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북한식당 “외화벌이 포기 못 해” 여전히 성업 중
2024.04.26
앵커 :북한의 대표적인 외화벌이 수단인 북한식당이 대북제재 위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외 곳곳에서 성업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UN 안보리 결의에 따르면 2019년 12월까지 해외에 있는 모든 북한식당은 문을 닫고 북한에서 고용한 직원들 역시 본국인 북한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국을 비롯한 러시아, 동남아 일부 국가에는 여전히 북한 종업원을 고용한 북한 식당이 버젓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해외 북한 식당의 실태를 진민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인터넷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인 유튜브에 ‘북한 식당’을 검색하면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까지 다양한 북한 식당에 관한 영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상 중에는 2020년 이후 해외에서 영업 중인 북한 식당을 촬영한 것도 적잖습니다.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계여행 유튜버 이 모 씨(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 요청) 역시 1년 전인 지난해 4월, 동남아시아 국가인 캄보디아 프놈펜에 자리 잡고 있는 북한 식당을 직접 방문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세계여행 유튜버 이 모 씨 유튜버 영상 녹취] 지금 어디를 가고 있냐면 여기 캄보디아 프놈펜에 북한 식당이 숨어 있대요. (안녕하시라요?) 안녕하시라요. 뭐가 맛있나요, 추천 부탁 드립니다. (감자 지짐?) 감자 지짐이요? 그럼 감자 지짐 하나 해 주세요. (맥주는 안 드시겠습니까?) 아, 맥주도 있나요? (타이 맥주도 있고, 대동강 맥주도 있고 가격은 같습니다.)
이 씨는 24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동남아 지역 북한 식당에 다녀온 이야기를 털어 놨습니다.
이 씨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북한 식당에 방문하기 직전 라오스에서 영업 중인 북한 식당도 들러 촬영 허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으며, 비교적 최근인 올해 2월에는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북한 식당도 방문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식당들 대부분이 성업 중이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세계여행 유튜버 이 모 씨] 동남아에 (북한 식당이) 여러 군데 있었어요. (캄보디아에 있는 북한 식당에서는) 사장님이랑 대화했는데 장사도 잘된다고 하셨고 제가 1층에서 혼자 밥을 먹었는데 2층에서는 공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단체 손님들을 위해서 2층을 개방하고, 저는 1층에서 밥을 먹었어요. 사실 얼마 전 한국 들어오기 전에도 베트남에서 (북한 식당을) 갔거든요. 거기는 제가 간 캄보디아보다 뭔가 좀 더 한국적인 분위기였어요. 왜냐면 그 당시에 한국인도 많이 있었고, 제가 밥 먹을 때 한국 분들이 엄청 많았어요. (제가 들렀던 동남아 지역 북한 식당 대부분은) 장사가 잘됐어요.
또 캄보디아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북한인 직원과 대화한 내용도 꺼내며, 그 직원은 캄보디아로 파견된 지 2~3년 정도 됐고, 북한에서 귀국하라는 지시를 받아야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세계여행 유튜버 이 모 씨] 저를 응대했던 종업원분은 북한에서 왔다고 했어요. 북한에 못 간지가 2~3년 정도 됐다고 했고, (북한에서) 돌아오라고 해야 갈 수 있다고 했어요.
이 직원 말에 따라 북한에서 캄보디아로 파견된 지 2~3년 된 시점을 따지면, 어림잡아 2021년 이후로 추정됩니다. 이는 유엔 결의에 따른 대북제재 위반 사항에 속합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7년 12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에 대응해 채택한 대북 결의 2397호를 통해 ‘2019년 12월까지 해외에 있는 북한에서 고용한 직원인 북한 노동자 전원을 본국으로 송환’하도록 했습니다.
즉 2020년 이후 해외에서 영업 중인 북한 식당과 북한서 고용된 종업원들이 해외에 머무르며 북한을 위해 돈벌이하는 건 모두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속하고, 대북제재 대상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명시된 기한이 4년이나 지났지만 해외에 파견한 북한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송환하기는커녕, 오히려 결의가 채택된 이후에도 꾸준히 북한 노동자들을 외화벌이 현장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이 RFA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지난 2016년까지 캄보디아 수도 지역에서 북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다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김 모 씨(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 요청)는 26일 RFA에 2019년 대북 제재의 영향이 컸던 당시 북한에서 해외 북한식당 노동자로 파견돼 나간 지인 얘기를 전했습니다.
