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최근들어 관영 매체를 비롯해 체제 선전용 소셜미디어 계정에 북한의 영어교육 수준을 과시하는 영상들이 자주 게시되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 당국이 내부로 유입되는 외국 문화는 여전히 강력히 통제하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영어 교육 실태와 영어 교육 수준을 과시하는 듯한 의도를 박수영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영어 교육 선전 , 외부 지원 노림수일지도
[북한 관영매체] (영어)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나도 만나서 반가워, 이름이 뭐니? (한국어) 이 학생들은 지금 두산(암산)을 하면서 외국어로 서로 이야기도 나눕니다.
북한 관영매체가 최근 (11월2일) 공개한 북한의 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의 영어, 암산, 음악 수업 모습입니다.
목란(Mokran_Tweet)이라는 북한 선전용 트위터 계정에서도 최근 (10월 28일) 북한의 영어 교육 수준을 과시하는 듯한 영상을 게시했습니다.
[북 영어 강사] (영어) 어떤 간식과 음식이 아이들에게 안 좋을까요? 이해하셨나요?
영상 속 북한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은 영어로 막힘없이 척척 답합니다. 영어단어를 외우고 연상하는 수준을 넘어 문장까지 자유롭게 구사합니다.
북한이 최근들어 부쩍 영어교육 수준을 강조하는 배경은 뭘까?
한국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강현석 교수는 북한 당국이 영어교육을 위한 외부지원이 재개되길 바라고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영국문화원은 2000년부터 북한에 영어 강사를 파견해 학교 영어교육을 지원했지만 2017년 8월 이후 중단된 상태입니다.
[강현석]영국의 도움을 받아 가자고 거기서 이제 교사 파견 같은 게 나왔었잖아요. 지금은 북한의 핵 협정 위반 때문에 한 2년째 중단된 상태죠. 영국 쪽에서 지원했었는데. 그런 것도 아마 일부 관련이 있을지 모르고, 또 계속 지원을 받으려면 '자기네 교육 쪽에 아직도 노력하고 있고 또 성과도 있다' 그런 걸 또 선전할 필요가 있을는지도 모르죠.
선전 영상은 “북한은 영어교육을 지원할 만한 나라”임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겁니다.
강 교수는 북한이 러시아어와 중국어의 비중을 낮추는 반면 영어 교육을 강화한 것은 김정은 총비서가 경제적 효용을 중시하는 면과 관련있다고 말합니다.
[강현석]러시아 말을 없앤 거는 효용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요. 전반적으로 그런 국제적인 그런 위세도 떨어지고 효율도 떨어지고 그러니까 이제 영어 중심의 그런 교육을 강화하다가 그러다가 이제 (소련이) 붕괴하면서는 이제 완전히 러시아를 외국어에서 빼버린 거죠.

북한 초등학교 영어 수업 중 한 학생이 영어로 발표하고 있다. /Mokran TV 트위터 캡쳐.
북한 선전과 달리 영어 교육은 '불평등'
그렇다면 실제 북한 내 영어교육 실태는 어떨까?
북한 김정숙교원대 출신으로 한국에서 통일 교육 강사로 활동 중인 정유나 씨는 여전히 북한의 영어교육 수준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유나]김정은 정권은 이제 북한을 더 이상 후진국으로 보지 않길 바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렇게 수준 높은 조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인재 양성한다'라'고 보여주는 건데. 장담하건대 그런 학교들 북한에 몇 개 안 됩니다. 저도 북한에서 어느 정도 영어를 다 배워서 왔지만 모든 (북한) 학생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절대 오산이고요.
실제 북한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높은 수준의 영어교육이 제공되진 않는다는 겁니다.
유치원 2년을 포함해 총 9년간 북한에서 교육을 받았던 탈북자 김예리(신변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씨는 영상에서 선전하는 수준만큼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일반 학교에선 한 학급에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김예리]그런 수준 정도면 일반 학교에서는 안 되구요. 북한에는 따로 이제 외국어 학원이라고 있어요. 외국어 학원, 중국어 학원 이런 학교가 따로 있어요. 부모들이 외국어를 자식들에게 이제 배우게 하고 싶다고 하면 그런 학교에 들여보내거든요. 그 쪽에선 전공이다 보니까, 그런 학생들은 대화할 수 있는 정도가 될 수 있죠.
강현석 교수도 북한의 외국어 교육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강현석]이런 평양 외국어 대학이나 그렇게 특수한 전문 (학교) 그런데 빼고는 우리나라(한국) 영어 교육하고 비교하면 질이 많이 떨어질 거예요. 시설도 그렇고.
제 2외국어 공부조차도 조국을 위해
정유나 씨는 북한에서 영어교육에 대한 열풍은 한국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북한에선 강압적으로 학습이 강요된다고 말했습니다.
[정유나]북한의 구호가 "나라를 위해서 배우자 또 조국을 위해서 배우자"예요. 제가 어렸던 90년대 초반 때도 벌써 어떤 말이 나왔냐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워장)이 한 말이에요. "두 발은 내 땅에 눈은 세계로"라는 얘기를 했어요. 그 말은 뭐냐면 눈은 세계로 향하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영어 교육을 엄청 정말 그야말로 고되게 시켰어요. 저희들 학교 다닐 때 밤 12시까지 잡아놓고 단어 공부시키고 그랬어요.
정유나 씨는 북한 소학교부터 고급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자신을 포함한 주변 학생들이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했던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전기 사정이 좋지 못한 북한에선 학생들이 초를 들고 공부했으며 평양 학생들은 불빛이 들어오는 동상 근처에 앉아 책을 보기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체벌과 망신을 면하기 위해 학생들은 강제 학습을 따라야 했다는 겁니다.
[정유나]북한에는 이제 상반기, 후반기해서 아예 학교마다 시험 보는 기간이 있거든요. 그때는 애들을 아예 집에 안 보내요. 밤새요. 그래서 영어 시험 보게 해서 1등부터 꼴등까지 딱 학교 벽보에다 붙여놔서, 애들이 지나가면서 꼴등은 아예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게끔 그렇게 앞에서 망신을 준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애들이 꼴찌 안 하려고 그냥 혀를 물고 공부를 하는 거죠. 자율학습이 아니라 강제학습이에요. 북한은 나무로 이렇게 지시봉이 있어요. 그거로 공부 안 하는 애들 엄청 때려요.
김예리 씨는 북한 당국이 이처럼 영어 교육을 강요하면서도 막상 주민들의 자유로운 해외 왕래는 금지하는 모순된 정책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예리]그러니까 솔직히 (영어)를 배운다고 해도 국내에서 별로 써먹을 데도 없단 말이에요. 미국을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는 건데 그걸 알아서 뭐 하겠어요. 그냥 기본적으로 단어나 몇 개 정도 외울 정도, 간단한 대화 정도를 가르쳐주기는 하지만 또 학생들이 그거를 써먹을 데 없고 하니까 또 등한시하고 잘 배우려고 안 하거든요.
북한 주민들에겐 팝송을 듣거나 외국 서적을 볼 자유조차 함부로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정유나]평양에 전공을 영어로 하는 사람들 있죠? 그런 사람들만 이제 국가에서 허락한 노래가 있고 허락한 외국 서적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만 도서관에 가서 이름 이런 거 다 쓰고 허락을 받아서 빌려다 보는 경우는 있으나 우리나라(한국)처럼 팝송을 부르고 이런 거는 안 되죠.
북한 주민들에게 영어 학습을 강요하지만, 주민들이 외국을 자유롭게 방문하거나 외국 문화를 즐기는 것은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북한.
선전에 급급한 영어 교육 수준은 물론 그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습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