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저출산] ① 결혼 대신 동거, 아이는 한 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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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직접 저출산 문제를 언급할 만큼 저출산이 북한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북한에서는 결혼 대신 동거를 택하고, 아이는 한 명만 낳는 것을 선호하는 등 결혼과 출산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는데요. 이 때문에 “아이를 등에 업은 여성을 보기 어려워졌다”, “탁아소 정원이 많이 줄었다”는 사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북한 저출산]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저출산 현상과 원인, 사회적 분위기 등을 천소람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탁아소 정원 줄어”

[강주영(가명)] 저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혼을 안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어요. 불안함이 너무 싫은 거죠. 내 인생도 있는데, 결혼하게 되면 애 업고 일하고, ‘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오직 ‘엄마’라는 이름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이 싫은 거죠.

2017년까지 북한에 있었던 20대 탈북 여성 강주영(신변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 씨는 많은 여성이 장마당에 아이를 업고 나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경제 활동부터 가사와 육아까지 도맡아 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생각이 옅어졌다고 강 씨는 말했습니다. 실제로 강 씨 주변에도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유엔 경제사회위원회(UN ESCAP)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3년 북한의 합계출산율은 1.8명.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보다 낮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또 지난해 12월, 한국 통계청이 추정한 2023년 북한의 합계출산율은 1.79명으로 나타났는데, 북한이 저소득국가임을 고려했을 때 지금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엔 부족한 수준이란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특히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지난달 3~4일에 진행된 5차 전국 어머니대회에서 ‘출생률 감소’를 직접 언급하고 출산 장려책을 강조함으로써 이미 북한에서도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를 통해 함경북도와 양강도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두 명과 30대 미혼 여성 한 명에게 저출산 문제에 대한 북한 내 분위기를 물어봤습니다. 이중 30대 초반 여성은 결혼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북한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결혼과 출산을 안 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이혼보다는 동거를 선호하는 데다, 자녀를 낳아도 한 명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지난 1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요즘 북한에서는 2~3명의 자녀를 갖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또 결혼보다는 동거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것이 이시마루 대표의 설명입니다.

[이시마루 지로] 첫 번째로 결혼에 대한 사회적인 개념 자체가 많이 변했다고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과거에는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남자, 여자 모두 결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는데요.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또 최근 분위기는 아이를 2~3명 갖는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생활이 어려워서 그러는 건데, 결혼을 정식으로 하면 보통 한 명 정도는 낳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에 마을마다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는 여성이 드물다거나, 탁아소에 가는 어린이의 숫자가 줄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혜산시에 사는 우리 여성 협조자에 따르면 한 동네에서 탁아소의 정원이 원래는 38명이었는데, 작년 말에는 21명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까 요즘 탁아소에서 식량을 부담할 것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그게) 싫어서 집에서 키우는 경우도 있지만, 큰 이유는 역시 코로나 때문에 출산하지 않은 사례가 많아서 아이 자체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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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일, 한 손에는 금색 장난감 총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중국산 쇼핑백을 든 북한 소녀가 다른 여성들과 함께 북한 라선시의 라선 자유 무역 시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AP (Ng Han Guan/ASSOCIATED PRESS)

세 여성에 따르면 북한에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최대 이유는 ‘생활고’입니다.

북한에서 여성들이 짊어져야 할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면서 젊은 세대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실제 지난달 어머니대회에서 김 총비서가 한 연설에 대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란 반응도 전해졌습니다.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2017년부터 2년 동안 평양에서 살았던 영국인 린지 밀러 씨도 북한의 특권층 미혼 여성들이 결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힌 바 있습니다.

젊은 평양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에서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요당하는 것에 압박감을 호소했다고 그는 회고했습니다.

[린지 밀러] 결혼을 위해 연애를 하고, 부모님이 신랑감을 찾는 등 정말 압박감을 많이 받는다고 제게 털어놓곤 했어요. 이런 이야기는 다른 평양 여성들에게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에게서 (결혼에 대한) 부담을 받는다고 말이죠. 나이가 들면 신랑감을 찾고, 결혼하고, 가족을 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으니까요.

