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 바로 청취자 여러분이 살고 계신 북한입니다. 내부 문서를 통해 오늘이 북한을 만나보는 [문서로 보는 북한] 진행에 안창규입니다. 오늘도 김지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은 기자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이번주 저희가 다뤄볼 문서는 뭔가요?
김지은 기자 : ‘위대한 청년중시정치를 충심으로 받들어가는 길에서 높이 발휘되고있는 청년들의 긍정적소행에 대하여’ 라는 제목의 근로청년용 강연 제강입니다. 금성청년출판사에서 2025년 6월 출판한 짧은 자료입니다.
진행자 : 저희가 그동안 강연제강도 다루고 학습제강 등 다양한 문서를 다뤘지 않습니까? 사실 북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이지만 저희 기사를 웹사이트에서 보시는 분들을 위해 강연제강과 학습제강의 다른 점을 좀 설명해 주시죠.
북한 살면 누구나 참여해야 하는 학습과 강연, 차이는?
김지은 기자 : 네, 북한에서는 고등학교까지의 학생을 제외한 모든 성인이 매주 참여해야 하는 정치 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매주 열리는 학습회, 강연회인데요. 두 가지가 약간 성격이 다릅니다.
강연이 통치자의 위대성과 그의 행적에 대해 선전선동하는 행사라면 학습은 그의 의도를 실행하기 위한 방법을 체계적으로 해설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행사에는 운신이 힘든 심각한 질병을 앓는 대상, 정신질환으로 말과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 고령자는 제외됩니다. 또 갑자기 피치 못할 개인 사정이 생기면 일시 제외되지만 그 외에는 전부 참가해야 합니다.
학습과 강연은 최고 지도자의 의도와 지시, 그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국가적으로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강요하는 일종의 정치행사로 최고 지도자의 의도와 목적을 최고 지도부, 즉 당의 로선(노선)과 방침으로 체계화하여 주입하는 해설과 선동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당에서 조직적으로 매주 발간 배포하는 문서가 바로 저희가 다루는 강연제강과 학습제강입니다. 북한은 이 두 가지 정치 행사를 북한 주민들을 정신적으로 세뇌시키고 철저하게 통제하는 데 이용하고 있는데요, 이런 이유로 우리가 강연, 학습 제강 문서를 함께 분석해보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그렇습니다. 즉 학습회와 강연회는 모두 김정은의 지시나 당국의 정책 등을 주민들에게 주입시키고 그 실행에 주민들을 조직동원하기 위한 사상 교육입니다. 이 교육을 집행하는 담당자인 학습강사와 강연강사는 각 시, 군 당위원회의 비준을 받아 선정되며 이들에 대한 관리 역시 지역 당위원회 선전부가 담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표준 교안이라 할 수 있는 학습제강과 강연제강은 중앙당 선전선동부가 작성해 전국에 하달하며 각 지역과 기업, 단체에서 학습회와 강연회가 진행됩니다. 한마디로 같은 시기에 똑같은 내용의 사상 교육이 전국에서 진행되는데 그 자료를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이죠.
김 기자, 오늘은 강연 제강 중 특히 ‘위대성 교양자료’ 부분을 다루자고 제안하셨는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김지은 기자 : 네, 이달에 입수한 강연제강과 학습제강 중에서 오늘 소개할 문서는 근로청년용 강연제강입니다. 청년들이 ‘당 창건 80돌이 되는 뜻 깊은 해에 당결정관철의 전구마다에서 위훈을 일으키라’는 선동자료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분에 김정은의 위대성을 선전을 위해 ‘원동기의 볼트에 새겨진 글자를 보시고도’ 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싣고 있습니다.
글에서는 2024년 1월 2일 농기계 전시회장을 돌아보던 김정은의 지적 사항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모내기 기계’를 보던 김정은이 해당 기계의 원동기(엔진)에서 다른 나라 글자가 새겨진 볼트를 발견했고 원동기가 일부 부품을 들여와 조립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는 내용입니다.

