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실 리정호의 눈] “북한이 손댄 양식장 대부분 실패”
2025.01.07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흥총국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입니다”
[북한 전직 고위 관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은 정권과 핵심 권력층의 비밀을 파헤치고, 오늘날 북한 정책의 허와 실을 짚어보며 정치, 경제, 사회를 분석해 보는 ‘39호실 리정호의 눈’,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KPDC) 대표와 함께 합니다.]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지난달 준공식에 참석하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한 ‘신포시 바다 양식사업소’.
하지만 실제 바닷가에 양식장을 조성한 것이 아니라 빈 건물에 가공 설비, 부두만 건설해 놓고 서둘러 진행한, 형식적인 행사로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그동안 북한에서는 꾸준히 여러 양식장을 건설, 운영해 왔는데요.
“북한에서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김일성의 지시로 바닷가에서 다시마를 비롯한 수산물 양식이 대규모로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초,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국가의 배급과 투자가 중단되자 그 양식장은 모두 폐허가 됐습니다. 또 2000년대에는 열대 메기 양식을 대대적으로 장려했습니다. 제 기억에 당시 열대 메기 양식의 열풍으로 수십 개의 메기 양식장이 건설됐는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각 지역의 자연 자원과 경제적 조건을 활용해 지방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목적으로 양식 사업이 꾸준히 추진됐지만 결국, 북한의 폐쇄적인 경제 체제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데요. 신포 양식장도 같은 길을 걷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철갑상어, 연어, 열매 메기 양식 다 실패”
[기자] 리정호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2025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지난달 28일, 함경남도 신포시에 새로 지은 ‘신포시 바다 양식사업소’(신포 양식장) 준공식에 참석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북한에서 직접 수산 사업소를 운영해 보신 적이 있으시죠. 우선 대표님께서 보신 신포 양식장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리정호] 북한 매체가 보도한 신포 양식사업소 준공식은 김정은이 지방 경제발전 정책의 시범 단위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정권은 과거 김일성 시대부터 한 단위에서 성공적인 시범 사업을 만들고, 이를 전국에 확대하는 정책을 펼쳐 왔습니다. 그런데 이 정책은 보시다시피 수십 년간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했죠.
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신포 양식장 준공식은 실제 바닷가에 양식장을 조성한 게 아니라 빈 건물과 가공 설비, 부두만 건설해 놓고 서둘러 진행한, 형식적인 행사로 보입니다. 양식사업소에서 보여 준 밥조개(가리비), 해삼, 성게, 다시마 제품 등은 그곳 생산품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공수해 온 것으로 보이거든요. 김정은이 직접 투자한 양식장이지만, 실속이 없어 보입니다.
제가 2004년까지 7년간 운영한 ‘김책 대흥수산사업소’와 ‘흥남 대흥 3.11일 가공사업소’도 노동당 39호실이 미화 수천만 달러를 투자해 건설했고, 김정일이 여러 차례 현지 지도도 했습니다. 그 수산 기업들의 부두와 가공장, 냉장고, 그리고 고깃배들이 지금의 신포 양식사업소보다 수십 배는 더 현대적이고 훌륭했습니다. 그럼에도 양식업과 수산업이 한때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실패를 면치 못했죠. 그 이유는 북한의 폐쇄적이고 비효율적인 계획경제 체제의 문제에 있습니다.
[기자] 이번 준공식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한 말 중에 “지역의 자연 부원과 유리한 경제적 조건을 개발 활용해 지방 경제발전의 자립성과 추동력을 확보하라”라는 지시가 있었는데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내용이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바로 김일성 주석이 했던 말과 정책이 아닙니까?
[리정호] 네. 맞습니다. 김일성은 1962년 창성 지방 경제 부분 연속회의에서 ‘바다를 낀 곳에서는 바다를 이용하고, 산을 낀 곳에서는 산을 잘 이용할 데 대한 교시’를 했습니다. 그의 정책에 따라 북한 전역에 수천 개의 지방 산업 공장들이 건설됐고, 지방을 발전하려는 시도를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비효율적인 계획 경제 운영 때문에 모두 실패했죠. 지금 김정은은 과거에 실패한 경제 정책을 답습하면서 마치 새로운 경제 정책인 것처럼 포장해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지도자로서 현명하지 못하고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김정은은 신포 양식장 준공식에서 “우리나라는 해안선이 길어 바다를 낀 시, 군이 적지 않다. 이 조건을 잘 활용해 해안 지역에서 양어와 양식을 대대적으로 해야 한다”라고 언급했죠. 얼핏 들으면 이상적인 경제 정책으로 인식될 겁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그럴듯한 정책을 펼쳐도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하지 않는 한, 그의 정책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북한에서 제가 수십 년간 체득한 진리입니다.
[기자] 김정은 총비서가 6개월 사이에 신포 양식장을 세 번이나 방문하면서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김 총비서는 이전에도 자라 양식장, 닭공장 등을 현지 지도한 바 있는데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양식장, 닭공장 등을 방문하며 경제 성과를 독려하는 것이 과연 격에 맞는 행보일까요. 북한의 경제 규모가 딱 그 수준인 건지요?
[리정호] 김정은이 신포 양식장을 세 차례 방문하고 닭공장, 자라 양식장 등을 시찰한 것은 그가 인민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김정은은 지도자가 책임지고 인민들을 먹이고, 입히며, 살림을 돌본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헌법과 노동당 강령에는 모든 분야에서 수령의 유일 영도 체제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모든 경제 활동은 김정은의 직접적인 지시와 감독하에 이뤄집니다. 이러한 유일 체계는 지도자가 국가의 모든 부문, 심지어 작은 경제 단위까지 직접 관여함으로써 그의 권력을 강화하고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합니다. 김정은의 이러한 행보는 국가 경영 관리에 대한 그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집착성이 강한 그의 독특한 스타일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실 수산 양식장 같은 것은 기업들이나 지방 자치 단체에서 해야 할 문제입니다. 자유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을 겁니다.
