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군사합의 파기로 북 도발 가능성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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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한반도 톺아보기' 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한국이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조항에 대한 효력을 정지하자, 북한이 즉각적으로 이 군사합의의 전면파기를 선언했습니다. 현재 이 합의는 어떤 상태인가요?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

[마키노 요시히로] 2018년 9월 평양에서 남북 두 정상이 진행한 정상회담에 따라 당시 한국 국방장관과 북한 인민무력상이 서명하고 교환한 군사합의서입니다. 이 합의서는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구체적인 조치들을 결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1km 이내 비무장지대 내 최전방 감시초소(GP)들을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또 동부지역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최대 40km, 서부에서는 최대 25km까지 범위를 기종별 비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했습니다. 서해 북방한계선인 NLL을 중심으로 평화수역을 설정하고, 공동경비구역(JSA) 내에서는 민간인 관광객들의 남북 간 자유로운 왕래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 21일 밤 군사 정찰 위성을 탑재한 운반 로켓을 발사한 이후 한국 정부는 9.19 군사합의에 따른 비행 금지 구역 설정 조항의 효력을 동결시켰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23일 한국이 남북 군사합의를 위반했다며 합의를 전면 폐기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미 북한은 비무장지대 내 초소를 10여 개를 복구하고 중화기를 반입했으며,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북한 병사들이 권총을 차기 시작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상호 간 합의가 없었다는 전제에서 법적으로는 합의를 계속 유지할 여지가 있지만, 현재 북한이 이를 지킬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 합의서는 파기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자> 5년 만에 파기 선언이 나온 건데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마키노 요시히로]저는 원래 이 합의에 무리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군축이나 군비 관리는 안전보장 분야에서도 가장 어려운 협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군축 및 군비 관리는 상대방이 어떤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완전히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군비를 다 밝히지 않고 숨기거나 거짓으로 신고했을 때는 전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2018년 9월 서울에서 남북 군사합의를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 쪽에서 남북 군사합의를 담당했던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군 관계자나 군비 관리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안보 전문가에게 이런 사람이 남북 군사합의가 적절한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더니, 그 전문가는 아마도 신뢰할 만큼 검증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군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뢰 관계의 구축입니다. 상대방을 믿을 수 있는 상황에만 군축 합의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미국과 소련이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에 합의했을 때 서로가 전략 폭격기 설계와 함께 폭격기에 핵폭탄을 몇 개 탑재할 수 있는지 등 자세한 정보까지도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남북 군사합의는 이러한 정보 공개도 못하고, 오히려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면서 전혀 반대 방향으로 가는 합의를 했다는 겁니다. 남북이 신뢰 관계를 구축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2018년 합의 체결 이후 5년간 총 3천600여 차례에 걸쳐 합의를 위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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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2일, 한국군 병사(가운데 아래)가 철원 중부지역의 철거된 북한 감시초소를 점검하기 위해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을 넘기 전 북한군 병사와 악수하고 있다. /AP (Ahn Young-joon/AP)

<기자> 북한은 과거에도 다른 합의들을 종종 파기한 전력이 있는데, 이렇게 합의 파기를 반복하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마키노 요시히로] 네, 북한은 과거에도 다양한 합의에 참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1991년에는 남북 비핵화 선언, 1994년에는 제네바 합의, 2006년에는 6자 회담 공동성명 등이 있습니다. 또 이번 남북 군사합의처럼 북한이 합의를 위반해 파기된 적도 있습니다. 남북 군사합의의 배경에는 북한이 당시 문재인 정부와 한반도 평화 정책을 조화롭게 추진해 다양한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은 과거부터 안보 이익을 얻기 위해 '합의'를 중요한 수단으로 삼아왔습니다. 또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완화하거나 군사 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일시적인 합의를 되풀이해왔습니다. 또 9.19 남북군사합의는 북한 인민무력상이 담당하지만, 과거에는 북한 외무성 측에서 다른 합의를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중앙당에서 충분한 권한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겉으로는 합의가 이뤄져도 북한 내부적으로는 동의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기자> 이번 남북 군사합의 파기와 관련해 각각 남과 북의 관점은 뭐라고 보십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저는 북한이 남북 군사합의와 관계없이 도발적인 행동을 취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비행 금지 조치를 해제함에 따라 한국 군이 군사경계선 근처에서 정찰활동을 재개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과 북한이 서로 군사 정보를 공개하고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북한이 군사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한, 군축 및 군비 관리에 관한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북한은 특히 보급 및 자원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짧은 기간 내에 승패를 결정하는 총력전을 중요한 작전 계획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총력전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상대방이 경계를 푼 상황에서 갑자기 공격하는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군은 정보수집과 감시 및 정찰 활동인 ‘ISR(Information, Surveillance, Reconnaissance)’에 큰 중점을 둬야 합니다. 남북 군사합의는 사실상 ISR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합의가 파기된 것은 한국 입장에서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정치적, 군사적으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북한은 한국이 합의의 일부 효력을 정지한 것을 핑계 삼아 한국에 대해 군사적 도발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당분간 한국은 북한에 대한 경계 태세를 강화해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기자>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 등 국제적 상황이 더 불안정해질 수록 동북아 지역의 안보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없지 않은데요.

[마키노 요시히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의 하마스와 이스라엘군의 충돌은 국제사회에 큰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은 항공모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제럴드 포드호를 지중해에 파견해 중동 및 유럽 지역의 안정을 강조하고 있으며, 로널드 레이건호와 칼빈슨함을 동아시아로 파견해 동아시아 지역의 안전 보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크라이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동아시아에서 안보의 공백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를 통해 지역 내 안정을 유지하고 국제적 불안정성을 최소화하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 문제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하진 않을 거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요시하는 국제 질서와 법치주의가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을 무시하고, 중국은 필리핀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관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서필리핀해 해역이 필리핀 영토라고 2016년 판결)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의 남북 군사합의 파기 역시 국제적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앞으로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와 다양한 국제적인 조약 및 약속을 위반하면서 불법 행위나 군사 도발을 계속하는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 기자 > 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