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북한에서 5.1절, 국제 노동절이 되면 해마다 각종 행사가 열리죠. 특히 평양에서 체육경기대회가 크게 열린다고 하는데, 이건 아무나 즐길 수 없지만, 전국 각지에서 기업소나 공장 등 단위로 열리는 체육경기 만큼은 많은 분들이 즐기는 것 같습니다. 손 기자, 5.1절 분위기 먼저 좀 전해 주시죠.
5.1절은 북한 노동자들의 어린이날?
손혜민 기자: 북한 정권이 창립(1948. 9.9)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당국은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세상’이라며 체제의 당위성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북한 인구의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자 계층이 이념으로 뭉치도록 정치적 선전을 이어가는 건데요. 그럼에도 5.1절은 노동자들에게 1년 중 유일한 자신들의 명절로 인식합니다. 이날은 공장 노동자들의 공휴일인데요. 설날이나 추석 등 일반 공휴일에는 집에서 휴일을 보내고 있지만, 5.1절은 반드시 집체적으로 체육경기가 조직되므로 밖에서 휴일을 보내고 있는데요.
북한에서 제가 소속되었던 평안남도 화학공장건설연합기업소의 사례를 본다면, 5.1절이면 각 기업소 청사 앞의 넓은 공터가 체육경기장으로 변합니다. 아침 9시부터 기업소 산하 직장과 직장 간 팀으로 구성되어 배구경기와 농구경기를 예선부터 결승전까지 진행하여 우승한 팀에게 이불이나 동복 등 상품을 줍니다. 점심 시간이 되면, 노동자들이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펴놓고 먹는데요. 살림이 여의치 않아 도시락을 못 싸온 노동자들은 집으로 가 점심을 먹고 나옵니다.

오후 1시부터는 직장별 밧줄당기기 경기에 이어 직장에서 선발된 선수들이 계주봉 이어달리기에 참가하는데, 여기서 우승한 팀원들에게 빨간 비닐 소래를 상품으로 주던 기억이 있습니다. 5.1절 기념 체육경기 상품이 적지 않은데요. 이 상품들은 공장노동자의 월급에서 공제하는 문화비로 마련합니다. 즉, 국영상업망에서 국정가격으로 사들인 것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체육경기가 모두 끝나면 각 단위별 모여 술과 고기 안주로 5.1절 파티를 합니다.
잔치 음식으로 나오는 술과 안주용 고기는 국가에서 노동자 명절 물자로 국영기업소에 공급한 돼지고기와 술입니다. 다른 명절에도 술과 고기는 공급되지만 소비 형태가 다릅니다. 즉, 설날이나 추석 등 일반 명절에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술 1병, 고기 500g 공급하면, 그것을 집으로 가지고 가 가족 단위로 소비하지만요. 5.1절에는 개별적으로 공급되지 않고 직장 단위로 공급하거든요. 체육경기 끝나고 마지막 음식 잔치에서 집체로 소비하는 건데요. 따라서 모든 노동자들은 체육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체로 모여 술을 마시며 노동자의 명절을 즐기는 것입니다.
진행자: 노동자들에겐 신나는 날이네요. 그럼 지금도 그때 그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건가요?
5.1절 잔치 음식이 돼지에서 개로 바뀐 사연
손혜민 기자: 그렇지는 않습니다. 1990년대 경제난 이후 5.1절 문화는 달라졌습니다. 집체 단위로 체육경기 하는 등의 행사 자체가 사라진 건데요.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상품을 준비할 돈이 국영기업에게 없는 겁니다. 물론 여전히 공장 노동자의 월급에서 문화비는 공제되지만, 그 돈으로는 장마당에서 체육경기용 상품 구매가 어려운 겁니다. 기존에는 국가상업망에서 국정가격으로 상품을 살 수 있었으니 5.1절 기념 체육경기를 조직할 수 있었던 겁니다. 특히 식량배급이 마비된 상황이어서 공장노동자들이 좋아하는 술과 고기 등 5.1절 명절물자가 없어지고 말았죠.

하지만 수십 년간 이어진 5.1절 문화는 노동자들 속에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2000년대 들어서 시장화가 진척된 국영기업 산하 작업반 단위로 비공식적으로 체육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흔히 통 개 한 마리를 내건 경기였죠. 예를 들어 신발공장 산하 사출작업반과 재단작업반이 5.1절이 오면 학교운동장에서 배구나 축구경기를 하자고 제의하거든요.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장마당에서 통 개 한 마리 살 수 있는 현금을 주는 겁니다. 그러면 그 돈으로 장마당에서 13kg 정도의 개 한 마리를 구매해 손질한 후, 가마에 삶으면 10명 이상의 작업반 노동자들이 실컷 먹을 수 있는 개장국이 나옵니다.