높은 관리 비용, 제한된 시장… 북한 경제에 도움 안 돼
[기자] 이렇게 양식장을 지어 놓으면 실제로 지방 발전이나 북한 경제에 도움이 될까요?
[리정호] 신포 양식장은 김정은이 직접 투자한 것이니, 일정 기간은 성과를 보일 겁니다. 그런데 그 양식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수산 기업들은 모두 국영 기업입니다. 자율권이 없는 국영 기업은 바다에서 가두리 양어나 양식장을 만들어 수익을 내자고 해도, 국가나 상급 기관에서 보장해 주지 않으면 자체 해결이 불가능하죠. 또 그 수산 기업들은 생산물을 자율적으로 판매해 수익을 내지 못하고, 국가와 상급 기관의 계획과 지령에 따라 (군대나 평양 등에) 수산물을 공급해야 합니다. 신포 양식장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또 지방 도시의 생산품은 품질과 시장 확보 등의 이유로 수출을 통해 외화를 획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국내에 시장이 형성돼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시장이 존재하지 않죠. 그러다 보니 지방 경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가 없는데, 이것이 북한의 계획 경제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게다가 양식업은 투자와 관리 비용이 많이 필요합니다. 태풍 피해로 양식장의 밧줄이나 양식망이 없어지면, 기업들이 이를 복구할 자금을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가 없죠. 또 북한의 양식장에는 도둑이 자주 침입해 밧줄과 수산물을 훔쳐 가기 때문에 관리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양식업이 다 망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북한에서 이미 이러한 양식업이 성공했겠죠.
이러한 실정을 모르는 김정은은 양식사업소의 운영을 활성화하고 수익성과 효율성을 최대로 높일 것을 지시했습니다. 과거 김정일도 “수익성과 경제적 실리를 보장하라”는 지시를 많이 했죠. 앞으로 북한에서 양식업이 성공하려면, 북한 정권이 개인과 기업에 경제 활동의 자유를 주고, 시장에서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는 시장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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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북한에는 양식장이 많은데요.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제대로 성공을 거둔 양식장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표님께서 경험하신 양식장의 실패 사례와 원인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리정호] 네. 북한에서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김일성의 지시로 바닷가에서 다시마를 비롯한 수산물 양식이 대규모로 진행됐습니다. 그 시기에는 북한 동해안에 양식을 표시하는 원통형 부자와 부표들이 즐비하게 쭉 늘어선 모습이 볼만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투자한 것이었죠. 그런데 1990년대 초, 사회주의 시장이 붕괴하고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국가의 배급과 투자가 중단되자 그 양식장은 모두 폐허가 됐습니다.
2000년대에는 열대 메기 양식을 크게 장려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대흥총국도 황해남도에 열대 메기 양식장을 건설했고, 평양 화력발전소에도 더운물을 이용한 열대 메기 양식장을 만들어 놓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제 기억에 당시 열대 메기 양식의 열풍으로 수십 개의 메기 양식장이 건설됐는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인민군 총정치국 소속 신진무역회사에서는 2008년부터 미화 수백만 달러를 들여 황해남도 룡연군에 철갑상어 양식장을 건설했습니다. 철갑상어 새끼는 중국과 한국에서 들여오고, 한국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철갑상어 양식에 성공하고, 캐비어(상어알)도 생산했습니다. 2010년에 김정일과 김정은도 그곳을 현지 시찰했죠. 그때 ‘철갑상어는 바다로! 조선은 세계로!’라는 정론이 노동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철갑상어 양식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또 신진무역회사는 함경북도 낙산만 바닷가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연어 가두리 양식장을 만들었고, 김정은도 이곳을 현지 시찰했습니다. 그들은 칠레에서 연어 양식에 필요한 먹이를 사 오고, 노르웨이와 칠레에서 양식 기술을 도입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투자를 많이 한 것과 달리, 철갑상어와 연어를 판매해 투자 비용과 운영에 필요한 외화 자금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총리 교체 등 인사 개편… 올해 북러 교류 강화 의도
[기자] 마지막으로 지난해 말 북한에서 대대적인 인사 개편이 있었습니다. 김덕훈 총리에서 박태성 총리로 교체됐고요. 내각 부총리에 군 출신 인사가 임명됐습니다. 인사 개편을 통해 올해 김정은 정권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대표님은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리정호] 지난해 말 북한에서 이뤄진 인사 개편은 김정은의 국내외 정책 방향에 대한 중요한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임명된 박태성 총리의 배경과 역할을 살펴보면, 김정은이 러시아와 과학 기술 분야 협력에 더욱 집중하려는 전략적 의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태성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출신으로 평안남도 도당 책임 비서를 역임했고, 총리 임명 전에는 노동당 과학교육부를 책임진 노동당 비서를 수행했습니다. 그는 조직지도부에 있을 때부터 공장 지도과를 담당하면서 경제 문제에도 해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군 출신 인사(김정관)가 부총리로 임명된 것은 김정은이 지방 경제발전 정책을 중시했기 때문에 그를 투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군 출신 부총리는 지난해 김정은의 지방 경제발전 정책에 따른 건설을 책임지고 진행했습니다. 이처럼 김정은이 단행한 인사 개편의 중요한 점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협력을 통해 외교와 군사, 그리고 경제 분야에서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폐쇄적이고 비자율적인 경제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어렵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자] 네. 지금까지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와 함께 ‘신포 양식장 준공식을 계기로 북한 양식 사업의 실패 원인과 과제’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리정호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