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있으나 마나?” 북중 간 ‘의심 선박’ 활동 계속
2023.11.01
앵커: 최근 공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원회 전문가단의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해상에서 이뤄지는 북한 선박의 제재 회피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자유아시아방송(RFA)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명단에 오른 북한 선박을 다시 추적해 봤습니다.
분석에 따르면 북한 화물선과 유조선 등이 수시로 자동식별장치(AIS)를 껐다켜며 중국, 일본 인근 해상에서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드나드는 항구 중에는 석탄 부지도 있었습니다.
특히 선박이 물에 잠기는 깊이에도 차이를 보여 화물을 적재하고 하역하는 활동도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보도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북한 유조선과 화물선의 의심스런 행동 계속 포착
선박의 실시간 위치 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 Traffic) 지도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감시망에 오른 북한 유조선과 화물선 여러 척이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포착됐습니다.
이 중에는 과거 선박 간 환적 방식으로 북한에 정제유와 관련 제품을 운송한 것으로 조사돼 유엔 안보리의 제재 명단에 오른 북한 유조선 '남산 8호(NAM SAN 8)’도 있었습니다.
마린트래픽을 비롯해 복수의 해운정보 사이트에 보고된 선박자동식별장치(AIS) 기록에 따르면 ‘남산 8호’는 지난 10월 24일 북한 남포항에서 남서 방향으로 약 40해상마일(nm) 정도 떨어진 공해상에서 위치 신호가 잡힌 뒤 그 길을 따라 중국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선박은 현재 중국 푸저우항을 목적지로 설정해 둔 가운데, 지난 30일 0시 22분(세계 표준시)쯤 렌장현 인근 동중국해 공해상 지도에서 위치를 감췄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11월1일) 남산 8호는 대만해협에서 위치가 다시 확인됐습니다.
선박 간 환적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남산 8호’는 2016년 유엔 안보리 결의 2321호 12항에 따라 자산 동결 대상에 지정됐고, 2017년 결의 2371호 6항에 따라 다른 유엔 회원국의 항구에 입항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된 선박입니다.
또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북한 유조선 ‘안산 1호(AN SAN1)’도 지난 10월 25일 남포항 인근 해역에서 출발해 28일 한국 목포와 중국 옌청시 사이 중간 지점에서 위치가 확인됐습니다.
‘안산 1호’는 2018년 초 선박 간 환적 방식으로 북한에 석유를 운송한 것으로 파악돼 유엔 제재 목록에 올랐지만, 지난 9월에도 반복적으로 위치를 숨기며 중국 닝보우-저우산 해역 인근에서 의심스러운 움직임이 수차례 포착된 바 있습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에 따르면 ‘안산 1호’는 2018년 11월 유엔 회원국에 의해 북한의 모든 환적 활동의 절반(50%)을 차지하는 6척의 선박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미국 재무부가 제재 의심 선박 주의보에 올린 북한 화물선 ‘태청산호(TAECHONGSAN/K.MORNING/9021576)’도 최근 여러 국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드나들며 의심스러운 행적을 남겼습니다.
이스라엘의 해운정보업체 ‘윈드워드(Windward)’에 따르면 북한 석탄 수출에 이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태청산’은 지난 10월 27일 13시 54분(세계표준시)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에 들어가 이틀 간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이 선박은 중국 난징으로 설정한 목적지를 변경해 29일 일본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30일 새벽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 공해에서 10시간 동안 활동하다 자취를 감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윈드워드에 따르면 ‘밀수의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 북한 화물선 ‘대성 1호’가 (THAE SONG 1/TAE SONG1/8732037) 지난달 25일 중국 렁커우항에 정박한 뒤 이틀 간 머물다 27일 오전 10시 34분 북한 남포항으로 떠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대성 1호’는 수시로 위치 신호를 껐다켰는데, 윈드워드는 “(위치신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긴 공백 후 다시 나타났다”며 “이것이 의도적일 수 있고, 항해 경로와 시간, 거리 등을 고려했을 때 의심스러운 활동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유엔 제재 선박인 북한 화물선 ‘송관호’(SONG GWAN)도 지난 10월 16일 중국 해역에서 위치 신호가 갑자기 사라진 뒤 13일이 지나 중국 근해에서 다시 위치가 파악되는 등 국제 사회의 감시망에 오른 대북제재 선박들의 수상한 움직임은 계속 포착되고 있습니다.
북한 선박, 중국 석탄 부두에 정박하기도
‘마린트래픽’을 통해 북한 화물선 ‘대성 1호’의 운항 기록을 추적해보니, 이 선박이 지난 10월 25일 중국 렁커우항에 정박한 곳은 석탄 부두(CW18)였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대성 1호’는 지난달 15일 렁커우항 북동쪽 헤이산 현 인근 해역에서 약 7시간 가량 위치신호를 끄고 서쪽으로 움직였는데, 전날인 14일에는 선박의 흘수, 즉 선박이 물에 잠기는 깊이가 3.8m에서 3.5m로 내려간 것을 미뤄볼 때 위치신호를 감추기 직전 무언가를 적재했음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또 27일 렁커우항 석탄 부두를 떠날 때는 선박의 흘수가 반대로 3.5m에서 3.8m로 올라갔는데, 이는 미상의 적재물을 하역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전문가들은 중국 근해나 공해상에서 이뤄지는 북한 관련 선박의 제재 위반 행위를 적시에 포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북한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는 1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해상에서 이뤄지는 북한의 제재 회피 노력을 억제하기 위해 한미일 등 다자간의 해상 감시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대책은 별로 없죠. 북한이 공해에서 그런 행위를 하고 있지만, 이를 단속하려면 관련 선박의 '플래그캐리어' (flag carrier, 자국 대표 선박회사), 선박이 속한 나라의 인정이 필요합니다. 자국 영해에서 수상한 거래를 한다면 단속할 수 있지만, 공해에서 이뤄진다면 해당 선박이 속한 정부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법적 제재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미일 등 여러 나라는 북한이 해상에서 수상한 거래를 하고 있다는 불법성을 알리면서, 북한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해상 감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상에서 북한의 제재 위반 행위에 대한 유엔의 대응 중에는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일본, 뉴질랜드, 한국, 영국, 미국 등 다국적 정보 공유 협력체인 '태평양 안보 해양 교류(PSMX)'가 있습니다.
여기에 속한 국가는 국제 수역에서 북한의 불법 행위를 포착하기 위해 항공기와 선박, 인력 제공에 기여합니다.
또 일본 외무성은 지난달 6일 ‘북한 관련 선박의 불법적인 환적 의혹’이란 제목의 성명을 내고, “국제 공동체와 단합해 북한에 최대 압박을 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는 2017년 12월에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를 비롯한 조치들에 대한 시행을 포함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유엔 안보리는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후속 조치로 대북결의 2375호를 채택하고 공해상에서 북한의 선박 간 환적행위를 금지한 바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 전문가단은 지난 10월 27일 공개한 중간 보고서에서 올해도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조치는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선박 간 석유 환적의 적발을 어렵게 하기 위한 불법 선적이 다단계로 이뤄지는 방식이 두드러지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대만 해협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은밀하게 이뤄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함께 제재 회피 활동에 연루된 선박이 등록된 법인의 소유권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방식도 심화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연락이 불가능한 번호를 공식 연락처로 기재하거나, 법인 직원의 전화번호나 일회용 전자우편 주소를 연락처로 기재해 선박 소유권자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꼼수도 나날이 고도화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