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 주민 대다수가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한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문성희 박사님,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한국 영상물, 얼마나 인기있다고 보시는지요?
문성희 제 경험으로 말한다면 대단히 인기있다고 봅니다. 이미 2010년대 초반에도 북한에서 한국 영상물의 인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한다면 인기가 떨어졌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최근에 한국에서 공개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전화로 물어보았는데 50명이 대답을 하고 그 중 98%에 해당하는 49명이 한국을 포함한 외국 영상물을 시청한 경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거의 매일 보는 사람도 1명 있었습니다. 50명이라고 하면 적은 수이고 대답을 하는 사람이 다소 외국 영상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거의 대부분이 시청을 하고 있다는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을 봐도 여성 옷차림 등은 완전히 한국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을 본 딴 것이라고 딱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도 했어요. 어느 지방도시에서 당 간부가 저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친척들에게 절대 이상한 동영상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 말이 이해가 안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한국 드라마와 같은 외국 영상물을 보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해외교포들이 USB나 CD등에 동영상을 담아 북한 친척들에게 제공해 준 그런 일이 있어서 인듯 싶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은 한 적이 없고 당연히 앞으로도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지요. 그렇지만 그런 당부를 제게 한다는 것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단속된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2020년에는 이런 현상을 철저히 단속하는 법률도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한다면 법으로 단속을 해야 할 정도로 한국 드라마나 영화 등이 북한 사회에 침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추측됩니다.

<기자> 이렇게 한국 영상물을 보고 나면 한국 사회에 호기심이 생기고 옷을 따라입게 된다는 반응도 나왔는데요, 어떻습니까?
문성희 네, 당연히 그렀겠지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여성 옷차림은 한국 드라마 속 여성 주인공을 본 딴 것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옷차림은 북한 내부에서 발상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어딘가에서 정보가 들어와서 그것이 확산되는 것이지요. 북한 여성들은 학창시절에 가사를 배워 자기 스스로 옷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로 북한에 사는 저의 친척들도 자기 옷이나 아이 옷 같은 것은 장마당에서 천을 사와서 스스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디자인은 어디서 본따겠습니까? 당연히 뭔가 모델이 있는 것이지요.
1989년에 한국 여대생이던 임수경이 북한에 밀입국했을 때 그가 입었던 청바지가 북한에서 대단히 인기였어요. ‘임수경바지’라고 해서 북한 젊은이들 안에서 인기가 대단했다는 소문을 북한에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반미 입장에서 청바지를 장려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단속을 해서 청바지를 입는 사람을 처벌했다는 그런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일부는 한국 드라마 여성 주인공의 옷차림이라는 사실을 모른채 평양에서 유행하기 때문에 그런 옷을 만들어 입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얘기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반정부시위가 벌어지면 그것이 노동신문 등에서 소개될 때가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의 관심은 시위 보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에 있었습니다. 모두 자기들보다 좋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에 놀란 것 같습니다. ‘남조선 사람들은 우리보다 못 산다고 하는데 우리보다 좋은 옷을 입고 있구나’라는 반응이었어요. 물론 최근에는 정보가 북한에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북한 사람보다 못 산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 그렇지만 실제 북한 주민들이 한국, 일본 등 외부세계에 관심이 많더라도 내색은 할 수 없을 듯한데요.
문성희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가 북한에 가면 친척들만이 아니라 안내원이나 운전기사 등 흔히 접하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일본 등 외부세계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질문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많이 오해를 하고 있고 이상한 정보가 들어가서 엉뚱한 질문도 많이 있었지만 제가 정확한 사실을 대답해주면 납득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이나 미국 등과 한국은 좀 다릅니다. 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물어보는 북한 사람들은 많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한국은 어느 측면에서 보면 북한 지도부에 있어서 경쟁 상대이고 복잡한 감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생각이 있어도 그것을 입밖에 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사람들 입장으로서는 '괴뢰'이기 때문에 '미국의 앞잡이'라고 할까요 그런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미국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솔직하게 견해를 밝히고 있었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재일동포가 사는 장소이고 일본제품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일본제품은 참 좋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본에 대해 사실은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리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역사문제만은 다르지요. 그러나 역사문제에 있어서도 북한 일반사람들의 목소리라고 하기보다 지도부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그런 인상이었어요.
<기자> 말씀하신 대로 북한 당국은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남한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징역15년에 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당국이 남한 영상물이 북한 사회에 더 확산할 경우 체제위협에 이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한데요.
문성희 저는 북한 당국이 체제위협에 이를 수 있다고까지는 아직 판단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9년에 북한에 갔을 때 마침 자유화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북한 국내에서 일본 소설같은 것을 읽어도 좋다는 그런 분이기가 조성된 시기가 있었어요. 그 때 어느 귀국동포를 만났는데 제가 가지고 있던 일본 소설책을 달라는 것이에요. 제가 '괜찮는가?'하고 물었더니 '북한에서도 이런 것을 읽어도 괜찮아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북한에도 자본주의 문화의 침투는 예로부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체제 붕괴까지는 안 갔습니다. 물론 곧이어 동유럽과 소련이 붕괴했을 때 북한 지도부는 동유럽의 실패가 젊은 사람들에 대한 사상교양을 잘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그 다음부터는 이런 자유화바람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에서1980년대 말처럼 자유화가 실현된 시기는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전 한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서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했을 때 연설문에 대해 북한 당국이 사전 검열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 대통령에 대한 환상을 가질 수 있는데도 그대로 놔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봅니다. 이 시기에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잘 되고 그것이 계속 유지되었다면 북한 지도부 자체가 한국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노래를 어느 정도 개방할 수도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BTS가 북한에서 공연을 하는 것도 꿈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요. 남북 간 관계개선이 한국 대중문화가 북한에서 더 거리낌없이 확산될 수 있는 전제조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런데 북한에서도 손전화나 컴퓨터를 사용하는 주민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한 상황에서 북한 당국의 한국 등 외부 영상물 금지 노력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문성희 북한에 가시면 알겠지만 손전화나 컴퓨터를 사용하는 주민들의 수가 아무리 증가해도 그것은 북한 내부에서만 통신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북한 일반 주민들은 인터넷이 아니라 인트라넷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손전화로 메시지를 주고 받고나 노래나 동영상을 내려받아 보고듣는 것이 가능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북한 내부 사람들끼리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고 노래나 동영상도 북한 노래나 동영상을 내려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손전화나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외국 영상이나 노래를 자유로이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외부 사람들과 연계를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듣기에는 혹시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러니까 외국 사람들과 인터넷으로 연계를 취하려는 현상이 보인다면 북한 당국이 그것이 어디에서 발신되고 있는가를 곧 알아차려서 단속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엄격히 단속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외부 영상물을 금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