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북한 주부들에게 인기 많은 요술 행주가 한국산?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북한에선 살림을 잘하는 여성인지 아닌지 그 집 행주를 보면 알 수 있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 행주라는 상품 자체가 들어온 건 오래되지 않은 일이라고 하는데요. 한국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북한에서 행주를 팔기 전까지는 그럼 헌 옷이나 오래된 수건을 행주로 썼을까요?

북한에서 살림을 잘하는지 보려면 행주를 봐라?

손혜민 기자: 먼저 북한의 전통적인 산업 구조를 말씀 드린다면, 중공업 우선 발전 노선이어서 국가의 재원을 경공업 부문에 투자할 여력이 없습니다. 생필품 부족이 만성화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죠. 인민생활 소비품 공급 규정에서 신발을 사례 들어 본다면, 주민 1인당 1년에 4켤레의 신발을 국정가격으로 공급하라는 게 정책이거든요. 하지만 생산이 따라서지 못하죠. 방직공장에서 갑피 원단이 공급된다 해도, 신발 바닥 고무는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합니다. 수입된 생고무가 군수공장에 우선 공급되니 신발 생산계획은 애초에 실행될 수 없는 겁니다.

2018년 9월 7일, 평양 김정숙 방직공장에서 면직물을 가공 중인 노동자들의 모습.
2018년 9월 7일, 평양 김정숙 방직공장에서 면직물을 가공 중인 노동자들의 모습. 2018년 9월 7일, 평양 김정숙 방직공장에서 면직물을 가공 중인 노동자들의 모습. (AFP)

옷도 같습니다. 전국적으로 뽕밭을 조성해 주민 세대별 누에를 길러 바치게 하고, 그 누에 고치로 비단천을 생산해도 비단은 대부분 해외로 수출되어 외화벌이 원천으로 활용되거든요. 2.8비날론공장(함흥)에서 생산되는 천으로 의류를 가공해 공급되었지만 생산량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당국은 혁신자 순위로 옷 공급표를 주었는데요. 그러니 공급 순위에 선발되지 못하면 몇 년이 가도 바지 하나 공급받지 못했습니다. 식량배급 시기에는 옷을 파는 장마당이 없다 보니 해진 옷을 입고, 해진 양말, 해진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것이 일상사였습니다. 생필품이 그렇게 부족했던 겁니다.

진행자: 가장 기본적인 것도 공급이 안 되니 행주는 너무도 당연히 생산이 안 됐겠군요.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식량과 생필품을 국가에서 공급하던 시기에 주민들은 행주라는 말은 알아도 행주라는 상품은 모르고 살았던 겁니다. 경공업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마다 국가 계획이 하달되고, 계획 지표에 생산할 상품명과 수량이 기입되지만 행주는 계획 자체에 들어가지 않아 생산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가정에서는 자녀의 옷이 작아지거나 해진 것을 버리지 않고 가위로 잘라 행주로 사용했는데요. 밥솥 안에 쌀을 얹혀 밥을 지을 때 끓어 오르면서 흘러내리는 밥물을 닦아 내는데 사용하는 행주는 속옷을 잘라 사용했고, 부뚜막용은 주로 겉옷을 잘라 사용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북한 사회에서 가정주부들은 부엌의 청결을 놓고 평가를 받아야 했는 데요. 부엌에서도 가마에 올려 놓은 행주가 얼마나 깨끗하게 반듯하게 놓여져 있는가를 눈 여겨 보고, 이 집 며느리는 잘 들어 왔다거나 이 집 아내는 잘 맞았다는 식의 평가가 따르는 겁니다. 따라서 여성 주부들은 속옷을 잘라 사용하는 행주라도 며칠에 한번 비누칠을 하여 연탄 아궁이에서 삶는데, 그러면 행주가 깨끗하게 멸균되고 하얗게 되므로 여성의 격이 올라가는 겁니다.

“한국산 행주를 판다?”

진행자: 그럼 행주라는 상품은 언제부터 나온 겁니까?

손혜민 기자: 북한 사회 변화를 논의할 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시점이 있지 않습니까. 1990년대 경제난 이후 장마당이 등장한 시기 말이죠. 이때부터 주민들은 자기가 돈을 벌어 입고 싶은 옷과 이쁜 신발을 장마당에서 골라서 구입했는데요. 행주 역시 같습니다. 2000년대 중반 경 손수건 만한 하얀 면 행주가 처음 장마당에 나왔습니다. 중국을 통해 수입된 한국산 행주였는데요. 당시 장마당 여성들은 행주를 돈 주고 산다는 게 쉽게 납득할 수 없었지만, ‘한국산 행주이니 써 보자’ 하고 사서 썼는데 반응이 좋았거든요.