생활고에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가 큰 원인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배경으로 여러 가지 원인을 제기합니다.

배급 체계가 무너진 이후 먹고사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과거의 사회주의식 복지가 보장되지 않아 개인 부담이 커지면서 젊은 세대들이 출산을 기피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남자는 무조건 직장에 출근해야 하지 않습니까. 출근했다고 해서 한 가정이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배급도 안 주고, 오히려 반대로 직장에서 필요하다며 ‘현금을 내라’, 겨울에는 ‘땔감 좀 내라’, ‘휘발유를 내라’는 등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여성이 밖에 나가서 장사하든, 무언가 일을 해 벌어서 부담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은미 한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23일 RFA에 여성들의 경제적 지위가 커지고, 외부 정보가 유입되면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여성들의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은미] 과거에 세대주가 직장에서 모든 부양가족의 머릿수만큼 모든 것을 배급받아 오는 시스템일 때는 당연히 경제권이 세대주에게 있잖아요. 남성이 세대주이기 때문에 모든 중요한 결정 사항에 대해서 (여성들이) 수동적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여성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몇 명 낳을 건지’, ‘우리 가정을 어떻게 끌어나갈 건지’, ‘가계 경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주체적 역할을 하잖아요. 이것은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이주영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과 김선중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조사역이 발표한 ‘북한이탈주민 조사를 통해 본 북한 출산율 하락 추세와 남북한 인구통합에 대한 시사점’에 관한 논문에서는 북한의 출산율 하락 속도가 기존 추정치보다 더 빠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 기준, 북한 여성 한 명이 가임 기간(15세~49세)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합계출산율은 1.38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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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poses for a picture with children during a visit to the Pyongyang Baby Home and Orphanage on New Year's Day 2015년 1월 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서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운데)가 설날 평양 고아원을 방문해 아이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Reuters via KCNA (KCNA KCNA/REUTERS)

특히 북한의 많은 정책이 인구 재생산과 세대교체는 물론 장기 집권을 뒷받침할 ‘충성 집단’을 양성하는 것과 밀접히 연관돼 있기 때문에 결혼을 기피하거나 아이를 적게 낳는 현상은 북한 체제에 상당히 위협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젊은 세대들이 점점 개인주의화 되는 것에 북한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정 연구위원은 진단했습니다.

[정은미] 북한이 항상 말하는 사회주의의 본질은 집단주의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체제 원리란 말이에요. 근데 개인주의화 되면서 사회적으로 인구 재생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죠. 공동체를 생각하면 많이 낳아야 하지만, 지금 개인 삶의 행복이 더 중요한 거잖아요. 개인 삶의 행복을 중심으로 놓고 판단했을 때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그 아이에게도 안 좋지만, 내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에 고민이 정착되면서 결국, 아이를 안 낳거나 아이를 한 명만 낳게 되는 거죠.

안경수 한국 통일의료연구센터장도 (15일) RFA에 이미 북한에서는 수년 전부터 아이를 두 명 넘게 낳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안경수] 간접적이나 직접적으로 들어보면 아이를 두 명 넘게 낳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해요. 물론 아이 하나는 계속 낳는 것 같아요. ‘아이를 두 명 이상 낳는 거에 부담스러워하는 게 많다’는 사실은 어제오늘 들은 게 아니라 5~6년 전부터 들어왔습니다.

저출산과 함께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북한.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나서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이미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북한 여성들의 생각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강주영(가명)] 결혼하게 되면 돈도 여자가 벌어야 하고, 애도 여자가 낳고, 그 애를 돌봐야 하는 것도 엄마가 하고, 너무 부담이 크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런 힘들어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보고 부담이 되니 결혼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남자들은 어차피 나랏일 해야 하는 분위기잖아요. 그렇다고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다 보니 사실 여자가 나가서 애를 업고 장마당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그러니까 사실 부담이 너무 크죠.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