진행자: 즐기는 분위기는 그대로인데, 음식이 바뀌었군요. 전 세계적으로 개는 가족처럼 여기며 집 안에서 함께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금은 개고기를 먹는다고 하면 야만인 취급을 받으며 비난을 받는 시대거든요. 이런 상황이지만, 북한에서 단고기로 많이 불리는 개고기는 보양음식으로 여전히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손혜민 기자: 그 이유는 한마디로 저소득이 문제죠. 만성적인 식량난으로 영양결핍이 만연화되어 있는 원인을 꼽을 수 있는데요. 이 때문에 북한에서 5~6월은 개고기를 먹는 달입니다. 봄철이면 허약한 사람들의 피부가 얼굴부터 벗겨지는데, 이 병을 북한에서는 ‘개병’이라고 부릅니다. 개고기로 영양보충을 해야 낫는 병이라고 하여 항간에서 불리는 병명인데요. 이에 따라 건강한 사람들도 몸 보신하려면 개고기를 찾고 있어 봄철이면 개고기 식당 영업이 잘 됩니다. 개고기 식당이 얼마나 많았으면 외국 사람이 평양에 왔다가 북한에서는 개를 잡아 먹냐며 비난했다는 말이 김정일에게 들어갔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이후 평양에는 ‘개고기 식당’ 상호명이 전부 ‘단고기 식당’으로 바뀌었습니다.
5월 장마당 인기 상품, 개엿? 개꼬리?
진행자: 그럼 5월부터 장마당에는 개고기가 엄청 팔리겠네요?
손혜민 기자: 그렇죠. 개고기 장사꾼이 돈을 많이 버는 때가 봄철입니다. 개고기 장사는 도매와 소매로 나누는데요. 개고기 도매는 개 도살을 전문으로 하는 여성들이 합니다. 북한에는 도둑이 많아 살림집마다 경비용 개를 기르는데요. 도살꾼들이 살림집을 돌면서 다 자란 개가 보이면 현금으로 사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개 주인은 기르던 개를 팔아 식량을 사고 다시 장마당에서 강아지를 사 옵니다. 도살꾼의 이야기를 이어서 한다면, 현금으로 사들인 개를 자전거 짐 틀에 싣고 집으로 운반한 도살꾼은 개의 코를 물통에 박아 숨이 넘어가도록 한 후, 물 튀기(뜨거운 물로 개털을 뽑는 방식)를 합니다.
손질된 개고기는 각으로 떠 장마당 매대에 넘겨주는데, 이것을 넘겨받아 500g에서 1kg 단위로 판매하는 상인이 개고기 소매 장사꾼입니다. 현재 평안남도 시장에서 돼지고기 1kg 가격은 3만 2천원(0.71달러), 개고기 1kg 가격은 5만원(0.46달러)입니다. 공장노동자 월급이 인상됐다고 해도 한 달 일해야 개고기 1kg 살 수 있는 셈이죠. 주목되는 점은 개의 꼬리가 허리 통증에 좋은 약이어서 고기보다 비싸게 팔린다는 것입니다.
개고기를 요리해 판매하는 장사가 또 있는데요. 5월부터 장마당 음식매대에 가면 개고기 국, 개 간, 개 밸 순대, 개 발을 양념한 요리 등을 파는 장사꾼들이 줄을 서 있는데요. 이것을 보는 주민들은 주머니 사정에 따라 개고기 요리를 선택하여 사 먹습니다. 특히 당과류 매대에는 봄철 특수상품으로 ‘개엿’이 나옵니다. 개고기를 푹 끓인 후, 뼈를 모두 가려내고 다시 개고기에 옥수수 엿을 넣고 졸인 것을 개엿이라고 하는데요. 개고기 요리보다 개엿은 오랜 기간 두고 먹을 수 있는 몸 보신용이어서 가격이 비쌉니다. 여유가 있는 아내들이 남편의 몸 보신용으로 개엿을 구매해 대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의 탈북 비용은 공짜
진행자: 개엿을 만들 생각을 한 것도 참 기발하네요. 한국은 이제 개고기를 먹는 식당을 찾기가 조금 힘들어졌지만, 북한이나 중국은 여전히 개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죠. 북한의 개들이 중국으로 몰래 팔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개를 밀수하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북한 주민들이 기르는 개는 음식 잔반을 먹고 자라 고기가 유연하고 달다면서 중국사람들이 사겠다고 가끔 주문하군 합니다. 중국보다 가격이 싼 것도 작용할 겁니다. 예를 들어 북한 시장에서 15kg짜리 개 한 마리 가격이 15달러 정도지만, 중국시장에 가져가면 100달러 이상입니다. 그러니 북한 무역간부들이 중국 대방의 부탁을 받으면 용돈을 벌 겸, 밀수 선박으로 살아 있는 개를 밀수하는데요. 지어는 북한 강아지도 밀선을 통해 중국으로 밀수되거든요. 이를 두고 북한 주민들 속에서는 사람의 탈북 비용은 수만 달러로 올라갔는데, 개의 탈북 비용은 여전히 무일푼이라는 웃지 못할 말도 나오고 있어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습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