진행자 : 원동기(엔진) 볼트에 새겨진 다른 나라의 글자가 뭔지 설명하진 않았으나 중국으로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김지은 기자 : 김 위원장이 간부들에게 설명하길 “금성뜨락또르 공장을 현지 지도할 때도 부품을 수입해 농기계를 만들고 있었다”며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부품들 들여와 북한에서 조립하면서 국산화를 실현한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고 지적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무책임한 일본새(일하는 모양새)를 두고 얼굴을 들 수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북한 농장에 사용하는 뜨락또르(트랙터)나 종합수확기, 모내는 기계를 중국에서 대부분의 부품을 수입해 북한에서 조립만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주민이 있겠습니까? 북한의 기술과 자원으로 생산됐다면 북한 당국이 수십 년째 주장하는 농업 기계화는 실행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주민들은 이런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며 당국만 눈 감고 아웅 하고 있습니다.
또 이 문서에서는 일꾼들이 김정은을 속여서 몰래 수입산 조립품을 국산으로 둔갑한 것처럼 설명하지만 국가 전시회를 준비하는 단위에서 누가, 어떻게 볼트 하나, 부품 하나를 몰래 수입할 수 있습니까. 북한은 볼트 하나, 타이어 하나도 지도자의 승인이 없으면 수입할 수 없습니다. 모든 수입은 비준을 받아야 진행하게 돼 있는 데 이제 와서 일군들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는 겁니다.
간부도 놓친 부분을 찾아내는 김정은 위원장의 ‘위대함’?
진행자 : 그런데 여기 어느 부분에서 김정은의 위대성을 볼 수 있다는 겁니까?
김지은 기자 : 김정은이 해당 간부들이 국산화라고 그럴듯하게 설명해도 볼트에 새겨진 작은 외국 글자를 발견해 수입산임을 알아챘다, 아무리 사소해도 위대한 김정은을 속일 수 없다는 주장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김정은은 위대한 분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겠죠.
하지만 주민들은 이 문서를 통해 확실히 북한이 수입이 의존한다는 것 그리고 볼트도 생산하지 못하는 열악한 국내 기능 상황을 다시 한번 확인할 겁니다.
안 기자, 기억하시겠지만 지난해 3월, 북한 당국은 각 농장에 뜨락또르(트랙터)를 전달하는 행사를 열지 않았습니까? 김정은 위원장의 배려라며 크게 선정했는데 당시 소식통들은 ‘농장에 전달된 뜨락또르가 중국에서 들여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중국 현지 소식통은 또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북한의 모 기관의 의뢰를 받아 중국에서 뜨락또르를 사서 보냈는데 그것이 색깔만 다시 칠해 자체 생산한 것처럼 보도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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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국산화’에 집착하나… ‘주체’ ‘자력갱생’ ‘자력자강’ 80년 묵은 과제
진행자 : 왜 그렇게 무리하게 국산화를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런 주장을 하루이틀 해온 게 아니죠. 1950년대 중반 이후 주체 노선으로부터 시작해, 기술 및 경제 자립, 내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자력갱생, 이어 김정은 시대의 ‘국산화’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각 시대별로 이런 주장이 나온 각각의 배경이 있죠.
지금 김정은이 과거에 주요하게 강조되던 ‘국산화’를 다시 끌고 나온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김지은 기자 : 온전히 김정은의 탁월한 영도에 의해서 경제가 발전하고 인민생활이 향상되었음을 주장하기 위함이라고 판단됩니다.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로 발전하게 된 것은 김정은의 영도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선전하기 위한 것이죠.
하지만 현재의 국산화 정책은 과거 선대수령들이 실시했던 자력갱생과 일치합니다. 과거의 ‘자력갱생’ 구호를 현재 ‘자력자강’이라는 말로 바꿔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내용은 같습니다.
