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탈북민 가족의 절규] ① “착한 아내가 정치범이 됐어요”
2023.12.18
앵커: 지난 10월 9일 중국에 구금돼 있던 500여 명의 탈북민들이 대거 강제북송된 이후 국제사회는 탈북민들이 처할 구금과 고문 등 인권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이 강제북송되고, 정치범수용소까지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탈북민들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데요. 북송된 탈북민들은 그저 가족을 만나기 위해, 또는 먹고살기 위해 국경을 넘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지난 11월 미국을 방문한 강제북송 피해자 가족과 강제북송을 경험한 탈북민을 직접 만났는데요. 오늘 첫 번째 순서로 서혜준 기자가 허영학 씨, 지한나 씨의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가족 찾아 탈북한 아내가 정치범이라니…”
[허영학] 제 처는 솔직히 말해 북한에서 법을 위반하는 행위 그런 거는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에요. 그렇게 착한 여잔데 정치범이 됐어요...정치범이...
2019년 12월, 아내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됐다는 탈북민 허영학 씨.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11월 8일 ‘탈북민 강제북송 비상대책위원회’ 소속으로 미국을 방문해 주미 중국 대사관 앞에서 강제북송 반대 시위에 참여한 허영학 씨를 만났습니다.
허 씨의 아내 최선화 씨는 먼저 탈북한 남편과 딸을 만나기 위해 북중 국경을 넘었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습니다. 그리고 곧 북송된 아내가 ‘정치범’이 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미국 유엔 본부와 백악관 등에서 아내의 얼굴과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강제북송의 억울함을 호소하던 허 씨는 자유아시아방송(RFA) 취재진을 만나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내를 떠올리며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허영학] 정치범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아시죠? 나라를 배반했다거나 이런 행동이 있어야 (정치범이) 되잖아요. 그런데 오직 자기 가족을 찾아오겠다는 일념으로 (탈북해) 오다가 중국 정부에 잡혀서 북송됐어요. 한 일 년 조사 받고 고문 받다가 결국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는데 지금 생사도 확인할 길이 없어요.
허 씨는 2019년 11월 초, 딸과 함께 먼저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그의 아내가 뒤따라 탈북하던 중 중국 공안에 붙잡혔고, 2020년 10월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전혀 생사를 알 수 없습니다.
그 후로 허 씨는 약 3년 간 아내의 소식을 기다리다, 지난 10월 중국 내 탈북민 500여 명이 강제 북송되면서 구성된 ‘탈북민 강제북송 비상대책위원회’에 동참하기로 결심했고, 아내를 위해 처음으로 용기를 내게 됐습니다.
[허영학] 중국의 강제 북송 행위는 학살 행위나 같아요. 북송되면 80~90%는 다 죽어요. 생사 여부에 대한 건 확인할 길이 없는데 중국 정부의 강제북송 행위는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더 많은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허 씨는 이날 중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도 “탈북민 강제북송에 대한 책임은 중국 정부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아내가 겪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탈북민 강제북송 중지’란 구호를 목청껏 외쳤습니다.
“중국 대사관 앞에 서니 너무 분해요”
같은 날 중국 대사관 앞에서 만난 지한나 씨.
지 씨도 두 번의 강제북송을 경험한 탈북민입니다.
[지한나] 저는 두 차례에 걸쳐 중국 정부에 의해서 강제북송을 당한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 대사관 앞에 서니까 격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지 씨는 1996년 고난의 행군 시절 남편을 병으로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홀로 어린 두 아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중국과 불법 무역을 하다 적발돼 다섯 번이나 군 노동단련대에서 강제 노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11월, 북한의 화폐 개혁으로 국가가 돈을 수거한 뒤 100분의 1로 대폭 깎은 금액만을 돌려주자, 지 씨는 아이들에게 “돈을 벌어서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2010년 탈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곧 중국 공안에 붙잡혀 2011년 북송됐고, 그 후 다시 한번 탈북을 시도했지만 중국 변방대에 붙잡혀 또 강제북송됐습니다.
지 씨가 끌려간 북한 감옥에서는 매일 영양실조로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그가 하루에 먹었던 한 끼 식사조차도 군인들이 먹다 남긴 밥이 전부였습니다.
세 번째 탈북 끝에 지난 2016년 한국에 정착한 지 씨는 현재 무사히 탈북한 두 아들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강제북송 과정에서 겪은 모진 고문과 고초를 결코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빳빳한 가죽 띠로 매일 같은 자리를 맞아 움푹 파인 다리의 상처를 볼 때마다, 또 뼈가 뒤틀려 가누기 힘들어진 뒷목의 통증을 느낄 때마다 당시 끔찍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지한나] 우리가 중국에서 큰 죄를 범한 것도 아니고 그저 살기 위해서, 살 길을 찾아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오려 한 것이 그렇게 죄가 돼서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잖아요. 얼마나 원통하고 마음 아픈 일이에요. 그래도 저는 그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와서 이렇게 세 번째 탈북에 성공해서 한국에 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는 자신이 겪었던 강제북송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에, 같은 상황을 겪고 있을 탈북민들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지한나]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어떻게 인권과 사람 목숨에 대해 그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어요. 북한에 끌려가면 죽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 중국은 대국으로서 체면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리 피해자들은 중국 정부가 지금이라도 탈북민들을 강제북송시키는 행위를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날 시위에 함께 참여한 한국의 북한인권단체 ‘북한정의연대’ 정베드로 대표는 유엔의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탈북민 강제북송을 주도하고 방관하는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베드로] 너무나 끔찍한 이 반인도범죄 만행은 10년 전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에도 ‘중국’이 분명히 명시됐습니다. (보고서는) “중국 당국은 탈북자들을 유엔 난민기구와 협조 하에 보호하고 이들이 원하는 나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된다”라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의 만행을 구체적으로 중국이라고 명시하고, 이러한 반인도범죄 테러 행위를 전 세계에 알릴 계획입니다.
북송된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탈북민들의 마음은 계속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목소리만이라도 들어볼 수 있을지’, 북송된 가족 생각에 오늘도 탈북민들은 억울함과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