설거지하고 밥공기를 닦을 때, 밥물이 흘러 내리는 가마 솥을 닦을 때 한국산 면 행주를 쓰면 속옷 행주와 달리 물 자리가 나지 않고 깨끗하게 닦아지는 등 흡입력이 뛰어났습니다. 이렇게 쓰노라면 하얀 면 행주가 시커매지는데, 그곳에 비누를 살짝 묻혀 비비고, 맑은 물에 헹구면 금방 하얗게 되는 거예요. 입 소문이 나면서 한국산 면 행주가 여성들 속에서 인기 상품으로 부각되었죠. 하지만 당시 한국산 면 행주 하나에 2천원이었습니다. 공장 노동자 월급보다 비쌌죠.


관련기사

[장마당 돋보기] 북한 농민들이 모내기 철에 인력시장을 찾는 이유?

[장마당 돋보기] 엄마의 ‘전화돈’ 없으면 굶는 군인들?


행주에 이어 유리 걸레도 장마당에 들어왔는데요. 파란 색상의 걸레였는데, 손수건 크기의 두 배였습니다. 이 걸레도 한국산이었는데, 한 개 가격이 공장 노동자 5개월 월급 가치인 1만원(당시 환율로 3달러)이었죠. 장마당 여성들은 두 명이 조를 무어 유리 걸레 하나 사서 가위로 잘라 사용했습니다. 한국산 유리 걸레는 경대 거울, 찬장 유리, 살림집 창문을 닦는데 사용했는데요. 가격이 조금 내려가자 그때부터 부뚜막 행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격이 비싸 중산층 정도가 되어야 소비하는 상품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집집마다 사용하는 행주에 따라 빈부가 뚜렷했습니다.

북한 주부들에게 인기 높은 건 한국산 요술 행주

진행자: 행주 하나만으로도 빈부격차를 느낄 수 있다는 게 놀랍네요. 한국산뿐 아니라 중국산 행주들도 있었을 거 같은데, 북한 여성들에게 어떤 행주가 인기가 좋을까요?

손혜민 기자: 2010년대 들어서면서 북한 장마당에는 개성공단에서 유출된 한국산 행주와 중국과의 무역으로 북한 무역회사에서 대량 수입한 중국산 행주가 유통되면서 행주 가격이 대중 소비 수준으로 내려갔습니다. 중국산 면 행주 가격이 500원~1,000원에 판매되니 이제는 영세민들도 속옷 행주가 아니라 수입산 행주를 사서 쓰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공장 노동자의 월급이 인상되며 중국산 행주 가격이 500원에서 2천원으로 올라갔는데요. 물가가 오르면 장사 마진도 그만큼 올라가므로 행주 구매력은 크게 하락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마당 여성들 속에서 소득 수준이 높은 여성들은 여전히 한국산 행주를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중국산 행주보다 가격은 두 배 비싸지만 품질에서는 한국산이 인기가 있다는 것이죠. 현재 가장 잘 팔리는 한국산 행주는 ‘요술 행주’입니다. 북한 주민과 전화가 연결되어 요술 행주가 뭐냐고 물으니 파랗고, 빨갛고, 노란 면 행주가 한 세트로 묶여 있는 것이라고 해서 알았습니다. 한국에서 상품 광고할 때 길거리에서 서비스로 주는 행주를 말합니다.

다양한 색상의 와플 패턴 섬유로 만들어진 행주.
다양한 색상의 와플 패턴 섬유로 만들어진 행주. 다양한 색상의 와플 패턴 섬유로 만들어진 행주. (Adobe Stock Image)

속옷 대신 요술 행주, 북한의 ‘행주 혁명’

진행자: 여기저기서 홍보용으로 받은 행주가 저희 집에도 아직 많은데, 그게 북한에서 인기라니 신기하네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 지금은 남북관계까지 얼어붙으면서 한국산 요술 행주 구하기가 더 어렵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떻습니까?

손혜민 기자: 이제는 코로나로 인한 국경 무역 봉쇄가 대부분 해제되어 북중 간 무역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의 광물 수출은 아직 제한되지만 의류 가공에 필요한 원부자재와 식품은 물론, 행주 같은 소비재는 북한 장마당으로 유통되고 있어 요술 행주 구매가 어렵지는 않다고 합니다. 특히 행주는 대북제재 품목도 아니고, 북한 당국이 배분하는 무역 와크가 없어도 선박 한쪽 구석에 수입 물자와 편승해 유입할 수 있어 장마당으로 유통하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이제는 속옷 행주 문화가 사라졌다는 게 북한 주민들의 공통된 말인데요. 달리 말하면 북한 사회에서 ‘행주 혁명’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네요. 장마당이 불러 온 북한 사회 변화를 실감하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 당국이 장마당 통제를 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변화로 주민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개선되지 않을지 긍정적인 희망을 가져봅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