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돈주들, 힘 세져 당국 단속에도 끄떡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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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편집장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이최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세수 확보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일부 단위들에서 국가납부계획에 미달했다는 건데요. 문 박사님, 지난해 북한의 국가예산집행에 결함이 있었다고 재정상이 직접 최고인민회의에 나와 밝혔군요. 아무래도 지난해 북한에서 경기침체로 잘 걷히지 않았던 듯합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이런 표현은 그렇게 쉽게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북한 내부 사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보고에서는 '내각은 지난해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제5차 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결함들도 적지 않게 발로시켰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결국 5개년경제계획 수행이 잘 안 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제재가 계속되는 데다가 국경봉쇄는 아직 계속되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가격, 원유가격 등이 올라가 세계적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이 아무리 자력갱생을 내세우며 자체 원자재로 경제를 돌린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곡물도 중국 등에서 들여오지 않으면 모자랄 것이고 농업생산에 필요한 비료도 수입해야겠지요. 그런데 비료 값도 많이 올라가고 있다고 하니 안 그래도 외화가 모자란 가운데서 어떻게 수입하겠는가, 여러모로 장애 요소가 많지요. 그리고 '일부 단위에서 자기들 단위만의 이익을 생각해서 국가에 잘 바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건 단위 책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국가가 책임져주지 않는다면 자기 단위에 속하는 종업원과 그 가족들의 생활만큼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단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단위에서 올라와야 할 것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결국 국가예산 집행에 차질이 생기게 되지요. 국가 재정에 영향을 주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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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농부들이 수확한 벼를 나르고 있다. /Reuters

<기자> 그런데 내놓은 원인은 경제지도일꾼들의 사상적 각오 부족이군요. 결국 간부들의 정신무장 강화가 대책으로 보이는데요, 효과가 있을까요?

문성희 간부들의 정신무장 강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북한에 가서 여러 사람들과 접한 느낌으로는 북한 사람들은 정말 인내심과 참을성이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과제라도 당에서 제시하면 무조건 관철해야 한다는 그런 인식은 어릴 때부터 교양받고 있기 때문에 절대 '할 수 없다'느니 하는 그런 소리는 내지 않습니다. 본인들도 당의 과업이라면 수행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지도부의 지시에 불만을 가지고 '못한다'고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간부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수행 못하겠지'하는 과업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해내려고 하곤 했지요.

그렇지만 이번에 북한 당국이 간부들의 정신무장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는 것은 간부들 속에서도 일종의 무력감이라고 할까, ‘무슨 수를 쓰더라도 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염세적인 생각이 생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경제가 좋아지지 않고, 위에서는 아무것도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고 하라고만 한다면 인내심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경제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는 책임을 최고 간부들에게 묻지는 못하기 때문에 아랫 단위 간부들한테 책임을 묻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간부들이 정신무장을 강화한다고 해서 경제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그런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자본주의 경제로 가지는 않더라도 중국이나 베트남 등의 경우처럼 경제관리 문제를 좀 더 혁신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성과를 낼 수 있게끔 경제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이번 회의에서는 올해 예산 규모가 공개됐는데요, 농촌 관련 예산이 많이 늘었군요. 어떤 배경으로 봐야 할까요?

문성희 그만큼 농촌 문제라고 할까, 식량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옷이나 집 등 다른 사안은 해결을 미룰 수 있어도 먹는 문제 만큼은 절대 타협하기 어렵습니다. 과거 화폐교환이 실패했을 때 주민들이 간부들을 막 비판한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굶어죽는 사람들은 많이 나왔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정부에 대한 불만을 말하기 전에 어떻게든 자기들 스스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행동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발전했고 나중에는 북한 지도부가 시장을 공식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장도 생기고 공급도 일정하게 부활하고 있다고 하지만 공급이 여전히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불만도 커지지요. 아마도 노임 같은 것은 올라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시장에서 쌀을 사게 되면 엄청 비싸니까 사람들이 정말 먹고 사는데 힘겨울 것입니다.

북한 지도부로서는 먹는 문제 만큼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농촌 관련 예산이 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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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부터 18일까지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회의 모습. 이번 회의에서는 평양문화어보호법채택 등이 논의됐다. /연합뉴스

<기자> 이번 회의에서는 또 중앙검찰소를 통한 법적 감시와 통제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사회통제를 강화하려는 배경은 뭔가요?

문성희 경제 문제가 잘 풀리지 않고 생활이 어려워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정부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사회가 불안해지지 않을까요? 북한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한 여러가지 범죄도 당연히 있을 것이고 북한 지도부가 비사회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일도 적지 않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예로부터 뭔가 개혁을 하거나 바같에 개방을 할 때도 밖에서 비사회주의적인 것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내부 통제를 강화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통제를 강화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에서 여러가지 비사회주의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방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자> 한편 북한의 식량부족이 1990년 대기근 이래 최악이라는 미국 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보고서는 신흥부자인 돈주를 북한 당국이 단속하는 바람에 투자와 성장에 차질을 빚었고 결국 식량난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최고인민회의에서 밝혔듯 단속을 더 강화한다면 경제에는 더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문성희 우선 식량부족이 1990년 대기근 이래 최악이라는 소식이 사실이라면 많이 걱정됩니다. 저는 마침 1996년에 북한에 머물고 있어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물론 현장에 있어봤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고 하는 세세한 사항은 알 수 없었지만 피부로 느끼는 심각성이라 할까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 상황이 좀 많이 걱정됩니다.

북한 당국이 돈주를 단속했기 때문에 투자와 성장에 차질을 빚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 출범 당시에는 북한 당국도 돈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돈주가 돈을 벌면 국가도 잘 된다는 그런 구도가 생기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마도 돈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못 사는 사람들과의 격차가 생겼고 사회주의 제도를 유지하는 북한으로서는 돈주가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이지요. 돈주 때문에 쌀 값이나 외화환율이 폭등했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나 계속 단속을 강화하지는 못하는 것이 아닌가요? 돈주의 힘이 강해졌기 때문에 단속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잘 될 지 좀 의심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