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체니, 남한에 대북 비료지원 중단 요구”
2005.02.12
북한의 핵무기 보유와 6자회담 중단 선언으로 인한 파장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딕 체니(Dick Cheney) 미국 부통령은 남한에 대북 비료지원 중단을 요구했다고 뉴욕 타임스 신문이 12일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남한 정부는 6자회담이 여전히 가능한 것으로 보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핵 관련 소식을 이수경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이미 언론에 자세히 보도됐습니다만, 우선,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의 내용부터 다시 한 번 정리를 해 주시죠.
이수경 기자: 북한은 지난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요구하며 핵 문제 논의를 위한 6자회담 참여를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또 핵무기 보유도 처음으로 공식 선언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선언이 내용이나 형식 등 면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의 이번 선언이 지난해 6월 이후 열리지 못하고 있는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의 배경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이: 여러 해석들이 나오고 있고 북한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유력한 관측들 중 하나는 그동안 존재 자체를 부인해온 농축 우라늄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북한이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잭 프리처드(Charles L. Pritchard) 전 미 국무부 대북교섭담당대사는 10일 자유아시아방송과 전화회견에서 미국이 최근 북한의 농축 우라늄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6자회담 참가국들에게 공개하며 이 문제에 대한 지지를 구한 것이 북한이 이번 선언을 하게 된 배경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There are some possibilities. One of which is there have been recent series of reports about North Korea's uranium enrichment program, different from the plutonium program..."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이 잡지는 미국은 북한이 농축 우라늄의 원료가 되는 ‘6불화 우라늄 가스’를 리비아에 수출했다는 확신을 갖고 미국은 이런 내용을 지난 주 남한, 중국, 그리고 일본에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잡지는 이 같은 정황이 북한이 돌연한 태도변화를 일으킨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딕 체니 미 부통령이 북한의 이번 선언과 관련해 남한에 대북 비료지원 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지요?
이: 뉴욕타임스는 12일 체니 부통령이 11일 워싱턴에서 반기문 남한 외교통상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무역 거래를 통한 대북 보상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하며 대북 비료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체니 부통령은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와 고립 심화 중에서 선택하도록 하길 원한다면 북한을 무장 해제시키려는 나라들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면서 수십만 톤에 달하는 북한의 비료 지원 요청에 남한이 응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고 타임스는 전했습니다. 체니 부통령은 그러나 미국은 6자회담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남한 외교부 관계자는 체니 부통령이 중단을 요구한 적이 없다며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부인했습니다. 또 워싱턴포스트도 면담에 배석한 남한 외교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체니 부통령이 남북 간 무역 중단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미 국무장관이 북한이 이번 성명에서 문제 삼은 북한에 대한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재확인했다는 소식도 있지요?
이: 라이스 장관은 최근 미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을 이란, 쿠바 등과 함께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칭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지난 10일 성명을 발표하면서 라이스 장관의 발언을 강력히 비난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라이스 장관은 11일 자신은 진실을 말했다며 당시 발언을 재확인했습니다.
라이스 장관은 또 자신은 당시 청문회에서 미국은 북한을 침공하거나 공격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밝혔다며 북한은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표현에만 얽매이지 말고 청문회 당시 나왔던 모든 발언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유엔도 이번 사태에 입장을 표시했지요?
이: 모리스 스트롱(Morris Strong) 유엔 사무총장 대북특사는 11일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특별 기자설명회를 갖고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 유엔이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트롱 특사는 북한은 이번 성명에서 회담을 계속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일 뿐 회담 자체를 무효로 한다고 하지는 않았다며 여전히 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스트롱 특사는 또 코피 아난(Kofi Annan) 유엔 사무총장은 6자회담이 핵 문제 해결의 장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남한은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남한 정치권도 이번 사태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 네 이날 남한의 야당인 한나라당 북핵 특위 소속 의원들은 남한 외교통상부 이태식 차관을 불러 이번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대책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 차관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대화와 협상 그리고 비핵화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힌 것을 감안할 때, 6자회담이 재개될 여지는 남겨둔 것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따라서 이번 북한 외무성의 성명은 6자회담의 틀을 깨기 위한 것보다는 협상력 제고를 위한 전술적인 측면이 큰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차관은 또 정부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특히 관련국들과 협력과 남북 대화 채널을 통해 대북 설득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태식 외교부 차관은 이날 앞서 가진 공개 간담회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공식적으로 보유했다고 보기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까? 그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네. 이 차관은 공식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면 돌아갈 길이 없고 협상의 여지도 없는 것인데, 이것은 북한이 성명에서 6자회담을 통해 대화로 푼다고 한 말과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북한 핵 보유 선언은 다만 관심과 협상의 지렛대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처방식을 놓고 남한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여야의 입장은 서로 어떻게 다릅니까?
이: 우선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북한의 핵 동결을 전제로 미국 등 국제사회가 대북 에너지 제공 등 포괄적인 협상을 해야 한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단계적인 접근론을 제시했습니다. 또 정부에 대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과 국제적 공조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 야당인 한나라당은 정부의 섣부른 낙관론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주요 원인이라고 비난하면서,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현재 진행 중인 개성공단사업 등 남북교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궁금한데요, 소개해 주시죠.
이: 남한 언론에 따르면, 아직까지 남북교류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개성공단사업의 경우, 북한의 외무성 성명 발표가 있은 직후인 11일과 12일에도 남측 인원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개성에 출입하고 있습니다. 또 북측의 통관 절차도 예전처럼 이뤄지고 있고 북측 근로자들도 남측 사업장에서 평소처럼 일하고 있다고 남한 언론은 전했습니다. 이와 함께 금강산 관광사업도 북한의 발표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차석대사가 11일 미국의 APTN 통신과의 회견에서 6자회담은 끝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회견 내용을 소개해 주시죠.
이: 네. 한 대사는 이날 APTN과의 회견에서 어떻게 하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6자회담은 옛날 얘기라고 말하고 앞으로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현실적으로 남은 것은 미국이 북한을 침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 북한은 미국과 양자회담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해 양자 대화를 주장했던 종전의 입장에서 다소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대화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본질적인 문제는 미국의 정책, 즉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는 지 여부라고 말했습니다.
한 대사의 이 같은 발언을 남한 당국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이: 일단 남한 당국은 진의를 따져봐야 한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고 남한 언론이 12일 전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 차석대사의 발언 전문을 봐야 분석이 가능하다며, 보도과정에서 잘못 전달된 부분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또 어찌됐던 한 차석 대사의 발언을 외무성 공식 발언과 같은 반열에 놓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