김일성 시대, 총련을 통한 일본의 기술과 설비, 김정일 시대 중국을 통한 설비와 기술, 자재에 의존했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어디에 의존하고 있습니까. 중국산 수입을 비판했다는 것은 중국산을 배격하겠다는 말로도 해석되는데 그러면 북한이 무엇으로 인민 경제를 발전시키겠습니까. 아마도 러시아와의 교류를 통해 수입경제체제로 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산 역시 국산으로 둔갑할 것입니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에서 밭곡식의 왕으로 불리던 옥수수 재배를 밀, 보리로 전환시킨 이면에는 밀가루 음식으로 식생활을 바꾸기 위함보다는 러시아에서의 밀재배를 염두에 둔 정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수입에 의존하지 않는 완전한 국산화는 실현 불가능한 허상에 불과합니다. 북한을 현재 지구상 가장 열악한 경제난에 처하게 만든 1인 독재체제에는 변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력자강’과 ‘국산화’의 역설
진행자 : 저도 김 기자 의견에 동감합니다.
김일성 – 김정일- 김정은까지 북한이 시종 자력과 국산화를 주장하는 배경은 한마디로 폐쇄성에 있다고 봅니다. 김일성은 인접국이자 경쟁적으로 북한을 지배하려 애쓰는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에서 탈피하기 위해 주체 노선과 국산화를 주창했습니다. 김정일은 경제난의 여파로 인한 절망감, 외부에 대한 의존감 등을 차단하기 위해 자력갱생과 국산화를 떠들었습니다. 김정은의 경우 최근 간부와 주민들 속에 부쩍 확산되는 한류를 비롯한 외부 문물에 대한 환상과 동경 등을 차단하기 위해 선대가 주창했던 국산화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중요한 건 김일성 시대부터 지금까지 북한이 시종 자립을 외쳐왔지만 한번도 자립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국산화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오히려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는 상황을 감추기 위한 연막탄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과연 북한은 김정은의 주장처럼 모든 것을 국산화할 수 있을까요?
김지은 기자 : 불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우선 북한에는 기초적인 산업 기반이 하나도 없습니다. 원자재와 생산품을 나를 기차도 잘 다니지 못하고, 비료를 생산하지 못해 농사가 안되고, 물이 안 나오고, 전기가 하루 1시간이 겨우 공급되는 나라에서 자력자강은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김정은 시대 들어 기존의 ‘지방산업정책’를 ‘20x10 지방공업정책’으로 바꾸었는데 말만 바꾸었을 뿐 달라질 것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김정은이 애써 국산화를 강조하지만 국가의 경제 시스템, 자립적 경제로 일어설 수 있는 다양한 경제 체계로 전환하지 않는 한 북한의 국산화는 영원히 위장된 국산화, 미화 왜곡된 자력자강이 될 것입니다.
진행자 : 그렇습니다. 국산화가 어렵고 설사 국산화를 실현한다고 해도 세계적 추세와 수준에 너무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는지 고난의 행군 전 기간 자력갱생을 강조하던 김정일도 한때 모든 걸 자체로 하겠다고 하지 말라며 꼭 필요한 건 사 오는 게 낫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김정은 시대에 와서 다시 국산화를 강조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꼭 생각해봐야할 질문은 바로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세계화가 되는 오늘의 국제 사회에서 ‘국산화’라는 게 과연 의미가 있겠습니까?
김지은 기자 : 사실 의미가 없죠. 세계가 서로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협력하고 의존하며 발전하는 시대에 볼트도 생산하지 못하면서 국산화를 떠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은 다른 나라의 기술과 설비, 자원을 받아들이는 것을 마치 통치자의 위대성이 훼손되거나 희석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오늘 문서에서 확인했듯이 비준 받아 수입한 것마저 간부들의 꼼수로 돌리지 않습니까?
실현 불가능한 국산화에 매달리지 말고 수입하더라도 인민의 먹는 문제, 입는 문제, 쓰는 문제를 해결하며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이 통치자의 진정한 능력이 아니겠습니까. 지도자의 위대성은 선전선동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 강조하면서 오늘 인사드리겠습니다.
진행자 : 네, 경제가 나아지다 보면 언젠가는 100% 국산 물품이 생산되는 날도 있을 겁니다. 다만 그 목표를 위해서는 폐쇄적인 북한 경제 체제가 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문서로 보는 북한] 오늘 시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김지은 기자, 말씀 감사합니다.
김지은 기자 : 감사합니다.
진행자 : 진행에 안창규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