김 씨에 의하면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지인이 해외 노동자로 파견될 수 있었던 건, 노동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정식 노동자 비자가 아닌 유학생 비자 등으로 비자를 우회하는 방법을 썼다는 겁니다.
[김 모 씨(2016년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 신분으로 탈북)] (대북 제재가 한창일 때는) 나가는 방식도 좀 다른 게(대북 제재가 심하지 않을 때) 저희는 노동 비자를 가지고 나갔거든요. 그런데 2019년에 나간 친구들 보니까 다 유학생 비자로, 비자를 다 속여서 나갔더라고요. 왜냐면 (북한) 해외 노동자들에 대해서 대북제재 조항에 (파견이 안 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결국 나가잖아요.
물론 유엔 대북 제재 결의로 인해 해외 북한 식당 영업이 주춤한 분위기는 있어 보입니다.
2016년 3월 유엔 안보리는 대북 결의안 2270호를 채택해 유엔 회원국은 북한 정권과 어떤 사업도 하지 못 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특히 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 대북 제재 결의 이행에 확고한 의지를 보이며 자국 내 북한 식당 노동자들의 비자 갱신을 불허하고, 북한 기업의 폐쇄를 명령했습니다. 그 때문에 일부 북한 식당이 문을 닫고 북한으로부터 파견된 노동자들은 짐을 싸 북한으로 돌아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대북 제재로 인한 피해는 북한 식당보다 오히려 북한 식당 종업원들에게 더 컸던 모양입니다. 김 씨는 당시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조하면서 북한으로 돌아가는 북한 종업원들이 짐을 일일이 검열당했던 상황을 전했습니다.
[김 모 씨(2016년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 신분으로 탈북)] 그전에도 대북 제재는 항상 받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대북 제재가 정작 해외 북한 식당들) 영업에는 별로 그렇게 지장이 없는데, (2017년 당시) 중국 쪽에서 대북 제재에 동조한다고 하면서 해외 북한 노동자들이 들고 들어가는 물품을 다 뒤진다고 하더라고요. 집에 가면 뭐가 없고 뭐가 없고 뭐가 다 뜯어져 왔더라. 대북제재라는 게… 그 시기에 걸리면 (해외 북한 노동자들이) 굉장히 피해를 많이 보죠.
이후 2017년 12월 또다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 2397호까지 채택되면서 중국과 러시아, 베트남 등과 같은 동남아시아 지역 여러 북한 식당이 휴업 혹은 폐업 수순을 밟았습니다.
문제는 대북 제재로 인해 해외 북한 식당이 폐업한다고 해도 그 사업장에서 일을 하던 북한 노동자가 반드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당국의 외화벌이를 위해 또 다른 해외 북한 식당으로 이직하게 되는데, 정작 북한에서 파견된 종업원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옮기는지조차 현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김 씨는 전했습니다.
[김 모 씨(2016년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 신분으로 탈북)](폐업 후에 이직할 곳은) 다 정해지고 가서 봐야지 아는데, 다 비밀로 해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잘 모르거든요. (해외 북한 식당이 문을 닫으면) 거의 다 비행기 타고 중국 쪽으로 나가더라고요. 식당 측 사장이나 지배인들이 (해외 북한 식당이 있는 현지) 여기서 나가야 하면 다른 데를 알아보는 거죠. 다른 대방(사업가)을 알아봐서 그쪽에서 받아 주겠다고 하면 다 그쪽으로 가는 거죠.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외화벌이는 포기를 못 하니까요?) 못 하죠. (북한 당국이 외화벌이 포기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해외 북한 식당영업과 폐업의 명암이 단순히 대북 제재결의안 존재만으로 갈리는 건 또 아니라는 사실도 RFA 취재 도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자리 잡고 있던 북한 식당은 유엔안보리 대북 결의에 따라 2019년 말까지 해외에 있던 북한 노동자들을 전원 북한으로 귀국시켜야 하는 시기에 되레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신현권 씨는 지난 12일 RFA에 이 식당이 현지인뿐만 아니라 한국 교민, 여행객의 입소문을 타고 성업했다고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이와 함께 2022년 5월과 6월, 8월 북한에서 파견된 종업원 5명이 연이어 탈북하면서 폐업했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즈베키스탄 수도에는 북한 식당이 전혀 없다고 현지 사정을 전했습니다.
