들은 장사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장마당 음식 매대에 둘러 앉아 소주 한잔에 모두부를 안주로 드실 수 있으니 말이죠. 봄철 내내 횟가루를 팔 수 있으니 아바이들의 돈주머니가 불룩해지면 간만에 노친네에게도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2012년 12월, 중국 저장성 취저우의 석회석 광산
2012년 12월, 중국 저장성 취저우의 석회석 광산 2012년 12월, 마스크를 착용한 한 노동자가 중국 저장성 취저우의 석회석 광산에서 드릴 작업을 하고 있다. (Reuters)

북한에선 왜 1년에 한번씩 횟칠을 하나

진행자: 그런데 위생월간이라는 명목으로 해마다 이렇게 횟가루 칠을 한다는 얘기는 한번 칠하면 1년도 안 돼 다시 벗겨질 정도로 질이 좋지는 않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손혜민 기자: 횟가루는 페인트와 달리 물에 타서 칠하므로 벗겨지는 현상은 없습니다. 시멘트와 모래로 미장한 벽체든 토벽이든 횟가루 물을 솔에 묻혀 칠하면 잘 슴배거든요. 그럼에도 북한이 해마다 봄철 위생월간을 강조하면서 거리와 마을 등에 횟칠 작업을 대중적으로 전개하는 것은 위생 방역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에서 진행되는 봄철 횟칠 작업은 소독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근거는 북한에서 시작된 봄철 위생월간의 유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쟁 이후 북한에는 당시 북한에는 위생 환경이 너무 열악해 디스토마 등 전염병이 만연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1958년 중앙위생지도위원회 제2차 확대회의를 개최하고,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결정과 내각 결정 제 52호로 나라의 위생상태를 시급한 시일 내에 혁신시켜 전염병 근원을 철저히 소멸하는 대책을 강구하는 사업으로 봄철 위생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수십 년 흘렀지만 북한의 환경 오염은 한국에서 상상하는 이상으로 안 좋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취사와 난방연료는 연탄이나 나무이므로 횟칠한 담벽은 금방 누렇게 되거나 매연이 담벽에 가루처럼 붙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세탁비누까지 흔하지 않으니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 사람들의 머리와 옷에는 아직 이와 서캐가 박멸되지 못했죠. 아직도 북한에 전염병이 퍼지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이러한 현실은 노동신문에서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봄철 위생월간에는 겨울난 흔적을 말끔히 없애고 여러 가지 전염병의 전파 근원을 없애려면 외장재 바르기와 청소사업을 방역학적 요구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게 노동신문 내용이었죠. 겨울이 지난 도랑에 횟가루를 뿌리고 살림집과 거리, 나무 밑둥에 횟칠을 하여 벌레나 병균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전염병이 횟칠작업으로 해결될 일인가요.

상하수도 시설을 전반적으로 개선해주고 북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가장 초보적인 물 걱정, 비누 걱정 등을 하지 않도록 생필품 공급부터 현실화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지난해부터 김정은 총비서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발전 20×10정책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정책이 치적 쌓기 선전으로 끝나지 말고 민생이 개선되는 정책적 효과로 실행돼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