[신현권] (우즈베키스탄 수도에는 북한 식당이) 없어졌습니다. (북한에서 온 북한 종업원들이 집단으로) 탈북해서 없어진 지 오래됐습니다.
한편 북한과 더욱 친밀한 관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 지역의 수많은 북한 식당은 현재도 대북 제재와 무관하게 성업 중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근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위원회 전문가단이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서 운영 중인 북한 식당은 여전히 70여 개에 이르고 연간 벌어들이는 수입도 7억 달러(한화 약 9,450억 원)에 달합니다.
특히 중국은 베이징을 비롯해 상하이, 다롄, 단둥, 선양, 훈춘, 투먼 등 주요 도시 10여 곳에서만 북한 식당 수십 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는 해외 북한 식당 80~90%가 중국에 집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입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동남아시아 지역 북한 식당과는 또 다른 특이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고, 한국을 두고 ‘괴뢰’로 표현하는 등 남북 관계 경색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내 북한 식당이 한국인을 손님으로 맞지 않는 겁니다.
사실 여부 확인을 위해 지난 22일,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 북한 식당에 직접 전화를 걸어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코리안 즉 한국인이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서둘러 전화를 끊고, 이후에는 아예 전화를 일시 응답 거절 상태로 돌려버렸습니다.
[중국 내 북한 식당 통화 시도 녹취] (새로운 맛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저는 한국인인데요, (됐습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수십 년째 사업을 하는 박 모 씨(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 요청)는 중국 내 모든 북한 식당이 이처럼 한국인 손님을 회피하고 출입을 금지하는 건 아니라고 귀띔했습니다. 중국 내에 있는 북한 식당은 북한이 직영하거나 북-중 합작 등 운영 체제에 따라 한국인 출입 여부도 달라진다는 겁니다.
[박 모 씨(음성 변조)] 북한에서 직영으로 하는 (북한) 식당 같은 경우에는 한국 손님을 안 받게 공식적으로 입장을 냈어요. 그런데 겉으로 봤을 때는 다 북한 식당이지만 그 업종 형태가 북-중 합작인 데가 있고요, 그러니까 중국 사람하고 같이 (북한이) 동업하는 데가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주인은 중국 사람인데 거기서 일하는 인원만 북한 노동자들을 데려다 쓰는 데가 있어요. 그러면 처음에 말씀드린 합작 관계는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북한 정부의 지침이라든가 외교적 방침에 따라서 한국 손님을 받고 안 받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직원으로 고용된 북한 식당 같은 경우에는 주인이 중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 손님도 받는다고요.
러시아 역시 북한 식당에 한국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상황은 마찬가지. 하지만 러시아는 중국보다 한국인 출입이 더욱 엄격하게 금지된 분위기입니다.
1992년부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업을 하는 강 모 씨(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 요청)는 러시아 내 북한 식당 대부분은 북한 직영으로 운영되고 있어 한국인, 특히 낯선 한국인 관광객은 북한 식당 출입 자체가 쉽지 않은 시국이라고 귀띔했습니다.
다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인 출입 금지’라는 북한 당국의 지침에 따라 한국인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는 듯하지만, 사실상 현지 단골 교민 등 친분이 있는 한국인들 위주의 고객들은 여전히 반기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강동완 한국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해외 북한 식당의 주목적이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고, 반면 해외 북한 식당의 적잖은 주 고객이 한국인 관광객이기 때문에 북한 당국의 지침만 따라 해외 북한 식당이 한국인 고객의 출입을 전면 봉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동완 한국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남북 관계 영향에 따라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접경지역, 특히 북-중 접경지역에 있는 북한 식당들이거든요. 그 때문에 남북 관계가 굉장히 악화했을 때는 한국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얘기한 적도 많았었고요. 하지만 현지에서는 (북한 당국에 바칠) 상납금을 채워야 하는 부담감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북한 당국 지침을 따르기에는 사실 어려운 부분들이 분명히 있는 거고요, 이중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겠죠.
1980년대부터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한 북한 식당. 해외 북한 식당은 현재 북한 당국이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대표적인 북한 외화벌이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이 현지에서 자진 철수하지 않는 한, 그리고 각국이 대북 제재 이행 의지를 확고히 다지지 않는 한 해외 북한 식당의 ‘달러 긁어모으기’는 언제 멈출지 기약이 없어 보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